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예방, 90% 가능하다"…1만명 진료 '치매명의' 원칙 7
치매 명의가 본 치매 예방법
나 교수는 최근 『치매예방 90% 가능해지다』(뇌미인)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큰 판형에 큼직한 글씨와 세심한 시각 자료가 눈길을 끈다. “치매는 치료보다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 치매 예방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그는 말했다.
나 교수는 정신과 전문의인 부인과 함께 서울 강남구에서 ‘해피마인드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진료를 보는 수·금·토요일에는 치매 예방 백신을 맞으러 온 환자들로 병원이 시장바닥처럼 붐빈다고 한다.
책 제목이 너무 도발적이거나 과장스러운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나 교수가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치매 원인의 30%는 뇌출혈·뇌경색 등 혈관성인데, 이는 예방이 가능하다. 6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로 인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에 둘을 합쳐 90% 예방할 수 있다고 제목을 붙인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서 30년간 1만명 넘게 진료
알츠하이머로 인한 치매를 예방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책 부제이기도 한 ‘아밀로이드 백신 치료’다. 나 교수는 “뇌 속에 아밀로이드라는 독성 물질이 쌓이면 알츠하이머를 유발한다. 문제는 10년 이상 아밀로이드가 쌓이는 동안 아무 증상이 없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발전하기 전에 검사를 통해 아밀로이드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백신 치료로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에 있을 때 경도인지장애 환자 중 아밀로이드가 있는 쪽과 없는 쪽을 수 년간 추적 관찰하면서 아밀로이드가 치매를 유발한다는 ‘아밀로이드 가설’을 믿게 됐다고 했다. 아밀로이드가 뇌세포를 손상시키는 기전은 시냅스 연결 차단, 미세소관 손상, 미토콘드리아 이동 저하, 염증 과다 등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미국에서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백신 2종이 FDA 승인을 받았다. 그 중 아두카누맙은 국내 시판 중이고, 레카네맙은 올해 5월 한국 식약처의 승인을 받아 병원에서 처방할 수 있게 됐다.
뇌 속에 아밀로이드가 어느 정도 있는지 검사하는 비용은 200만원, 아밀로이드 백신 치료 비용은 2500만원 안팎이다.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치료비가 증가한다. 백신은 보통 한 달에 1~2회 정맥 주사로 맞는데, 1~2년간 꾸준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나 교수는 백신 치료를 받은 환자의 상태를 추적 관찰하며 부작용이 없는지도 24시간 체크한다. 이 책은 해피마인드 의원에서 아밀로이드 백신 치료를 받은 168명의 용태를 밝히는 일종의 ‘중간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 에너지 주는 사람을 자주 만나야”
나 교수는 “치료 후 아밀로이드 PET 뇌촬영을 한 35명 중 33명이 아밀로이드가 눈에 띄게 감소했고, 인지기능 검사 결과는 환자의 69%가 호전 또는 유지됐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치료 효과가 과학적으로 검증 받으려면 더 오랜 기간 지켜보고 사례 수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치매가 진행되고 있거나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환자보다 증세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환자의 치료 효과가 월등히 높았다. 이는 치매의 치료보다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강남구치매지원센터장(2009~2019년)을 맡으며 지켜보니 정치인이나 행정 하시는 분들이 ‘관내 치매환자를 몇 명 발견했고, 기저귀를 몇 박스 갖다 줬고, 의료진을 몇 명 파견했다’같은 수치에 관심을 더 보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예방에 더 많은 예산 지원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책 후반부에는 나 교수가 고안한 치매 예방 수칙인 ‘진인사 대천명’이 나와 있다. [진]땀 나게 운동하고, [인]정사정 없이 담배 끊고, [사]회 활동을 하고, [대]뇌 활동을 하고,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고, [명]을 연장하는 식사를 할 것. 한 번쯤은 들어본 내용이지만 명구(名句)와 연결하니 머리에 쏙 박힌다. 이중 사회 활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인데,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을 자주 만나는 게 바람직하다. 대뇌 활동은 간단한 암산 문제, 초성을 보고 단어 만들기 등 대뇌를 자극하되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한다.
만 67세인 나 교수는 지금도 매일 새벽 4시40분에 일어나 전화영어, 수영 또는 근력운동을 한다고 했다. 그는 “숙면에 방해가 되는 조명·소리·음식·생활습관이 있는지 점검해서 수면의 질을 높이는 것도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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