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한테 말했는데 로봇이었다…AI vs 인간 콜센터 전쟁

정현진 2024. 9.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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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도입 후 강제 무급휴직·이직 이어진 필리핀
"향후 5년간 최대 30만개 일자리 사라져"
"AI 기술 활용한 기회 창출" 목소리도

글로벌 기업의 콜센터가 집중돼 있는 필리핀에서 인공지능(AI)이 콜센터 인간 직원의 일자리를 빼앗으며 그야말로 기계와 인간의 한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AI 기술이 가장 먼저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분야로 콜센터가 꼽히는 상황에서 치열한 전투 과정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세계의 콜센터 수도'가 AI 열풍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며 "필리핀의 아웃소싱 산업 종사자들이 전 세계 사무직 근로자가 겪게 될 상황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에서 20년 가까이 콜센터 기술 지원 담당으로 일했던 크리스토퍼 바우티스타는 지난해 11월 70여명의 동료와 함께 무급 휴직 처리됐다. AI가 콜센터 직원 업무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인력이 불필요해지면서 나온 결과다. 그는 이후 6개월간 영업직 업무를 했고, 현재 업무 대기 상태다.

신용카드 회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지한 엘리야 팔로마도 본인과 남편, 친오빠가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어 AI가 직원을 대체하는 이러한 상황이 불안하기만 하다. 그는 "AI가 내 일자리를 뺏는다면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17년 차 콜센터 직원이었던 남편은 이미 연 초 AI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고 설명했다.

필리핀에서는 챗GPT를 활용해 콜센터 상담원을 교육하는 일도 빈번하다. 신입 직원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도록 교육하기 위해 AI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여러 캐릭터를 맡아 항의하면 이에 대응하게끔 하는 식이다. 또 다른 콜센터에서는 인간 상담원이 통화한 내용을 AI가 요약하는 등 업무 처리에 도움이 되게끔 활용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AI 기술을 활용해 콜센터를 바꾸느라 분주하다. 스웨덴 핀테크 기업인 클라나방크는 AI봇이 정규직 상담원 700명 업무량 수준인 고객 서비스 3분의 2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에는 오픈AI가 AI 음성 모델인 GPT-4o를 공개,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AI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필리핀은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아웃소싱 센터를 운영하는 국가로 평가받는다. 콜센터 산업은 필리핀의 가장 큰 민간 부문 일자리 창출 산업으로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사업이다. 필리핀 통계청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평균 콜센터 영업 직원은 2022년 월급이 2만869페소(약 50만원)로 민간 병원 간호사와 비슷하다.

필리핀 아웃소싱 자문회사인 아바산트는 향후 5년간 최대 30만개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 일자리가 AI로 인해 사라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BPO 일자리에는 콜센터를 포함해 인사관리, 데이터입력 등 단순하면서도 비핵심적인 업무가 포함된다. 다만 AI로 알고리즘을 교육하거나 데이터를 큐레이팅하는 등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다면 1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아크샤이 카나 아바산트 파트너는 "필리핀에서 아웃소싱 산업에는 일생일대의 리스크이자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모두가 암울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AI 등이 콜센터 운영에 활용되면서 오히려 미국 등에서 운영비가 높을 것을 우려해 필리핀에 수요가 늘어나는 경우도 크다고 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뉴어크에 본사를 두고 필리핀에 50여개의 콜센터 사업장을 운영, 10만명의 필리핀 직원을 채용한 콘센트릭스의 크리스 콜드웰 최고경영자(CEO)는 AI가 오히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기존 인력이 업무에 적응하기 쉽게 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필리핀의 한 콜센터는 AI로 직원을 교육하면서 신입 직원이 일에 적응하는 기간이 기존 90일에서 한 달 정도로 단축됐다고 호평했다.

필리핀 정부는 이러한 변화가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사안인 만큼 AI 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등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아르세니오 발리사칸 필리핀 국가경제개발 장관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 않는다면 분명 AI가 당신(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면서 "그게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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