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 맥 못추는데, 탑티어 또 온다…카페 공화국 된 서울 [비크닉]

유지연 2024. 8. 3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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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트렌드

「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2조9262억원.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만 20세 이상 한국인이 커피 전문점에 쓴 금액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동기 대비 13% 증가해 사상 최대치죠. 같은 기간 1인 기준 커피 전문점에서 쓴 돈은 월평균 1만4500원, 한 달 1.8회 결제를 했다고 합니다. 반년이 채 지나지 않는 기간 동안 카페에 3조원 가까이 쓴 셈이니, 경기 침체에도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더 진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신용카드·체크카드·계좌 이체·소액결제 등으로 결제한 금액을 표본 조사한 결과입니다.

노르웨이 오슬로를 기반으로 탄생한 커피 브랜드 푸글렌이 오는 10월 중순 서울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푸글렌 공식 홈페이지

이렇게 뜨거운 시장이라서일까요. 해외 커피 브랜드의 국내 진출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비크닉은 하반기에 예고된 두 대형 커피 브랜드의 한국 진출을 다뤄보려고 해요. 최근 커피 전문점 시장의 움직임과 이들의 성공 가능성도요.

올해 1~5월 국내 만 20세 이상 성인의 커피 전문점 개인 결제 추정 금액은 2조9262억원에 달한다. 사진 와이즈앱·리테일·굿즈

굿즈 맛집으로 유명, 랄프스 커피 오픈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이 운영하는 랄프스 커피가 내달 5일 국내 첫 매장을 오픈한다고 29일 밝혔습니다. 랄프스 커피는 뉴욕·런던·도쿄 등 주요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어요. 주로 랄프 로렌 매장 옆이나 안에 작게 여는 방식이 많았는데요, 서울에서도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폴로 랄프 로렌 매장 1층에 위치할 예정입니다.
26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폴로 랄프로렌 플래그십 스토어에 랄프스 커피 매장 오픈을 알리는 랩핑이 되어 있다. 유지연 기자

미국 클래식 의류 브랜드 특유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랄프스 커피는 굿즈(기획 상품) 맛집으로도 유명해요. 의류 브랜드 카페답게 랄프스 커피에서만 살 수 있는 그래픽 티셔츠와 시그너처 토트백, 머그컵, 모자 등이 인기죠. 랄프스 커피는 랄프 로렌의 감각을 녹인 식음료(F&B) 매장으로 커피에 승부수를 두기보다 브랜드 팬덤을 만드는 공간에 가까워요. 최근 이런 식으로 의류 매장과 카페를 함께 구성하는 복합 매장이 늘고 있는데요, 디올이 운영하는 카페 디올과 의류 브랜드 메종 키츠네의 카페, APC 카페, 아르켓 카페 등이 있죠.
커피와 베이커리류 뿐만 아니라 랄프 로렌의 브랜드 이미지를 반영한 관련 기획 상품과 의류 및 액세서리도 함께 판매해 인기가 높다. 사진 랄프 로렌 코리아

‘휘게’ 담은 커피 한 잔 온다


노르웨이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푸글렌 커피는 오는 10월 중순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국내 1호점을 열 예정입니다. 푸글렌은 1686년 노르웨이 오슬로에 문을 연 카페입니다. 붉은색 원형 바탕에 흰 제비가 새겨진 로고로 유명하죠. 현재 푸글렌을 이끄는 에이나르 클레페 홀테(Einar Kleppe Holthe)가 2008년 인수한 뒤, 칵테일 애호가와 빈티지 가구 딜러가 합류하면서 오슬로를 대표하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성장해요. 낮에는 카페지만 밤에는 칵테일 바로 변신하며,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빈티지 가구로 채워진 편안한 실내 공간이 특징이죠.
푸글렌은 스페셜티 커피와 빈티지 가구, 칵테일바 등으로 북유럽식 휘게 문화를 선보인다. 사진 푸글렌 공식 홈페이지

푸글렌 커피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알려진 계기는 지난 2012년 첫 해외 지점인 도쿄점을 오픈하면서입니다. 북유럽 특유의 휘게(hygge·편안하고 따뜻한) 문화와 도쿄의 차분한 커피 문화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도쿄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관광 명소로 이름을 알리게 됐어요.

이런 푸글렌이 한국 상륙을 알린 건 지난 7월 초. 홀테 이사가 서울에 방문, 부동산을 둘러보고 있다며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열고 사진과 관련 글을 올리면서죠. 푸글렌은 최근 일본에만 한정됐던 해외 지점을 늘리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오픈 소식을 전했죠.


