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고래들 보며 청년 항해사가 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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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순 기자]
주말 낮에 집에 있다가 TV를 틀었는데, 화면 가득히 드넓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가 나오더군요. SBS-TV 다큐멘터리 4부작 <고래와 나>였습니다.
순식간에 빠져들어 시청하던 중, 커다란 그물에 혼획(목표하지 않은 다른 어종, 해양포유류 등까지 모두 포획되는 것)된 고래가 죽어가는 끔찍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와 함께 어선들이 바다에 마구 버리는 무분별한 해양쓰레기, 그리고 이런 어선들의 쓰레기 투기 문제점을 증언하는 공익 제보자가 나왔습니다.
화면에선 모자이크 처리한 채 나왔지만, TV화면을 보면서 저는 그게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작년 말,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송년회에서 만난 김민수님이 바로 이 제보자라는 말을 이미 들었거든요.
민수님은 제주에서 해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양어선에 취업해 약 6년 동안 일하다 얼마 전에 퇴직했습니다.
▲ 다큐 속 제보자로 등장한 청년(유튜브 방송화면 갈무리) |
ⓒ SBS |
민수님은 오랜 고민 끝에 몰래 이 상황을 영상에 담아 공익제보를 했습니다. 이 장면은 다큐 <고래와 나>에 그대로 나옵니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제보를 한 청년 김민수님을 제주 시내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5년 넘게 배 타며 너무 많은 생명들을 죽여야 했다
그는 만나자마자 대뜸 질문을 제게 던졌습니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혹시 (저 나온) 다큐 보셨어요?"
- 네, 봤죠.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민수님인 줄 딱 알겠더라고요. 그렇게 제보하고 증언한 거, 무척 용감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궁금한 게 많습니다. 우선 원양어선에서 일한 민수님의 바다에 대한 기억,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뭔가요?
"(일을 시작한) 2016년쯤인데요. 아주 컴컴한 밤이었어요. 남태평양 바다였죠. 항해를 하던 중 배가 바다에 멈춰 선 상태였고요. 그 어떤 배도 없고 육지도 보이지 않는 그냥 온전히 제가 탄 배만 있는 그런 바다였어요. 배의 꼭대기에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고 진짜 별만 가득한 거예요. 그냥 그 자리에 누워 봤어요.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제가 우주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도 없는 우주에 버려진 것 같은 그런 극한의 고독과 외로움을 그때 느꼈어요. 수평선도 뚜렷하지 않은 드넓은 바다에서 누우면 하늘만 보이는 그런 바다가 떠올라요."
- 민수님은 원양어선에서 꽤 오랫동안 일했다고 들었는데요.
"음, '왜 배를 탔냐'고 누가 물어보면 저는 (농담조로) '팔려갔다'고 했어요, 학교에서 나를 팔았다고요. 학교에서 실습을 나갔는데 저는 배 타고 놀러 가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징어를 잡더라고요.
▲ 원양어선에서 크레인 및 윈치 등을 다루는 모습 |
ⓒ 김민수 |
"참치를 잡는 원양어선이었어요. 참치를 잡는데 기분이 좋진 않더라고요. 수많은 어류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 힘들었어요. 시간이 가면 나아질까 했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더 심해졌죠.
다른 사람들은 참치가 잡히면 기분이 그렇게 좋대요. 그런데 저는 기분이 좋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이유는 너무 많은 생명들을 죽여서(그랬던 것 같아요). 5년이 넘는 시간을 어선에서 보내며 너무 많이 죽이게 되니까 '이건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덜 큰 작은 생명체들까지 죽이는 모습들을 보니까...(힘들었어요).
언젠가는 생선들이 배의 갑판 데크에 엄청 많이 쌓여 있었는데 눈이, 그 눈과 내 눈 사이 거리가 너무 가깝다 보니까 마치 다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다 죽은 치어들이었죠. 그게 아직까지도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어요. 다신 보고 싶지 않아요."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살아있는 생명을 끊어내면서 먹는 게 힘들거든요. 그래서 육식은 안 하고 해산물은 먹는데, 생선도 눈이 보이면 못 먹어요.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선생님>을 보고 나니 더 고민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어패류는 먹고 있어 공감이 됩니다. 이제 <고래와 나> 다큐에 대해 질문하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원양어선의 불법 상황을 제보하게 되었는지요? 또 다큐에는 어떻게 나온 건지 궁금합니다.
