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생계 파탄, 한 달 폭염 물 없이 버틴 수해민 이야기

옥천신문 이훈·양수철 2024. 9. 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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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수해가 남긴 상흔, 요원한 일상회복... 50년 살던 집은 침수, 생업 복숭아는 썩었다

[옥천신문 이훈·양수철]

ⓒ 옥천신문
"아무 생각도 안 나. 멍 하니 있어, 그냥."

충북 옥천군 이원면 원동리에 사는 A씨는 지난 7월 10일 내린 폭우가 남긴 상흔을 좀처럼 지우지 못 하고 있었다. 50년 동안 살았던 집은 침수됐고, 수도가 끊겼다. 비닐하우스는 쓸려 내려갔고, 복숭아 저장용 저온창고는 망가졌다. 아침에 내다 팔려고 수해 전날 저녁에 따다 놓은 복숭아는 썩어 문드러졌다.

수해 피해를 입은 지 한 달 반이 지났지만, 일상 회복은 요원하기만 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분간조차 어려워 군과 면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더 이상 지원할 근거가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폭우로 망가진 수도시설 재설치에만 700만원, 저온창고는 폐기 처분해야

지난 7월 10일 이원면에만 126mm 양의 많은 비가 내렸다. 시간당 56mm가 내리면서 옥천 9개 읍·면 중 최고 시우량을 기록했다. 새벽에 내린 폭우로 원동리 일대 산지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국도4호선 옥천 원동삼거리~영동 양목사거리 구간 7.7km가 전면 통제됐다. 도로 위로 상당한 낙석, 토사유입이 발생하면서 복구하는 데만 약 9시간이 소요됐다. 국도4호선과 도로변에 인접한 A씨의 집이 바로 이 산사태 현장의 한가운데 있었다.

A씨는 "(수해 당일) 새벽에 이상한 소리가 나서 집 밖으로 나와보니 집 뒤편 야산에서 산사태가 나면서 큰 돌들이 물길을 막아 우리 집 쪽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더라"면서 "물길을 다시 도랑 쪽으로 틀려고 새벽에 산에 올라 큰 돌을 치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목숨은 구했지만 일상은 파탄이 났다. 폭우에 쓸려내려온 토사와 낙석이 A씨의 집과 비닐하우스를 덮쳤다. 침수된 집에서 도저히 지내기 어려워했던 아들과 딸은 할머니 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수도시설과 정화조가 망가지고, 가스통이 침수됐다. 집에서 씻을 수도, 마실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자 이원면과 옥천소방서에서 급수를 지원했다. 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했다. 지원받은 급수도 금방 소진돼 결국 바깥에서 말통에 담은 식수를 사들여왔고, 지난 8월 27일에서야 사비 700만 원을 들여 지하수를 새로 팠다. 식사는 할머니댁에 머무르는 딸이 배달해주고 있다.

하루 500~600박스 수확하던 복숭아도 손도 못 대 피해액 상당
ⓒ 옥천신문
하지만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물은 해결됐지만 침수로 인해 망가진 가구와 생활용품, 농업용 기계 등을 정리하고 파손되고 물때가 낀 집안 곳곳을 손봐야 한다. 수해 직후 자원봉사단체가 한나절 응급복구 지원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1000만 원에 달하는 저온창고도 쓸 수 없게 돼 폐기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복숭아 농사를 짓는 A씨가 이런 집을 뒤로하고 밭으로 나갈 수는 없는 처지다.

A씨는 "사람들은 나보고 '한창 복숭아 따야 할 때인데 저렇게 돌아다니기만 하냐'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복숭아가 손에 잡히겠나. 집이 이렇게나 엉망인데"라고 속상함을 털어놨다.

하필 복숭아를 한창 수확할 시기에 수해를 입어, 벌어들였어야 할 소득조차도 손에 쥐지 못 했다. 약 1만 평 정도 농사를 짓는 A씨는 하루에 500~600박스 양의 복숭아를 수확한다.

A씨는 "우리는 노지가 아니라 하우스 재배를 한다. 그래서 항상 빨리 딴다. 그런데 한창 따야할 때 수해가 난 거다"라며 "복숭아는 닷새면 다 썩는다. 익었을 때 빨리빨리 따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지금은 흔적도 없다"라고 한탄했다.

한편, 산사태가 난 지역은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지정돼 A씨의 안전에도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에 옥천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정돼 산사태 피해를 입은 지역을 복구하는 데 국비가 지원되지만, 국비가 언제 교부될지는 미지수다.

군 산림과 산림보호팀 담당자는 "(A씨의 집 인근 산사태 현장을) 현재 응급복구만 한 상태"라며 "국비가 올해 내려올지 내년에 내려올지 모르지만, 국비가 지원되는 대로 군에서 사방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적 지원은 응급복구에 그쳐... 수천만원 피해 나도 재난지원금은 고작 300만원

지난 7월 25일 옥천군은 군정 역량을 총동원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지정됐지만, 정작 수해민들은 웃을 수 없었다. 특별재난지역에 대한 국고의 추가 지원은 공공시설물 복구에 한정되고 수해민 지원은 공공요금 감면 등 간접 지원 형태에 그치기 때문이다.

수해민들이 일상의 회복을 위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이 '재난지원금'인데, 이마저도 지급 기준과 규모가 수해민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비판이 뒤따른다(관련 기사 : 전재산 모두 잃어도, 침수 재난지원금은 무조건 300만원? https://omn.kr/29m9i ).

A씨 또한 마찬가지다. 지하수를 새로 파는 데만 700만 원이 든 A씨는 다른 수해민들과 동일하게 재난지원금 300만 원과 옥천군 차원에서 지정기탁성금을 활용해 지급한 100만 원을 지원 받았다. 옥천군은 지난 8월 27일 호우 피해 복구를 위한 예산을 담은 2차 추경예산안을 군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지만, 해당 예산은 이미 예비비를 통해 선지급된 재난지원금이거나 공공시설물 복구에 한해 쓰이는 예산으로 드러났다.

이규순 옥천군 복지정책과 복지기획팀장은 "수해민을 대상으로 한 지원은 응급복구식으로 이뤄진다. (A씨 사례를) 산사태 피해로 보고 산림과에 지원할 수 있는 게 없냐고 문의해봤으나 별다른 지원책이 없다고 답변을 받았다"면서 "군이나 면에서 다시 방문해 한 번 더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서 7200만원 상당의 농촌사랑상품권을 군에 지원했는데, 이 또한 주택 피해를 입은 세대에 100만 원씩 지급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옥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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