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돈이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2024. 9. 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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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전혀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

200세대가 안 돼 서로 집에 있는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로 훈훈한 정이 오가는 마을이었다.

마을자치회 회원 자격을 강화해서 연회비를 납부하고 마을에 2년 이상 거주한 주민에게만 회원 자격을 부여하는 개정이었다.

현 이장이 개정된 자치규약에 따라 전 이장 쪽 마을 주민 약 100명을 제외한 나머지 주민들에게만 돈을 나눠주자, 전 이장 쪽 주민들은 현 이장을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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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전혀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 200세대가 안 돼 서로 집에 있는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로 훈훈한 정이 오가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을 대표하는 사람은 이장이다. 정치권 선거와 다르게 전혀 치열할 것 없는 형식적인 선거를 통해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을 이장으로 선출해 왔다. 이렇게 선출된 이장은 자신이 임명한 총무와 함께 마을의 대소사를 처리했다. 마을 주민 누구도 이장과 총무에게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의 노고를 고마워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이장 선거 열풍이 불었다. 이례적으로 도전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총무였다. 함께 일했던 이장과 총무의 차기 이장 선거는 치열했다. 정치권 선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된 상대방의 약점을 사정없이 지적하고, 없는 사실까지 지어내는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으며 서로 이장이 되려고 발버둥을 쳤다. 마을 주민들도 두 쪽으로 나뉘었다. 훈훈한 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서로를 흠집 내기에 바빴다.

이렇게 이장 선거가 유례없이 치열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수억원의 거금이 생긴 것이다. 골프장 개발 회사가 골프장을 짓기 위해 이 마을의 부동산을 매입하기 시작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장과 총무가 나서서 골프장 개발 회사와 협상했다. 치열한 협상 끝에 골프장 개발 회사는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수억원의 마을발전기금을 내놓아야 했다. 긴가민가했던 이 돈이 진짜로 입금되자, 마을 주민들은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치열하게 갑론을박했다.

이장 쪽 사람들은 농사에 사용할 농기계를 구입해 공동으로 이용하는 등 마을 전체의 편익을 위해 사용하자는 의견이었던 반면, 총무 쪽 사람들은 마을 주민들이 공평하게 나눠 가지자는 의견이었다. 이장은 총무 쪽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부 금액으로 여러 농기계를 구입한 후 이를 필요로 하는 마을 주민들이 사용하게 했다. 논란은 이렇게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런 와중에 치러진 차기 이장 선거에서 결국 총무가 승리하면서 논란은 다시 가열됐다. 이장이 된 총무가 남은 수억원을 전체 주민이 아닌 일부 주민들에게만 나눠 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새 이장은 자신의 세력을 앞세워 자치규약 일부 규정을 개정했다. 마을자치회 회원 자격을 강화해서 연회비를 납부하고 마을에 2년 이상 거주한 주민에게만 회원 자격을 부여하는 개정이었다. 전 이장 측 사람들이 현 이장의 결정에 반대하며 연회비 납부를 거부한 점을 악용해 이들에게 돈을 나눠주지 않으려는 꼼수였다.

현 이장이 개정된 자치규약에 따라 전 이장 쪽 마을 주민 약 100명을 제외한 나머지 주민들에게만 돈을 나눠주자, 전 이장 쪽 주민들은 현 이장을 고소했다. 이에 현 이장도 과거 재임 시절 행위를 트집 잡아 전 이장을 맞고소하였다. 이렇게 난타전이 벌어지는 사이에 두 쪽으로 나뉜 마을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으나, 누구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돈이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문제인 것인가. 이런 현상이 비단, 이 시골 마을만의 문제이겠는가. 우리 정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 씁쓸함만 더한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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