8조 카페 시장, 한국 소비자 만나고 싶다


이미 한국의 문을 두드리는 외산 커피 브랜드는 차고 넘칩니다. 지난 3월 서울 서촌에 자리 잡은 인텔리젠시아 커피가 대표적이죠.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지난달에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어요. 지난해 12월 서울 신논현 인근에 한국 1호점 개점을 알린 캐나다 커피 브랜드 팀홀튼은 현재까지 국내에 12개 매장을 내며 확장하고 있고요.
지난 3월 서촌에 문을 연 인텔리젠시아 커피 전경. 사진 인텔리젠시아커피 공식 인스타그램

롯데백화점의 야심작인 모로코 헤리티지 브랜드 바샤 커피도 이달 1일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열었어요. 커피 원두에 향을 입힌 ‘가향 커피’라는 새로운 장르로 커피 애호가들의 시선을 끌고 있죠. 모로코풍의 호화로운 디자인이 특징으로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고요. 이밖에 일본 후쿠오카의 유명 커피 전문점인 노커피도 지난 3월 서울 압구정에 문을 열었습니다.
롯데백화점은 이달 1일 서울 청담동에 바샤커피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사진 롯데백화점

왜 한국일까요. 우리나라는 이미 커피 전문점 시장에서 세계 ‘탑 티어’ 국가로 분류됩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커피전문점(카페) 시장 규모는 8조5661억원으로 미국·중국·일본 등에 이어 세계 5위로 추산돼요. 이는 지난해 대비 11.4% 늘어난 수치고요. 적은 인구에 대비하면 가장 큰 카페 시장 규모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카페 공화국’ 이죠. 지난 2007년 8000억원에서 약 10배가 커졌을 정도로 가파른 성장 속도도 눈에 띕니다. 해외 브랜드가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렇게 뜨거운 시장에서 가장 까다로운 커피 소비자들을 만나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재야의 고수들이 승부를 겨루러 모여드는 진짜 승부처가 된 셈이죠.

서울은 ‘서진’ 하는 길목


숫자로도 국내 카페 시장은 포화에 가까워요.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서울 시내 커피·음료 업종 점포 수는 2만4444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3826개보다 2.5% 늘었고, 2022년 2분기(2만2205개)보다는 10%나 늘었어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폐업률도 2022년 2분기 2.8%에서 지난해 4.2%, 올해 4.3%로 늘고 있고요.

그런 만큼 물 건너온 브랜드라고 해서 만만히 볼 시장이 아니기도 합니다. 일례로, 국내 진출 6년 차에 이르고 있는 미국 블루보틀 커피는 지난 2021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영업 이익이 감소하는 등 부침을 겪고 있어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블루보틀커피코리아의 연간 영업이익은 2021년 27억원에서 2022년 23억원, 지난해 19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2019년 국내 진출한 블루보틀 커피는 지난 5월 판교에 13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사진 블루보틀 커피 코리아 공식 인스타그램

전문가들은 치열한만큼 매력적인 시장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신규 브랜드 진입이 이뤄지고 있다고 봐요. 조원진 커피 컬럼니스트는 “해외 브랜드의 경우 한국에서 반드시 높은 매출을 올리겠다 보다, 전체 시장 포트폴리오를 넓히겠다는 개념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며 “주로 도쿄를 찍고 서울을 거쳐 중국이나 중동으로 가는 식으로 한국을 이른바 ‘서진’하는 길목 혹은 교두보로 여기는 것”이라고 해석했어요. 실제로 블루보틀은 2015년 도쿄 진출 이후 2019년 서울에서 확장 전략을 편 뒤, 2020년 홍콩을 거쳐 2022년 중국 본토인 상해에 1호점을 개점했죠.


기대감을 ‘팬심’으로 바꾼다면


다만 이제 막 출사표를 던진 해외 커피 브랜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려요. 특히 재료 원가 비중이 높은 데다, 접객 등 운영 비용이 많이 드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경우 이익을 내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여러 도시로 확장하면서 본래 도시 기반으로 성장한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잃는 경우가 많죠.

브랜딩 전문가 최원석 필라멘트앤코 대표는 “커피 맛뿐만 아니라 특유의 공간 분위기, 접객 서비스 등이 어우러져 현지에서 좋았던 그 브랜드만의 감성을 깊게 구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단순히 브랜드의 유명세만으로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커피 맛 뿐만 아니라 특유의 공간 분위기, 접객 서비스 등이 어우러져 커피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사진 중앙포토


요즘 ‘패노크라시(fanocracy)’라는 말이 회자하고 있죠.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애호하는 팬들이 능동적 소비에 나서는, 이른바 ‘팬덤 경제’를 일컫는 말이에요. 브랜드 팬덤을 만드는 패노크라시 마케팅은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비즈니스 전략이고요. 블루보틀·인텔리젠시아·팀홀튼·바샤 그리고 푸글렌과 랄프스 커피까지. 이름만 들어도 설렐 만큼 브랜드의 명성은 준비가 됐다고 봐요. 이제부터 해야할 일은 이런 기대감을 ‘팬심’으로 바꾸는 일이 아닐까요.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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