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살아있는 글 <민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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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수명이 길다.
간혹 수 백년 수 천년 전의 글이 오늘에도 생명력을 갖고 있음을 보게된다.
'민암'은 "백성은 위정자를 뒤엎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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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기자]
▲ 백성을 물로 본 선비가 있다. 백성들 마음은 위험하다 말하지 말라고 한 선비는 칼을 찼다. 심지어 방울도 달았다. 선비는 조선 시대 선조를 위해 <민암부>를 지었다. 그는 남명 조식 선생이다. 남명기념관에 있는 남명 조식 상(像) |
ⓒ 김종신 |
남명의 글 중에 <민암부(民巖賦)>도 이에 속한다. '민암'은 "백성은 위정자를 뒤엎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민 암 부
유월 어름 장마철에
염예퇴(灩澦堆)가 말과 같아
올라갈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다
아아
험함이 이보다 더한 데는 없으리니
배가 이로 인해 가기도 하고
또한 이 때문에 엎어지기도 한다
백성이 물과 같다는 말은
예로부터 있어왔으니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백성은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
내 진실로 알거니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물이니
험함이 밖에 나타난 것은 만만하게 보기 어렵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마음이니
험함이 안에 감추어진 것은 만만하게 보기 쉽다
걸어 다니기에 평지보다 더 평탄한 곳이 없지만
바늘을 겁내지 않다가는 눈을 다친다
재앙은 실로 소홀히 하는 데서 생기나니
험함이 계곡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한이 마음 속에 있을 적엔
한 사람의 생각이라 몹시 미세하고
필부(匹婦)가 하늘에 호소해도
한 사람일 적엔 매우 보잘것 없다
그러나 저 밝은 감응이란 다른 데 있지 않으니
하늘의 보고 들으심이 바로 이 백성에게 있다네
하늘은 백성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들어주니
마치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와 같다
한 사람의 원한, 한 아낙의 하소연, 처음엔 하찮은
것이나
끝내 거룩하신 상제(上帝)께 대신 갚아주기를 바라니
그 누가 감히 우리 상제를 대적하리?
실로 하늘이 내린 험함은 건너기가 어렵도다
하늘이 만고에 걸쳐 험함을 보였건만
얼마나 많은 제왕들이 이를 예사로 보았던고?
걸(桀)ㆍ주(紂)가 탕(湯)ㆍ무(武)에게 망한 것이 아니라
바로 백성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漢)의 유방(劉邦)은 보잘것없는 백성이었고
진(秦)의 호해(胡亥)는 대단한 임금이었는데
필부(匹夫)로서 천자(天子)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이처럼 큰 권한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다만 우리 백성의 손에 달려 있으니
겁내지 않아도 될 만한 것, 몹시 겁낼 만하도다
아아, 촉산(蜀山)의 암험함이
어찌 임금을 넘어뜨리고 나라를 엎을 수 있으리오?
그 암험함의 근원을 찾아보면
진실로 임금 한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불량함에 말미암아
여기서 위험이 가장 크게 된다네
궁실이 넓고 큼은
암험함의 시작이요
여알(女謁)이 성행함은
암험의 계단이요
세금을 끝없이 거두어들임은
암험함을 일으켜 세움이요
부극(掊克)이 자리를 차지함은
암험으로 치닫는 길이요
형벌을 자행함은
암험을 돌이킬 수 없게 함이다
비록 그 암험함이 백성에게 있다지만
어찌 임금의 덕에서 말미암지 않겠는가?
물은 하해(河海)보다 더 큰 것이 없지만
큰 바람이 아니면 고요하고
암험함은 민심보다 더 위태로운 것이 없지만
포악한 임금이 아니면 다 같은 동포인 것을!
동포를 원수로 생각하니
누가 그렇게 하도록 하였는가?
남산이 저렇듯 우뚝하지만
돌이 험하게 붙어 있고
태산이 저렇듯 험준하지만
노(魯)나라 사람들이 우러러 본다
그 암험함은 마찬가지로되
안위(安危)는 다르도다
나로 말미암아 편안하기도 하고
나로 말미암아 위태롭기도 하니
백성을 암험하다 말하지 마라!
백성은 암험하지 않느니라. (주석 1)
주석
1> 앞의 책, <남명집>, 153~15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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