▲ 다큐 속 불법 고래 포획 뒤 다쳐서 피 흘리는 고래를 어쩔수 없이 풀어주는 장면(유튜브 방송화면 갈무리) |
ⓒ SBS |
하선을 한 후 어떤 분의 소개로 <고래와 나>피디님과 연락이 닿았어요. 이 상황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면 SBS의 이 프로그램에 제보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출연하게 된 거죠."
- 배에서 벌어지는 불법 상황을 몰래 찍는다는 것이 굉장히 위험했을 것 같아요. 쉽지 않았을 텐데요.
▲ 스피드보트를 타고 있는 김민수 |
ⓒ 김민수 |
"되게 많이 긴장했어요. 위험한 일이었기에 각오를 하고 있었고, 저는 제가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면 그냥 감옥에 가지 뭐'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나의 경험이라고 다짐하면서요. 그런데 TV에서 방영되었는데도 정작 그 사람들은 그런 다큐가 나왔는지도 몰라요. 당사자인 회사도 모르고.
그냥 바다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 몇 명만 알고 있더라고요. 죽어가는 바다 생명체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 출연했지만, 결과적으로 여파가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 다큐에서는 제보자인 민수님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나오던데 지금은 어디까지 밝힐 수 있는 건가요?
"지금은 회사도 그만뒀어요. 저는 제보한 사람이 저라는 걸 밝히고 싶어요. 다큐가 나갔어도 너무 여파가 없고,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아 속상해요."
- 이번 인터뷰를 시작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조업 상황에 대해 증언할 기회를 마련하면 좋겠네요. 바다 생명체들에 대해서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음... 미안한 마음입니다. 제주 바다만 보더라도 해양 쓰레기가 엄청 많이 밀려오고 있거든요. 거북이들이 낚싯줄을 먹고 폐사하고, 돌고래들이 지금도 그물에 걸려서 힘들어하고 있잖아요. 제가 가진 모든 힘을 써서라도 도와주고 싶어요. "
- 다큐에 나오는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몇 년 전에 본 <씨스피라시>란 다큐도 생각나고요. 큰 물고기가 바다 위 떠 다니는 하얀 비닐봉지를 오징어인 줄 알고 그대로 꿀꺽 삼키는데, 너무 끔찍했어요.
"바다의 수많은 쓰레기들이 어선을 통해 흘러나오는 거니까. 제가 그 상황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힘을 가진 누군가가 저를 잘 이용해서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다큐에 출연한 거예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아요. "
- 파장이 없는 것 같다고 너무 실망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민수님 제보로 알려진 상황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질 겁니다. 민수님 같은 젊은 나이에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또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바다 관련한 영화나 책 추천할 게 있나요?
"<동부태평양어장 가는 길(최희철 저)>이라는 책이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 저자가 먼저 하셨고 문제점을 정확히 알려주신 분이더라고요. 그 책을 많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
- 특별한 경험을 가진 민수님을 만난 거, 소중한 기회라 생각합니다. 원양어선에서의 삶에 대해, 조업 과정에서의 불법 상황을 증언해 주신 용기 있는 행동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바다 환경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아요.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인터뷰는 끝났지만, 이런 상황을 알리려는 활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민수님은 오는 9월 24일(화) 오후 3시, 뉴스타파 함께센터(서울 충무로)에서 열리는 '2024 해양시민과학포럼'의 발표자 중 한 명으로 참석해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입니다(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녹색연합, 인천녹색연합, 황해물범시민사업단 공동주최). 민수님이 들려줄 이야기를 기대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뉴스레터 인터뷰를 보강한 것입니다. 해당 뉴스레터와 개인 브런치에도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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