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사적 욕망추구 만연했던 부패한 권위주의 정권 만들어"

김성수 2024. 9. 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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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교수

[김성수 기자]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교수
ⓒ 박노자
지난 1998년 12월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노르웨이 오슬로대 동방학과 교수직에 지원했다. 얼마 후 오슬로대에서 두툼한 봉투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나는 '아, 내가 되었구나!' 하고 흥분하여 두툼한 봉투를 열어보았다. 열어보니 나를 포함해 그 자리를 지원한 이들의 이력과 연구업적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띄는 탁월한 연구업적을 가진 지원자가 박노자 박사였다.

오슬로대는 내게 "이번에 오슬로 대학교에 지원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모든 지원서를 검토한 결과 우리 오슬로 대학교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박노자 박사를 채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대학교에서 이렇게 결정한 결과를 보고 혹시 이의가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다시 검토해 보고 그 결과를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고 통보해주었다. 나는 완전 투명한 오슬로대의 채용절차에 감동했다. 그래서 비록 나는 떨어지고 박노자 박사가 되었지만 너무나 기뻤다. 내가 떨어져서 슬픈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거쳐 박노자 박사가 당당하게 합격했기 때문에 내 일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 후부터 나는 박노자 박사와 급속하게 친밀감을 느꼈다. 그래서 한국에 살 때도 아내와 함께 그를 만나 즐겁고 알찬 시간을 가졌다.

한국은 요즘 '역사전쟁', 윤석열정권 부패 등 여러 사회문제로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다. 이런 와중에 박노자 교수와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와 관련해 지난 28일 인터뷰를 실시했다. 다음은 그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검찰 출신 장악한 관료제, 견제기능 정상 작동 안돼"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교수
ⓒ 박노자
- 요즘 한국은 '역사전쟁'이 한창이다. 2차 대전 후 프랑스는 나치협력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했다. 하지만 한국은 2차 대전 후 오히려 친일파들이 독립운동가들을 처단했다. 프랑스처럼 과거청산이 없이 오늘 한국의 역사청산, 역사재정립이 가능하다고 보나? 또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한국 국민과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직접 식민화와 일제침략전쟁에 협력한 이들은 이제 대부분 고인이 돼 직접적인 책임이야 '물리적으로' 질 수 없다. 한데 적어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속에 그들의 행동에 대해 정확한 정보와 평가가 들어 있어야 한다. 가령 삼성상회의 창업주 이병철이 일제의 착취기관이었던 식산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토지를 사들여 쌀을 일본에 팔고, 태평양전쟁 때에 일본군 납부업자가 되어 사실상 침략전쟁 시 폭리를 추구하는 상업행위를 벌였다는 사실을, 지금 '삼성공화국'에서 사는 우리들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지배자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라도 정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성방직 직공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에 그 기업을 소유, 경영했던 <동아일보>의 소유주들이 일본경찰에 도움의 손을 요청하는 등 일제 치하의 한국토착 엘리트와 식민지권력 사이의 완벽한 '유착'의 모습을, 사실대로 알 권리는 시민들에게 있다."

- 정안기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책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저자다. 그는 올해 광복절에 펴낸 책 <테러리스트 김구>에서 '김구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테러리스트'라 주장했다. 이런 정씨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식민화에 무기를 들어 대항하는 게 '테러'라면 남의 나라 국가주권을 빼앗는 것은 국가 수준의, 100배, 1000배 더 무서운 테러는 아닌가? 현지 주민들의 무장저항이 없었던 식민지란, 근현대 세계사에 없다. 그리고 김구를 포함한 한국독립운동은 그나마 재조선 일본인 민간인을 -그들이 통치, 착취기관들과 무관한 이상- 표적으로 삼지 않았는데, 예컨대 알제리의 독립전쟁사를 보면 불란서계 민간인들에 대해서도 공격을 하는 등 훨씬 더 치열한 무장투쟁을 벌였다. 김구는 우파계열 독립운동가였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좌파와도 갈등을 빚어 그 갈등 속에서 김립 등 일부좌파운동가들이 암살된 것은 상당한 문제라고 볼 여지 역시 있다. 한데 일제의 통치, 착취기관에 대한 백범을 포함한 독립운동가들의 무장투쟁은, 세계 근현대 탈식민 과정이라는 '큰 그림'의 차원에서 정당한 명분이 있었다."

