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크랩 가격이 이 정도? 잘 못 본 줄 알았다

한성은 2024. 8. 3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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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베르겐 워킹투어 1] 가족과 함께 걸어서 좋은 거리

[한성은 기자]

유럽에서 장기간 캠핑카 여행을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나는 다른 무엇보다 인터넷 사용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달라졌으니 여행하는 방법 또한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겪은 전 세계는 '비대면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노 캐시, 예스 eSIM
▲ 비대면 온라인 결제 (왼쪽부터) 주차장, 캠핑장, 보트투어 모두 인터넷으로 결제와 발권 및 영수증 출력까지 이루어졌다.
ⓒ 한성은
이번 5주 간의 여행 동안 우리 가족은 현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유로화와 달러화를 조금씩 준비해 갔으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순간까지 현금은 그대로였다.

캠핑장에서도 No Cash가 보편적이었고, 중요한 결제는 대부분 온라인에서 이루어졌다.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에서도 환전이 필요한 순간도, 환전할 기회도 없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노르웨이에 가면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초상화가 그려진 100크로네 지폐를 기념품으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100크로네 지폐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여행 중에 인터넷 접속은 아주 중요하다.

나는 현재 베트남에 살고 있지만, 경제 활동은 여전히 한국이 중심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유심을 두 개 동시에 사용한다. 신용카드를 한국과 베트남 양쪽 모두 사용하고 있어서 결제 정보를 SMS로 받아야 했고, 때에 따라 필요한 본인인증 절차 문제도 있고, 업무와 관련된 연락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간 유럽에 머물러야 하니 필요한 유심이 세 개나 되었다.

이럴 때는 eSIM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편리하다. 물리심(현지심)의 경우 유심칩을 바꾸려면 핀을 갖고 다니면서 뺐다 끼우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그 과정에서 유심칩을 분실하면 해외에서 재발급도 불가능해서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스마트폰은 대부분 두 개의 유심칩이 동시에 작동하는 Dual-SIM을 지원한다. 보편적으로는 칩을 직접 꽂는 물리심 1개와 전자적으로 등록하는 eSIM 하나를 지원한다. 그런데 eSIM은 하나가 아니라 더 많은 eSIM을 핸드폰에 등록할 수 있다. 여러 개의 eSIM 중에서 그때그때 내가 사용하고 싶은 것만 최대 2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 세 개의 eSIM  (위에서부터) 한국, 독일, 베트남 필요한 상황에 맞춰서 간편하게 SIM을 바꿀 수 있다.
ⓒ 한성은
이 내용은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거나, 해외 생활이 잦은 경우가 아니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복잡해 보이지만 여러 나라를 다니며 장기간 여행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라면 꼭 알아두는 게 좋다. 나의 스마트폰에는 물리심이 없다.

세 나라의 유심을 모두 eSIM으로 바꿔 놓았다. 유럽 여행 중에는 셀룰러 데이터 사용과 전화 통화를 위해 독일 보다폰 유심을 기본으로 설정해 두고, 신용카드 결제 정보를 SMS로 받기 위해 베트남 비엣텔 유심을 활성화해서 다녔다.

그리고 한국에서 본인인증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베트남 유심을 끄고 한국 유심을 켰다. eSIM은 터치 한 번이면 유심 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행 중 유심을 등록해야 할 때는 꼭 eSIM으로 만들기를 추천한다.

유럽은 기본적으로 셀룰러 데이터가 자동 로밍된다. 하지만 본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양과 로밍으로 사용하는 데이터양이 다르다. 유럽이 EU라는 이름으로 한 개의 나라처럼 느껴지지만, 엄연하게 다른 국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위스의 경우 유럽 내에서도 데이터 로밍이 안 된다. 스위스에서는 스위스 유심을 넣어야만 셀룰러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eSIM은 굉장히 훌륭한 해결책이다. 처음 유심을 등록할 때 "eSIM please." 한 마디만 하면 유심칩 대신 QR코드를 갖고 와서 사진을 찍어 등록하니까 어려운 것도 없다.

유럽까지 날아가서 캠핑카 여행을 하는데 무슨 인터넷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소가 바뀐다고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여유 시간이 훨씬 많아지기 때문에 유튜브도 보고, 영화도 많이 본다. 안전하고 쾌적하며 즐거운 여행을 위해 언제 어디에 있든 셀룰러 데이터를 넉넉하게 준비해 놓는 것이 좋다.

노르웨이 베르겐 여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족들은 베르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베르겐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훑었다. 베르겐에 직접 가보지 않았으나, 베르겐 사람보다 베르겐을 더 많이 안다는 착각을 할 때쯤 베르겐 시내 관광에 나섰다.

