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꼬들파' vs '퍼진파' 갈려요…각양각색 라멘세계 [日요일日문화]
서민음식 이미지 강하지만…물가상승 영향에 '흔들'
요즘 우리나라에도 일본 라멘 가게가 많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돈코츠 라멘밖에 안 들어왔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닭 육수 등 다양한 종류의 라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요.
사실 일본 라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종류가 다양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돈코츠(돼지 뼈), 소유(간장), 미소(일본 된장) 말고도 원조 분파도 나뉘고요. 지역에 따라 면도 모양이 천차만별이죠. 심지어 한국과 마찬가지로 꼬들면파와 퍼진면파도 갈리는 것 아시나요? 오늘은 알고 먹으면 더 재미있는 일본의 라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일본 라멘, 차이나타운에서 시작했다일단 라멘은 어떻게 만들어진 음식일까요? 라멘의 시초는 메이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항구도시 요코하마에는 이 당시에도 차이나타운이 있었는데요. 이 차이나타운 출신 요리사가 1910년 도쿄 아사쿠사 중국집에서 면 요리를 만들어 선보인 것이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후 일본에서 차차 많은 버전으로 진화하게 되고, 현재는 독자적인 일본 요리로 자리매김하게 됐죠. 한마디로 일본 땅에서 중국인 요리사에 의해 생겨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돈코츠·소유·미소라멘이 끝?···생선 육수도 있어요라멘은 수프라고 부르는 국물, 면, 토핑 3가지로 이뤄지는 음식입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국물입니다. 일본 라멘은 수프의 종류로 먼저 분류하는데, 이 수프를 구성하는 것은 육수와 양념이죠. 육수에 간장이나 된장 등의 양념을 섞으면 수프가 완성됩니다.
기본 중의 기본은 소유라멘이라고 불리는 간장을 넣은 라멘입니다. 일식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조미료기 때문에 가장 일본인에게 친숙한 맛이라고 합니다. 1910년 도쿄에서 시작돼 그 역사만 100년이 넘었다고 하네요.
소금 간으로 육수 본연의 맛을 살린 시오라멘도 있습니다. 닭 뼈나 돼지 뼈를 우린 국물에 소금 간을 하는데, 국물도 투명한 것이 특징입니다. 사실 간장이나 된장처럼 맛이 강한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맛을 내기 정말 어려운 라멘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일본 된장 미소를 넣은 미소라멘이 있습니다. 이것도 스테디셀러죠. 1955년 삿포로에서 시작됐다고 하네요. 된장이 아무래도 고기 잡내를 잘 잡다 보니 돼지 뼈를 우린 국물과 섞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또 국물 간 자체가 세고 맛이 진하다 보니 야채를 많이 넣어도 딱히 맛이 약해지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미소라멘의 경우 콘, 숙주, 양배추 등을 듬뿍 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소라멘의 경우 고추가 들어간 매운 된장을 사용해 매콤 칼칼한 맛을 살리기도 해 생각보다 호불호 없는 라멘이라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한국인에게 친숙한 돈코츠라멘이 있죠. 설렁탕처럼 탁하고 뽀얀 국물이 특징인데요. 돼지 뼈를 끓이기 때문에 콜라젠 등이 다 스며 나와 제대로 삶은 곳은 국물이 입에 닿으면 끈적하기까지 하죠. 다만 돼지 뼈를 끓이기 때문에 냄새가 좀 나는데, 이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좀 갈리는 것 같습니다.
이것 말고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요. 요즘 한국에도 좀 들어오는 것 같은 토리파이탄 라멘입니다. 돼지 뼈 대신 닭 뼈를 우린 라멘인데요. 돼지 뼈만큼 맛이 진하지는 않지만, 감칠맛이 있어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제 기준에는 삼계탕 국물이랑 맛이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생선, 조개, 갑각류 등 해산물을 육수로 우려 만드는 교카이(魚介) 라멘도 있습니다. 진입장벽이 높긴 한데 마니아층이 탄탄하다고 합니다.
다양한 수프에 어울리는 면도 각기 다릅니다. 우리가 아는 라멘에 들어가는 국수 같은 얇은 면은 호소멘이라고 부르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꼬불꼬불하고 두꺼운 형태의 치지레멘도 있는데요. 미소라멘에 많이 들어가는데, 미소라멘의 본고장이 삿포로라고 말씀드렸죠. 추운 겨울 막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야식으로 라멘을 먹고 싶어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젓가락질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면이 미끄러지지 않게 꼬불꼬불하게 만든 것이 원조라고 하네요.