-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지난 2022년 낸 책 〈끝나야 할 역사 전쟁〉 책 표지를 보면 김구와 이승만 사진이 나란히 있다. 김씨는 책머리에서 '국민통합사관이 필요하다. 이승만·김구 두 사람 모두를 국부로 모시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책 내용을 보면 저자가 김구는 비난하고 이승만은 찬양한다. 이런 김씨의 주장과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 책은 '역사연구'라고 하기도 좀 민망하다. 그저 자신의 이념적 입장에 맞춰서 이승만을 무조건 과도하게 미화하고 있다. 즉, 역사를 전유해 어떤 특정한 정치적 목적의 달성을 노리고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매우 보수적인 외교독립운동론자인 이승만은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인 다수에게 매우 생소한 해외망명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해방이후 분단국가창립, 6.25전쟁, 그리고 전후 독재 권력의 공고화과정에서 이승만은 대대적인 민간인학살 등 막대한 국가폭력범죄를 저질렀다. '자유민주주의'를 들먹였지만, 실제로 이승만이 운영한 권력구조는 개발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적인 욕망추구가 만연했던 무능하고 부패한 권위주의 정권이었다."

- '김건희 명품백' 조사를 총괄하던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이 지난 8일 숨진 채 발견됐다. 하지만 고인의 죽음에 대해 아직까지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고 처벌받은 사람도 없다. 이 사건을 보며드는 생각은? (관련 기사 : "김 국장 죽음 조사해야...한국 부패 선진국 될 수도")

"한국에 아직까지도 막스 웨버적인 의미(Weberian)의 '합리적 관료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검사정권 밑에서는 정상적인 관료제 작동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위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은 고인이 사실 이를 하소연할 만한 곳이 없었다는 게 이 비극의 근원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부당한 압력에 대한 고발이 불가능한 관료제는 정상적인 관료제 아니다. 좌우간, 비명에 가신 고인에 대해 숙연한 마음이 들고,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 반복돼서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 한국의 공익신고자들에 대한 보호는 아주 취약하다. 한국의 공익신고자들은 해고와 낙인 등 엄청난 시련과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노르웨이 공익신고자들에 대한 보호 현황은 어떤지?

"공익적인 내부고발이 쉬운 사회라고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노동자들의 절반이 가입한 노조나 기업들과 무관한 좌파일간지 등이 공익신고자를 측면지원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노조의 힘은 아주 약하고, 언론들은 거의 자본권력에 의해 식민화된 상태다. 이건 고발자의 입장을 더 어렵게 만든다. 거기에다 지금 검찰 출신들이 장악한 국가 관료제에서는 감찰, 견제기능들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한국이 거시적으로 민주 국가이긴 하지만, 미시적으로는 권위주의적 통제기구가 작동되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차별? 광의의 인종차별"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교수
ⓒ 박노자
-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나경원 의원 그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최저임금을 한국인보다 더 적게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고 그 시행방한을 모색 중이다. 이런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관련 기사 : "한국인이 외국에서 임금 차별 받는다면 어떻겠나")

"국제법, 각종 국제협약 등에 대한 인식, 기본적인 세계인으로서의 상식이 없는 망동이다. 먼저 '세계인권선언서'는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것인데 지금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하려는 것은 사실상의 광의의 인종차별이다. 한국은 그렇지 않아도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직장이동금지 등으로 '현대판 외국인 노예제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아예 세계적으로 '신형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격리정책)의 국가'로 알려져 악명을 만방에 떨치게 될 것이다. 솔직히 나경원씨 등 일부 극우정객들의 이런 행동을 보노라면 이들이 대한민국의 커다란 수치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런 몰상식한 이들이 한국에서 정치할 수 있다는 게 한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1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출근길 지하철 오체투지투쟁을 벌였다. 당시 현장에 계셨는데 노르웨이인들의 반응이 어땠나? 한국과 비교해 노르웨이 장애인들은 정부와 사회에서 어떻게 대우를 받고 있는지?

