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이 들어오기 전 증거를 없애도 되나요?

2024. 9. 1.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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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 마 압수수색’(18)]

압수수색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근거하여 진행된다. 수사기관은 은밀하고 신속하게 압수수색을 집행한다. 당사자는 기습적인 압수수색으로 당황하고 위축된다. 형사소송법은 당사자가 영장을 제시받는 단계부터 압수물을 돌려받는 단계까지 당사자의 권리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자신의 권리를 잘 알지 못한다. 이 글은 증거를 인멸하거나 압수수색을 피하는 방법에 관한 글이 아니다. 법에 규정된 당사자의 권리를 알려줘 수사기관과 당사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제대로 된 수사와 방어를 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압수수색은 은밀하고 신속하게 증거를 수집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은 조용하게 압수수색에 착수합니다. 수사에 착수한 사실이 알려지면 증거인멸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도 지인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 제작자들과 36주 태아를 낙태한 의혹을 받는 의사가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등 증거인멸은 종종 일어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수사가 시작되거나 압수수색 가능성이 있다면 증거를 없애거나 다른 자료로 바꿔치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경우 당연히 증거인멸죄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증거인멸죄가 인정되면 최대 5년 동안 교도소에 가야 합니다. 형법은 아래와 같이 증거인멸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155조(증거인멸 등과 친족간의 특례)
①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자신이나 같이 사는 가족의 범죄 증거는 인멸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런데 형법에서는 ‘타인의’ 형사사건, 즉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에 손을 대는 경우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나’의 형사사건이라면 그 증거를 없애더라도 증거인멸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는 만큼,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없애는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아니 범죄의 증거를 없애버렸는데 처벌하지 않는다니, 이게 말이냐 막걸리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자유가 절대적 권리이고,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도 있는 등 범죄자라도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므로,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본능적인 행위까지 처벌하지는 않는 것이지요.

또한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이나 피를 나눈 친족은, 가족 중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더라도 본능적으로 이들을 보호하려 하기 때문에, 같이 사는 가족의 범죄 증거를 인멸한다 하더라도 처벌되지는 않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천륜(天倫)은 법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형법
제155조(증거인멸 등과 친족간의 특례)
④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본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결국,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거나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의 범죄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는 법에 따라 처벌받지 않게 됩니다.

단, 자신의 증거를 인멸하여 처벌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범죄 증거를 없앴다고 항상 처벌이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범행의 직접적인 증거 외에도 피해자의 진술 등 간접증거도 많이 존재합니다. 직접적인 증거를 없애더라도, 다른 증거를 종합하여 유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법원도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상호 관련하에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그 단독으로는 가지지 못하는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에 의하여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증거인멸을 해도 정황증거만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핸드폰을 버리면 구속될 수 있다
무엇보다 증거인멸이 초래할 수 있는 더 큰 문제는 구속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형사소송법 제70조 구속 사유에는 ①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②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③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를 주요한 상황으로 적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70조(구속의 사유)
①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
1.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2.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3.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범죄 증거가 들어있는 핸드폰을 버리면 자신의 범죄 증거라는 점에서 형법상 증거인멸죄로 처벌되진 않지만, 증거를 인멸하였기 때문에 구속이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증거인멸죄로 처벌되는지와 증거인멸 염려로 구속되는지는 전혀 다릅니다. 구속은 ‘처벌’이라기 보다는, 형사사법 절차의 한 과정에 해당하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중대한 증거인멸 정황이 드러나거나 반복적으로 증거인멸이 의심되면,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사유가 됩니다. 얼마 전 트로트 가수인 김호중씨의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 경우도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 증거인멸이 반복되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몇 건의 증거인멸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자칫 구속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법원은 증거인멸을 우려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하였습니다.

증거인멸은 藥보다 毒이 될 수 있습니다.

[허윤 변호사는?] 법무법인 LKB 형사대응팀, 압수수색대응팀. 국회, 검찰청, 선거관리위원회, 정부 부처, 교육청, 기업 본사 등 주요 시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서울중앙지방법원 연계 조기조정위원, 대법원 국선변호인 등으로 활동. 압수수색 과정에서의 당사자 권리를 종합적으로 설명한 “쫄지 마, 압수수색”을 발간(2024. 6. 좋은땅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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