평양냉면 분파 나누듯…일본도 OO계우리나라도 평양냉면 먹을 때 시초가 어딘지를 따지죠.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우래옥계', '장충동계', '의정부계' 이런 식으로 계파를 분류하는데요. 일본도 비슷한 라멘 문화가 있습니다. 원조 라멘집의 이름을 따서 계파를 나누는데요. 최근 애니메이션 등에도 소개된 지로계 라면은 '라멘지로'라는 집에서 시작해 붙은 이름입니다. 면은 거의 우동만큼 두꺼운 것을 사용하고, 이 면을 다 덮을 정도로 숙주가 수북이 들어가 일단 양으로 승부합니다. 여기에 마늘이나 지방 등의 토핑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죠. 이런 느낌의 라멘을 파는 집들은 모두 '지로계'로 분류하게 됩니다.
이 밖에도 요코하마의 '요시무라야(吉村家)'라는 라멘 가게에서 파생, 일본어로 '집 가'(家) 자를 딴 '이에계' 라멘도 있고요, 도쿄 히가시이케부쿠로의 유명 라멘집 다이쇼켄에서 파생된 '다이쇼켄계'도 있습니다. 이 다이쇼켄의 경우 라멘을 진하고 짭짤한 국물에 찍어먹는 쓰케멘의 원조라고 하네요. 또 같은 다이쇼켄계 안에서도 어패류 국물이 특징인 라멘으로 나뉘는데, 가게 이름은 다이쇼켄으로 똑같은데 에이후쿠초라는 지역에 있어 다이쇼켄계 에이후쿠초 분파로 가른다고 해요.
일본도 꼬들면 vs 퍼진면 논쟁
또 일본에서 라멘 주문할 때 꼭 묻는 것이 면의 익힘 정도인데요. 여러분은 꼬들꼬들 덜 익힌 면이랑 퍼진면 중 어느 면을 선호하시나요? 저는 라면 끓일 때 퍼진 면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별로 겸상하고 싶지 않은데, 의외로 푹 익힌 면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꼬들꼬들하게 끓이면 밀가루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식감도 영 별로라고 하시더라고요. 일본도 마찬가지랍니다.
우리나라 네이버 지식인과 비슷한 야후 재팬 질문 코너에 가면 이 논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진짜로 궁금한데 라멘 집에서 퍼진 면도 주문할 수 있지 않냐. 그런데 그렇게 먹는 사람들이 진짜 있냐, 뭔 맛으로 먹냐"라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댓글에 "덜 익은 면 먹고 싶으면 과자 먹지 그러냐. 면은 잘 삶아야 특유의 감칠맛이 나오는 것"이라는 답변이 달렸더라고요. 댓글은 없었지만 공감 수는 조용히 올라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라멘 주문할 때 면의 익힘 정도를 물어보는 곳이 많습니다. 익힘 정도는 일본어로 '카타사(硬さ)'라고 하는데요. 덜 익힌 면은 딱딱하다는 뜻의 '카타이'를 써서 '카타메(かため)'라고 부르고 퍼진 면은 부드럽다는 뜻의 '야와라카메(やわらかめ)'라고 불러요. 그리고 카타메보다 좀 더 덜 삶는 경우를 '바리카타(ばりかた)'라고 부릅니다. 제 주변 일본인 꼬들파들은 바리카타로 먹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도전해보세요. 이치란에 가신다면 '초카타(超かた)'에 체크하시면 됩니다.
서민 음식 라멘도 물가상승 여파
원래 일본에서 라멘은 서민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이 가격까지는 라멘 먹을 수 있다라는 심리적 장벽이 있어요. '1000엔의 벽'이라고 부르는데요. 라멘 값이 아무리 비싸도 9000원은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최근 계속되는 엔저 등으로 물가가 많이 뛰었죠. 식자재나 수도, 가스비가 급등하고 인건비까지 오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서민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니 가격을 함부로 올리지는 못하고, 결국 요즘 도산하고 있는 라멘가게들이 많다고 하네요. 민간 신용조사기관 도쿄상공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2월 도산한 라멘가게는 전년 대비 114.2% 증가한 45곳으로, 2009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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