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으로 떠난 동생, 사별보다 힘들었던 건..."

제스혜영 2024. 9. 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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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사망률 1위인 나라 스코틀랜드 ... 절망의 구덩이에서 보여준 연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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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혜영 기자]

 보라색 리본. 회복을 상징한다
ⓒ 제스혜영
"포스 밸리(forth valley) 지역에서만 62명이 죽었어요."

처음 만난 존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가 하는 말이었다. '포스 밸리'라 하면 스털링(Stirling), 폴커크(Falkirk), 클랙만난셔(Clackmannanshire) 등 3개의 지방 당국을 묶어놓은 지역구를 말한다. 내가 사는 마을은 클랙만난셔에 속한다. 스코틀랜드에서 3년 넘게 살면서 주위에서 약물 남용(Drugs)으로 사망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었다. 하지만 2023년에만 62명이 죽었다는 말은 놀라웠다. 더 큰 충격적인 사실은 지난 한 해 스코틀랜드에서 1172명이 약물 남용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회복 스코틀랜드 조사)

존은 '회복 스코틀랜드'(Recovery Scotland)라는 단체의 대표로 오늘 열릴 '국제 약물 남용 인식의 날' 추모식을 인도할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매년 8월 31일이 되면 '국제 약물 남용 인식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 날은 약물 과다 복용을 종식시키고 사망한 사람들을 낙인 없이 기억하며 남겨진 친구와 가족의 슬픔을 인정하기 위함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4년의 주제는 '함께 할 수 있다(Together we can)'로, 우리 모두가 함께 뭉쳐서 지역사회의 힘을 더해 주자는 캠페인으로 모였다.

낙인 없이 추모하다
 알로아 타워에서 항으로 걸어가기
ⓒ 제스혜영
솔직히 나는 '국제 약물 남용 인식의 날'이 있는지도 몰랐다. 남편이 간다 길래 그저 따라나섰다. 스물 명 넘은 사람들이 알로아 타워(Alloa Tower)로 모였다. '회복 스코틀랜'드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는 릴리가 보라색 리본을 나누어 주었다. '보라색'은 회복을 상징한단다. 우리는 보라색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그리고 존이 나눠줬던 하얀 장미를 손에 쥐고 알로아 타워에서 멀지 않은 항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수년간 마약복용을 했다던 폴을 만났다. 그는 마약을 몇 달간 끊었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했고 다음 주 목요일엔 뉴캐슬(Newcastle)에 있는 마약재활센터로 6개월 동안 머물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빌리는 1년 동안 마약재활센터에 있었다며 그 덕에 마약을 끊을 수 있었다고 했다. 빌리는 폴에게 잘 할 수 있을거라며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마이클이라는 사람도 만났다. 그도 몇 년동안 마약을 복용했다가 몇 달 전 부터 중단했다고 한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백발의 할아버지는 쉽지 않았을 결정을 했다며 훌륭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마이클을 향한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알로아항에 도착했다. 먼저는 '스코틀랜드 가족'(Scottish Families)이라는 자선단체에서 가빈이 오프닝 연설을 했다. 가빈은 자신의 동생이 마약으로 죽었다고 했다. 동생은 스마트하고 유머가 많은 사람이었다. 동생은 마약을 중단하고자 무단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마약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고 사별하는 데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차가운 주변의 시선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술과 마약에 영향을 받은 가족들에게 상담을 제공하고 그들의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두번째로는 27살 아만다가 자신이 지은 시를 낭독했다. 아만다의 엄마는 최근에 알콜과다로 목숨을 잃었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회복 스코틀랜드' 자선단체에서 운영하는 돌봄(약물과 알콜 중독자를 위한)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사랑하는사람을 기억하는 기쁨이 있었고 잃어버린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슬픔도 있었다. 또한 앞으로 살아가야 할 희망도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목사님이 성경을 읽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한 쉼 얻기를 원하신다."(마태복음 11:28-30)

그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해 마음으로 동정하고 행복한 쉼을 얻도록 그들의 가정을 위로하고 기도로 마쳤다.
 지역교회를 섬기는 데이비드 목사님
ⓒ 제스혜영
은빛으로 변해버린 강물은 조용하고 잔잔했다. 그 주위를 동그랗게 모인 사람들도 강물만큼 조용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나는 가 하면 살며시 눈물을 닦는 사람도 보였다. 기도를 마친 목사님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자며 하얀 장미를 강물에 던지자고 했다.

우리 집 스트리트(거리)에서만 약물 과다 복용으로 아들과 딸을 잃은 부모가 두 가정이나 된다. 지난해에는 한 엄마가 어린 두 자녀를 뒤로 한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그의 어머니가 땅을 붙잡고 통곡하던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살아 있을 아이들의 안녕을 기도하며 하얀 장미를 물속으로 던졌다. 은빛 강물에 하나 둘 장미꽃이 떨어졌다.

2023년 스코틀랜드의 15~64세 인구 백만 명당 평균 277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는 마약으로 인한 사망률이 영국에서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1위로 뽑힌다. 유럽연합 의약품청(European Union Drugs Agency)에 따르면 유럽에서 마약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나라 2위는 백만 명당 사망자가 95명인 에스토니아. 3위는 백만 명당 사망자가 86명인 노르웨이로 밝혀졌다.(2022년 기준)

스코틀랜드 보수당 대표인 더글라스 로스(Douglas Ross)는 마약으로 인한 사망은 "국가적 수치"라고 말했다. 정부가 밝힌 계획으로 전국 일부 지역에 안전한 치료 서비스실과 더 많은 약물 테스트 시설을 언급했다. 연 간 최대 230만 파운드를 확보하고 시설을 위해 2024/25년에 직원을 고용하기로 합의했다.(BBC보도)

함께 싸워야 할 '질병'
 약물 과용으로 잃어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며 던진 하얀 장미
ⓒ 제스혜영
추모식이 끝나고 추모식을 인도했던 릴리는 오늘 참여해 줘서 고맙다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서른 살에 헤로인을 시작했고 10년 동안 마약에 시달렸던 릴리. 마약 때문에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값지게 새로운 삶을 얻은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회복 스코틀랜드'의 단체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는 그녀. 정부가 '국가적 수치'라고 말할 때 릴리는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했다. 누군가 마약을 중독으로 보지말고 질병으로 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마약이라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에서 밧줄을 건네주고 빛으로 나오라며 한 가닥의 빛을 비춰주는 사람들. 릴리만이 아니라 오늘 용기를 내어 함께 걸었던 존, 가빈, 아만다, 마이클, 폴 등,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며 연대의 힘을 보여줬다. 이 질병이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함께 싸우는 거라고. 이러한 힘은 정부의 말 많은 계획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을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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