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9명 시달렸다…"똑똑한 악성민원, 공무원 가장 피말려"
“산삼 내놔” 50대, 공무원에 칼 던졌다
“내가 준 산삼 다시 가져와!” 지난 23일 오후 3시30분쯤 부산 금정구청 1층 민원실에서 50대 남성 A씨가 이같이 소리쳤다. 금정구와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전날에도 구청사를 방문했고, 자신이 산삼을 캤다고 말하며 구청사 복도에 풀 무더기를 쏟아내곤 사라졌다고 한다. “살펴보니 잡풀이어서 상자에 다시 담아뒀다”는 게 금정구 측 설명이다.
이튿날 다시 구청사를 찾아온 A씨는 품속에 작은 과도를 숨겼다. 그는 산삼을 기부한 자신의 ‘선행’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데 불만을 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산삼을 돌려달라고 난동을 부리던 A씨는 품에 숨겼던 과도를 꺼내 민원실 내부 공무원과 다른 시민 등을 겨누는 동작을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칼을 집어 던졌다. 과도는 민원 응대 데스크에 설치된 아크릴 격벽을 먼저 강하게 때린 뒤 손잡이 부분이 구청 직원 가슴팍으로 떨어졌다. 경찰은 테이저건을 쏴 A씨를 제압, 체포했다.
공무원 89% “악성 민원 시달려봤다”
부산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대다수는 이런 악성 민원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부산시가 내놓은 ‘민원인 위법행위 대응 관련 직원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9%는 악성 민원으로 인해 고통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 유형은 폭언을 동반한 전화민원(45%), 사무실 등 현장에서의 폭언(40%) 등이 가장 많았다.
응답자 대다수는 이런 위법 행위에 대한 법적 제한이 타당(80%)하며, 해당 기관 차원에서 고발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안(88%)이라고 답했다. 이 설문은 지난달 부산 공무원 98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에 부산시는 다음 달 현직 변호사를 강사로 모셔 직원들을 대상으로 ‘민원인 위법행위 법적 대응 방안 교육’을 시행할 예정이다.
“괴로워도 상부 보고, 채증 꼭 필요”
이 교육을 맡게 된 이은수 법무법인 율로 변호사는 “민원인 등 위법 행위 대응 때 고소ㆍ고발 절차와 각 수사 단계에서 공무원·기관 대응 요령 등 내용을 다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시 공무원노동조합 자문 역할도 맡는 이 변호사는 “민원 현장에서 위법 행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점을 체감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민원실 등 눈앞에서 폭언이나 힘자랑을 일삼는 건 가장 흔한 유형의 위법 행위이며, 오히려 대응하기 쉽다. 목격자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많고, A씨 사건처럼 출동한 경찰관이 상황을 정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응이 까다로운 악성 민원에 관해 묻자 그는 “똑똑한 악성 민원인”이라고 답했다. 현장에 직접 나타나는 대신 전화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특정 공무원을 괴롭히면서 통화늘 녹음하면 갑자기 자세를 낮추는 게 대표적 사례라고 한다.
이 변호사는 “보조금이나 지원금 등을 타내기 위해 여러 명의 민원인이 특정 공무원에게 ‘좌표’를 찍어 업무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반복해서 전화를 걸거나 해당 공무원 이름 등 신상을 특정해 근무지에 현수막을 내건다. 허위 투서를 반복적으로 넣어 당사자 피가 마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경우 괴롭더라도 지속해서 상부에 보고해 기록을 남기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채증이 필요하다. 이런 기록이 쌓여야 고소ㆍ고발이 이뤄질 경우 수사기관이 혐의를 잡고 수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악성 민원 횟수가 늘고 수법이 교묘해져 숨지는 공무원까지 나오자 정부는 지난 5월 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위법 행위 땐 해당 기관이 고발하고 소송 비용을 댈 수 있는 내용의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도 추진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일을 키우지 않고 좋게 넘어가려는 공직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산=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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