5세 고래 양 또한 영화 <겨울 왕국>의 배경지라는 말에 자신의 드물고 귀한 호기심을 우리에게 선뜻 드러냈다. Let It Go~ Let It Go~ (겨울왕국 만드신 작가님과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걷기로 했다
▲ 베르겐의 브뤼겐 지역 영화 겨울왕국의 모티프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 한성은
베르겐 항구에 있는 주차장에 캠핑카를 세워 놓고 도보 여행에 나섰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이자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베르겐이지만, 구도심을 중심으로 도보로 반경 1시간 거리에 대부분의 관광지들이 모여 있다. 항구에 차를 세워 두었다고는 하나 그 또한 도심 한가운데라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고래 양은 유모차에 탑승한 후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빨간 홉 온 홉 오프Hop on Hop off 시티투어 버스가 우리를 반겼다. 일단 투어 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볼까 싶었는데, 1인 4만 원 정도의 티켓 가격은 부담스러웠다. 감사하게도 날이 조금 흐렸고, 한여름인 7월 중순이었지만 베르겐의 공기는 기분 좋게 차가웠기 때문에 걷기에는 최고였다. 노약자와 어린이는 이미 차를 타고 있으니 우리는 걷기로 했다.
 투어버스를 뒤로하고 타박타박 걸어다닌 베르겐 여행
ⓒ 한성은
낯설지만 포근한 낮은 목조 주택의 지붕과 창문들이 우리가 북유럽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 나게 해주었다.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함께 거리를 걷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다.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유명한 관광지를 배경으로 하지 않았지만, 베르겐 도심에 깔린 인도 위의 보도블록을 꾹꾹 눌러 밟으며 걷는 우리 가족의 모습은 내가 봐도 행복해 보였다.

나는 이번 여행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전 세계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새로운 곳으로 갈 때도 있지만, 갔던 곳에 다시 갈 때도 많다. 로마에 세 번째 갔을 때는 문화살롱 회원들과 같이 갔다.

"여행 다니는 게 뭐가 그렇게 좋아요?"
"나는 여기 포로 로마노가 좋은 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내가 좋아요. 낯선 장소에서 타박타박 걷고 있는 그 순간의 내가 좋아요."

베르겐이어서가 아니라, 베르겐에서 내가 가족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뷰파인더 속의 가족들도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단, 5세 고래 양만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겨자색으로 벽을 칠한 작고 예쁜 카페에서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행의 흥취에 흠뻑 젖었다. 흔한 시나몬롤과 흔한 커피였지만, 흔하지 않은 장소에서 가족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 좋았다. 단, 5세 고래 양만은 북유럽 시나몬롤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었다.
 베르겐이어서가 아니라, 베르겐에서 내가 가족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 한성은
 겨자색으로 벽을 칠한 작고 예쁜 카페에서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 한성은
톨가메닝겐Torgallmenningen 광장을 거쳐 베르겐 구시가 도보 여행의 핵심인 어시장과 브뤼겐(Bryggen)으로 향했다. 광장 한가운데에 위치한 세일러스 모뉴먼트Sailor's Monument가 베르겐의 역사적 위상을 상징하고 있었다.

베르겐은 서기 1070년 올라프 3세에 의해 노르웨이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중세 유럽에서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의 중요한 거점으로 성장하면서 만들어진 브뤼겐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청동으로 제작된 동상은 노르웨이의 각기 다른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상으로 바이킹 시대부터 중세를 지나 현대의 어부까지 세밀하고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동상 주변은 피로한 발을 쉬게 해주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플뢰옌 산(Fløyfjellet) 아래로 낮게 자리 잡은 정겨운 집들을 바라보고 앉아 있기만 해도 여행의 설렘은 넘쳐 흘렀다.

베르겐 어시장, 가격이 헉
 베르겐 구시가지의 모습
ⓒ 한성은
광장을 지나 드디어 유튜브에서 수없이 보았던 베르겐 어시장에 도착했다. 베르겐 어시장은 실내와 실외에 두 곳이 있다. 양쪽 모두 여행지 특유의 분주함이 느껴졌다. 상인들의 표정은 밝았고, 매대에 놓인 해산물은 다양하고 싱싱했다.
다만, 고향이 부산이라 어릴 때부터 해산물에 익숙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것들은 없었다. 그 명성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했다. 하지만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자갈치 어시장과 비교했을 때 정말 입이 쩍 벌어지도록 놀랄 만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격이었다.
 상인들의 표정은 밝았고, 매대에 놓인 해산물은 다양하고 싱싱했다.
ⓒ 한성은
▲ 킹크랩 1Kg 약 28만 원 나는 내가 가격을 잘못 본 줄 알았다.
ⓒ 한성은
킹크랩 1Kg의 가격이 2,199크로네(Nok)였다. 나는 처음에 내가 숫자를 잘못 본 줄 알았다. 관광지니까 비쌀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1kg당 약 28만 원은 나의 사고 수준에서 훨씬 벗어난 숫자였다. 노량진이나 자갈치에서는 킹크랩의 시세가 비쌀 때라 하더라도 1kg당 7~8만 원 정도면 먹을 수 있으니, 물가 비싼 노르웨이라 하더라도 자기들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녀석들이니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 가족 여섯 명이 둘러앉아 하하호호 웃으며 점심 식사를 배부르게 먹으려면 200만 원 정도 나올 것 같았다. 아…. 어지러워. 저기 앉아서 킹크랩을 두드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철도왕과 석유왕으로 보였다. 그 순간 처음으로 베르겐이 조금.... 미워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https://ninesteps.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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