"나는 그때에 잠깐 지원연설을 하고 직장으로 가는 바람에 오슬로 시민들의 반응을 충분히 살펴볼 시간은 부족했다. 노르웨이 같은 경우에는, 우리 대학교를 포함한 어느 공공기관에 가도 장애인 화장실을 비롯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없는 층은 하나도 없다. 우리 대학 학생 중에서도 휠체어 사용자 분들이 계시는데, 비교적 정상적으로 학업을 밟아 나갈 수 있다. 정치적인 의지만 있다면 한국만큼 부유한 사회도 충분히 이 정도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그 정치 의지야말로 문제다."

-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그곳에 계시는 친인척들은 어떠한지? 이 전쟁이 향후 어떻게 마무리 될 것으로 보나? 푸틴은 향후 얼마나 건재할 것으로 보나?

"니코폴 (Nikopol)에서 사는 내 우크라이나 쪽 친척들과는 전쟁초기부터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이 태산이다. 이건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함께 21세기 최악의 국가범죄다. 한데 지금 푸틴이 운영하는 정권은 일종의 대중성이 있는 개발독재다. 지금 전시라는 국면, 서방제재라는 국면을 이용해 푸틴정권이 수입대체공업화에 상당한 자금을 투여해, 사실상 군수공업을 위주로 하는 '고속개발'을 노리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러시아가 취약한 반도체 생산도 이제 국가적 투자로 지원한다. 푸틴이 운영하는 정권은 분명히 범죄적 독재지만, 개발독재인 만큼 나름의 대중적 기반을 갖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푸틴 퇴장 이후에는 아마도 좀 더 온건한 노선으로 가겠지만, 그 후임자들이 당분간 계속 이 시스템을 운영할 것으로 본다."

- 미국 대선결과와 남북평화 관계에 대한 영향을 어떻게 보나? 해리스와 트럼프 중 누가 한반도 평화에 유리하다고 보나?

"트럼프는 어쩌면 북한정권에 대한 포섭시도를 다시 해볼 수 있지 않나 싶어 이 부분에 대한 나름의 기대를 해본다. 그러나 북한정권은 이미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망에 나름대로 안주한 것 같기도 해서, 트럼프가 포섭을 다시 시도해도 이미 시기가 많이 늦어진 것 같다. 해리스가 될 경우 아마도 북한이라는 핑계를 계속 이용해 중국에 대항하는 한미일 블록의 공고화를 지속하지 않을까 싶다. 이 경우에는 한반도 상황이 좋게 바뀔 일은 별로 없다."

- 현재 이란-이스라엘 전쟁 등 중동문제는 영국, 미국 등 유럽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다. 이 중동문제를 영국, 미국 등 유럽이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스라엘 군수복합체와의 일체 협력관계를 유럽업체부터 시작해서 중단 또한 청산하기에 들어가면, 그때쯤 이스라엘은 아마도 팔레스타인 측에 대해 전향적인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할 것 같다. 그러려면 일단 유럽대중으로부터의 아주 강력한 압박이 필요하다. 그래도 유럽에서는 대중으로부터의 압박이 정치판의 변수가 될 수 있다."

- 끝으로 한국은 요즘 세계 최저출산율과 노인층 최고자살률로 고민 중이다. 이 문제를 한국정부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국민연금의 내실화, 노인빈곤문제의 해결이 관건일 것 같다. 지금 평균적으로 노인 1명이 한 달에 약 65만 원을 받는데, 사실 이 정도의 금액으로는 생존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부유층에 대한 세율, 법인세 그리고 노후연금 인상이 선결문제다. 재분배정책 이외에는 노년층 문제의 해결방법은 없다. 최저출산율은 결국 유럽처럼 모든 아동들에 대한 국가의 과감한 양육비 지원,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사회복지가 실현되어야 해결될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박노자 교수는 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코노프'다. 지난 2001년 귀화해 한국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대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모스크바대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주목받았으며, <당신이 몰랐던 K> <미아로 산다는 것>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전환의 시대> 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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