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 떠난 청년, 나는 왜 못 떠났을까?
[고은 기자]
▲ 영화 <한국이 싫어서> 포스터 |
ⓒ 디스테이션 제공 |
몸만한 가방을 앞뒤로 맨 주인공은 한국이 싫어서 뉴질랜드로 떠난다. 영화를 보내는 내내 궁금했다. 한국이 싫어서 떠난 계나와 한국의 싫어도 떠날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본 나 사이의 간극을 알고 싶었다.
▲ 서울 길거리를 걷는 계나의 모습. 추위에 떨며 코트를 여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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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싫어하는 계나에게 그해 겨울은 유독 고통스러웠다. 부모님은 아파트 재개발을 앞뒀다는 이유로 고장난 보일러도 고치지 않는다. 24평 입주를 희망하며 돈을 보태라는데, 계나는 술에 취해 들어온 밤 아빠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 그냥 18평에 사시면 안 돼요?" 계나는 그동안 모은 돈을 아파트에 붓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한국 생활을 뒤로 하고 따뜻한 나라 뉴질랜드로 떠난다.
'행복 찾기'보다 '불안 없애기'가 급한 요즘 청년들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행복'이다. TV에 나온 행복전도사가 묻는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당장 지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말이다. 계나는 책 <돈보다 행복을 모아라> 저자의 말에 처음에는 코웃음 치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에 질문을 키운다.
부모 세대에게 10년 만기 적금이 행복이라면 자녀 세대에게 행복은 당장의 커피 한 잔이다. 낯선 땅 뉴질랜드에서 계나는 행복을 모은다. 물론 완벽한 낙원은 아니었다. 일터에서 인종차별을 당하고 경찰에 조사받는 위기도 맞지만 어떻게든 헤쳐 나간다. 잔디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유람선 위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충전한 힘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 충만한 얼굴의 계나를 보면서 한편으로 기시감이 들었다. 지금 청년들이 과연 계나의 삶을 꿈꾸고 원할까?
원작 소설이 발표된 10년 전과 상황이 달라졌다. '탈조선'을 꿈꾸던 청년들은 이제 '쉬었음 청년'이 됐다.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들을 의미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이러한 쉬었음 청년이 무려 70만 명에 이른다. 한국은커녕 집 밖으로 한 발짝 내딛기 어려운 청년부터 번아웃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청년까지 집계된 숫자 속에 있다. 10년 새 취업은 더욱 어려워졌고 실패는 누적됐다. 불안과 패배감에 압도돼 어디론가 도망칠 추진력도 잃었다.
▲ 뉴질랜드 햇살을 받으며 친구와 기타를 치는 계나. 웃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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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행복보다는 '편안함', '별일없음' 같은 단어를 내 삶에 들이고 싶었다. 한국이 싫어도 떠날 수 없는 청년들이 자신이 선 곳에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보낼 순 없는 걸까. 이 갈증이 커질 무렵 계나도 이런 말을 한다. 뉴질랜드에 3년 동안 살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보니 춥지 않고 배부르면 대체로 행복한 것 같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행복은 과대평가 된 것 같다고 느낀다.
2번째 뉴질랜드행, 계나는 다른 마음을 안고 간다. 처음에는 한국이 싫어서 도망치듯 떠났다면 이제는 '나를 긍정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괜찮다고 생각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의 행복, 당장의 쾌락적인 행복보다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는 기쁨을 찾은 계나를 보는 게 좋았다. 나도 얼마든지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먹는 맛있는 음식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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