한동훈·이재명 140분회담…'정치 복원' 첫발 뗐지만 시각차 컸다
마주 앉은 테이블의 거리만큼 시각 차이는 컸으나, 공동의 관심사와 접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는 ‘극한 정쟁’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 속에 정상적인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의지도 강했다. 11년 만에 이뤄진 양당 대표 회담에서 정치 복원의 싹을 찾아볼 수 있던 이유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일 국회에서 첫 회담을 열었다. 양당 정책위의장과 수석대변인이 배석한 정식 비공개 회담만 102분 진행됐고, 이후 배석자 없는 둘 만의 대화가 38분 이어졌다. 회담 직후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과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공동 발표를 통해 “양당의 ‘민생 공통 공약’을 함께 추진할 협의 기구를 운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현안인 의료사태와 관련해서는 “추석 연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만전을 기할 것을 정부에 당부하고, 국회 차원의 대책을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당은 또 ▶주식시장 활성화 방안 ▶반도체·AI 산업,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위한 지원방안 ▶가계·소상공인 부채 부담 완화 지원 방안 ▶육아 휴직 확대 위한 입법 과제 ▶딥 페이크 성범죄 제도적 보완 방안 ▶정당정치 활성화 위한 지구당 도입 등을 적극적으로 논의·협의하거나 신속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22대 국회의원 임기 시작 96일 만에 열리는 국회 개원식을 하루 앞두고 협치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회담 시작부터 두 대표는 확고한 정치 복원 의지를 드러냈다. 모두발언에서 한 대표는 “우리 두 사람이 정쟁의 중단을 대국적으로 선언하고,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정치개혁의 비전에 전격 합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대화와 타협이 일상이 되는 정상적 정치 복원을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3+3회담’이 열린 접견실로 향한 이 대표는 폭이 넓은 테이블에 마주 앉자마자 “이래서는 화 나도 멱살도 못 잡겠다”고 농담했다.
하지만 비공개 회담에선 양측의 인식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대표는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거나 일제의 침략을 합리화하는 등 반국가적 주장을 하는 사람의 공직 취임을 제한하는 법안에 협조해 달라”고 했고, 한 대표는 “그건 법제화할 문제가 아니지 않으냐”라고 반대했다. 한 대표는 과거 ‘방탄 논란’에 휩싸였던 이 대표의 면전에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나 면책특권 범위를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이 대표는 “검찰이 정치 탄압을 하는 상황에서 그런 얘기는 공격의 의도를 갖고 하는 것”이라며 불쾌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민생 이슈에서도 양측의 시각차는 컸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에 대해 한 대표가 “폐지하자”고 주장했으나, 민주당 지도부는 “폐지는 안 된다”며 완화론을 꺼내 들었다. 한 대표가 재차 “최소한 내년도 시행하는 부분은 유예하고 계속 논의를 하자”며 ‘스몰 딜’을 시도했으나, 이 대표는 “금투세 시행 여부뿐 아니라 자본시장의 비정상적인 여러 양태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그 결과 공동발표문엔 “금투세와 관련, 주식시장 구조적 문제 등 활성화 방안과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협의하기로 했다”는 문구로 정리됐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해 온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서도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이 대표는 모두 발언에서 “차등 지원, 선별 지원을 하겠다면 그것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으니 적정한 선에서 협의하자”고 제안했으나, 한 대표는 “현금을 직접 살포하는 정책은 하지 않겠다”고 반대했다고 한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우리 쪽에서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있느냐’고 했지만, 별다른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제가 보기엔 결단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쟁점 사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대표가 모두 발언에서 “입장이 난처한 건 이해하지만, 말씀하셨던 것이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이니 이제는 결단해달라”고 압박했던 순직 해병 특검법은 입장차만 확인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앞서 한 대표가 제안했던 제삼자 특검 추천 방식과 제보 공작 의혹까지 모두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설정하는 기한에 맞춰 당의 입장을 낼 순 없다”고 맞섰다. 대변인의 전언도 엇갈려 민주당 조 대변인은 “한 대표 본인은 ‘(특검) 의지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조승래 수석대변인)고 했으나, 곽 대변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다만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달리 국내 거주 중국인에게 주어지는 지방선거 외국인 투표권 문제에 대해선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 대표가 “거주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투표권을 주는 나라는 전세계에 없다”고 말하자, 이 대표가 “필요하면 개선해야 한다”고 화답한 것이다.
의정 갈등에 대해서도 양당 대표는 심각성엔 공감했지만, 해결 방향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당초 의정갈등 이슈는 의제에 포함하지 않았으나, 이 대표 주도로 꽤 긴 시간 동안 논의됐다고 한다. 비공개 회담에서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나 책임자 문책, 대책 기구 구성 등을 요청했으나, 한 대표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독대 때 별도로 한 대표가 이 대표에게 “민주당의 대책이나 방안이 있느냐”고 묻자, 이 대표는 “그외에는 특별히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다만 양당 대표가 “국회 차원의 대책을 협의한다”는 데 합의하면서, 향후 한 대표와 대통령실의 갈등이 불거질 불씨가 남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회담 결과를 놓고 한 대표와 이 대표의 당내 다른 위상을 보여줬다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 ‘일극 체제’로 협상 전권을 쥔 거대 야당 대표와, 회담 뒤에도 정부와 보폭을 맞춰야 하는 여당 대표의 차이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비한계 의원은 “회담에서 입법 관련 사안이 합의될 경우 의원총회를 열어 현역 의원의 추인을 받아야 하는데, 오늘 합의 사안은 의총을 열 만한 사안이 없다”며 “한 대표가 당내 여론도 신경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통화에서 “애초부터 아무것도 합의할 수 없었던 회담”이라면서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를 상대하려면 용산 대통령실과 정부, 당의 전폭적 지원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런 게 없다 보니 야당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尹 대통령, 국회 개원식 불참…대통령실 “국회 정상화 우선”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2일 열리는 제22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대통령실이 1일 밝혔다. 대통령이 개원식에 불참하는 것은 1987년 헌법 개정으로 들어선 제6공화국 체제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검과 탄핵을 남발하는 국회를 먼저 정상화하고 나서 대통령을 초대하는 것이 맞다”며 “(전현희 민주당 의원의) ‘살인자’ 같은 망언을 서슴지 않고 사과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통령실은 2일부터 전국 응급실 현황과 환자 수를 비롯한 응급실 이용 정보 등에 대한 일일 브리핑을 시작하기로 했다.
오현석·김기정·윤지원·김정재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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