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다이어리] 中 '일국양제' 체험기
지난 6월 중국 베이징과 홍콩을 오가는 고속철이 개통됐다. 같은 노선의 기존 열차가 출발에서 도착까지 19시간~24시간가량 걸렸다면, 새로 뚫린 고속철은 12시간30분 정도로 절반까지 소요 시간을 단축했다. 매주 금요일에서 월요일까지 나흘 동안 하루 한 차례 운행되고, 출발지에서 오후 6시반께 탑승해 다음 날 이른 새벽 도착하는 식이다. 중국 대륙을 잇는 여느 야간 고속철과 마찬가지로 앉아가는 좌석과 누워가는 침대칸으로 구분돼있다.
효율의 측면에서 이 열차는 그 존재의 의미를 찾기 힘들다. 이미 베이징과 홍콩을 연결하는 항공편이 셀 수 없이 많고, 심지어 가격도 더 저렴하다. 금요일 출발 기준 베이징에서 홍콩으로 가는 직항(약 3시간 30분) 항공권 가격은 800위안대(약 15만원대)로 12시간여를 앉아가는 2등석 가격과 거의 동일하고, 자면서 이동하는 침대칸(1170위안, 위 칸 기준)보다는 오히려 저렴하다. 이동 시간을 생각하면 고려하기 힘든 선택지이다. 일각의 주장처럼 '홍콩의 중국화'를 염두에 둔 노선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특파원이라는 이방인으로 베이징에 머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번은 이 열차를 이용해 '일국양제'의 홍콩을 다녀와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주말을 할애했다. 혹여나 열차가 궁금한 교민이나 여행객을 위해 일부 이용법과 그 과정에서의 상념을 공유한다.
중국에서 홍콩·마카오·대만을 오가는 항공편과 마찬가지로 베이징-홍콩 간 야간 고속열차도 '국제선'의 개념을 떠올리면 된다. 기자는 베이징(베이징 서역)-홍콩(시지우룽·서구룡역)은 항공편을, 홍콩-베이징 경로에서 열차를 이용했다. 시지우룽역에 도착해 열차에 탑승하기까지 여권을 꺼낼 일이 세 차례 있었다.
입국심사 때에는 왼손과 오른손 열 손가락 지문도 찍었고, 비자 옆에 입국 도장도 받았다. 지난달 22일 탄생 120주년을 맞았던 덩샤오핑의 '일국양제'가 실로 체감되는 순간. 일국양제는 '한 국가, 두 체제'라는 뜻으로 1997년 영국과의 홍콩 반환 협상 과정에서 그가 2047년까지 50년 동안 홍콩의 제한적인 자치를 보장하기로 약속한 것이 골자다.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고 가정해도 역에 진입해 열차까지 도달하는 데에 40분 이상이 소요되니 1시간30분 이상 여유 있게 시간을 잡아 이동하길 권한다. 열차는 안정감있게 움직이고 깨끗하게 관리돼 있지만, 생각보다 시끄럽고 수면에 방해 요소가 많아 귀마개와 안대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콘센트는 4인 베드 한 칸에 하나뿐이라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는 미리 충전해둬야 한다.
베테랑 여행객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중국과 홍콩은 통화가 다를 뿐 아니라 일부 신용카드 외에는 상용되는 결제방식도 다르다. 본토는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를, 홍콩은 현금과 신용카드를 주로 사용한다. 휴대전화도 로밍을 하거나 e심을 구매해야 사용할 수 있다.
영어와 광둥어, 만다린어(표준 중국어)를 대체로 유창하게 쓰는 홍콩인들이지만 외국인이라면 관광 중엔 영어를 쓰는 편이 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상식이다. 만다린어를 쓰는 여행객에게는 다소 불친절하다는 도시 괴담(?)은 체감하기에 사실에 가까웠다.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한국어 쓰는 모습을 노출하는 것이 더 낫다고. 지갑에서 중국 위안화가 튀어나오는 것을 본 젊은 찻집 직원은 내게 머리카락이 두 가닥 들어간 아이스티를 만들어줬고(실화입니다), 동행자와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들은 택시 기사는 신승훈의 '아이빌리브'를 배경음악으로 전지현의 아름다움을 설파했다.
잠시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한 어느 교수님은 중국 본토인에 대한 홍콩 사람들의 양가감정을 설명했다. 국제도시의 일선에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밀착해 살다 중국의 일부로 반환돼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에 젖어야 하는 데 대한 거부감, 그리고 예전의 위상을 잃은 상황에서 본토의 도움 없이는 자력갱생이 어려운 처지 사이에서 비롯된 마음이다.
일국양제의 종료까지는 이제 23년이 남았다. 하나의 중국을 향하는 본토의 앞날은 열차로 베이징에서 홍콩을 오가는 길만큼이나 복잡하고 까다로워 보인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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