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사건' 이전... 먼저 세상을 떠난 선생님이 있었다

조영준 2024. 8. 3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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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85] EIDF 2024 상영작 <선생>

제 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가 8월 19일부터 25일까지 열렸습니다. 32개국 53편에 달하는 다큐멘터리 작품 중 눈에 띄는 다큐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조영준 기자]

 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선생>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2023년 여름, 대한민국 각지에서 교사들이 연달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7월, 서이초 사건으로 서울의 한 초임 교사가 교실에서 세상을 떠난 이후 두 달 사이에만 4명의 교사가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 배경에는 학부모의 지나친 요구와 간섭, 수업 외 과도한 업무 등의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한 현실이 있었다. 이에 전국의 교사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행동을 시작했다. 그해 10월까지만 10차례 이상의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매회 수만 명 이상, 많게는 30만 명까지 모여 사망 교사들을 추모하고 교권을 보장한 대책을 요구했다.

서울의 한 사립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오채림 선생님은 그보다 조금 이른, 2023년 1월에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직면한 문제는 거의 비슷했다. 이번에는 정식 교사가 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직접적인 협박까지 있었다. 대한민국 사회의 관심이 학교로 쏠리기 6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 시간 동안 한 선생님의 죽음이 알려지지도 못하고 조용히 흩어졌던 셈이다. 전국의 애도가 이어졌던 7월의 사건 이전부터 교권의 위협과 관련한 문제가 수면 아래에서 많은 선생님들의 숨통을 조여왔음이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EBS 이규대 감독의 시선은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로부터 이어진 연장선 위의 또 다른 사건을 화두로 가져오면서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선생>이 서이초 사건을 시작으로 촉발된 대한민국 교육의 민낯과 함께 그 시작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오채림 선생님의 이야기를 반추하는 이유다. 남겨진 유가족과 주변 인물들, 교육 전문가들에 이르는 다양한 지점에 서 있는 이들의 인터뷰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는 한 인물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기 시작한다.

02.
"참고 기다리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시간을 참아내야 하는 거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오채림 선생님을 대신해 다큐멘터리의 전반에 내세워지는 이는 아버지 오재근 씨다. 25년가량 도자기업을 이어온 장인이자 예술가인 그는 딸과 이별하고 15개월이 지나는 동안 가마에 불을 피우지 못했다. 딸을 기억하는 것, 기억하지 않는 것 모두 자신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아노미 속에서 부유하듯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기간이었다. 그런 순간들을 회고하며 말을 잇는 그의 모습 뒤로 겨우 다시 불을 일으키는 가마의 모습이 비친다. 그리고 리와인드(Rewind). 과거의 장면을 향해가는 몇몇 장면들의 리와인드 신은 이제 미래의 시점에 다다라 과거의 사실을 조금씩 잊어가는 우리를 그 시점으로 다시 되돌려 놓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숱한 과정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의 섭리가 도자기를 굽는 일과 꼭 닮아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자신의 손으로 빚고 완성했으니 부모의 마음이 되고 마는 것 역시 작업물의 결과와 자녀에게 느끼게 되는 공통적인 감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상하지 못한 딸의 상실은 불을 약하게 때거나 불을 강하게 때서 통째로 버리게 된 가마의 경우에 속했다. 오랜 시간 숙련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힘과 경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사고와도 같은 일. 일부러라도 예상해 본 적은 없는 사건. 과거이지만 여전히 현재에 놓여있는 기억에 해당한다.

가족의 삶은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딸의 친구도 하나 부르지 못하고 꽃 한 송이 헌화하지도 못한 채 그냥 보내야 했던 딸로 인해 슬픔에 잠겨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던 때. 서이초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돌아오지 못할 선택을 해야만 했던 선생님에게는 정말로 미안한 말이지만, 오재근씨는 일면 고마운 마음이 일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가족들끼리 묻고 가려고 했던 사건을 서이초의 피해자 선생님이 선구자 역할을 하며 함께 수면 위로 올려준 것만 같아서다. 이후 서이초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열린 서울시교육청-교직 3단체 공동 기자회견장(2023년 7월 24일)에 참석한 오채림 선생님의 아버지는 딸의 죽음도 함께 조사해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선생>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3.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오재근씨를 직접 마주했던 전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 박용덕 팀장은 오채림 선생님의 정신과 진료 기록과 학부모 진술, 휴대전화 기록 등을 확보해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했던 장본인이다. 그는 선생님이 신분상 가장 취약한, 일반적인 노동 구조에서 보자면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이었다고 설명한다. 기간제 교사였으며, 공립학교보다 학부모들의 발언권이 센 사립초등학교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화기록이나 문자메시지를 확인해 보면 주말이나 야간은 물론 새벽 시간까지도 답장을 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했다.

시작은 아이들 사이에 발생한 몸싸움 정도의 사소한 다툼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양 측 부모가 각자의 입장만 강조하며 설명을 요구했고,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던 선생님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이 그 사안을 재연하도록 모의 행동을 실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상은 의도와 달리 양측을 완전한 피해자와 가해자 논리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협박과 압박을 받게 된다. 박 팀장은 초보 교사로서 나름대로 이유를 갖고 한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죄책감과 자존감의 추락까지 겪게 만들었을 것이고, 결국 충격적인 사건으로 전환되었을 것이라는 게 박 팀장의 말이다.

상담심리전문가인 이지연 교수 또한 유가족의 협조를 받아 오채림 선생님이 남긴 기록을 열람했다. 고인이 남긴 일기와 메모, 가족과의 메신저 대화 등이다. 그는 이 사건이 발생한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격려하는 말들, 일깨우려는 말을 지속하고 있었던 부분이 특이점이라고 강조한다. 이 부분이 너무 일관되고 강해서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안타까울 정도였다고 하니 오채림 선생님이 느꼈을 부정적인 감정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된다. 이 교수는 이 모든 흔적들이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던 것 같고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여러 사람이 해줄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다시 한번 언급한다.

04.
인터뷰에 동의한 친구들 역시 평소의 오채림씨가 사건 속에 놓인 인물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순수하면서도 밝았던 사람. 만날 때마다 웃음이 끊이지 않고 활동적이며 외향적이었던 인물. 그리고 언제나 먼저 다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안해 주던 친구로 말이다. 교대 학생들에게는 조금 먼 듯 느껴지는 인턴도 먼저 찾아서 시도해 보고, 졸업을 앞두고는 휴학까지 하며 1년 동안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하고 찾아보는 시간을 스스로 갖기도 했었다고 한다.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학교로 다시 돌아오고 난 다음에 다시금 다졌던 꿈이었고, 기간제 교사를 시작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는 더욱 강하게 마음을 먹었던 그녀였다.

실제로 오채림 선생님은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동안 국공립초등학교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기간제 교사를 그만둔 후에도 공부에 대한 열정은 놓지 않으려고 했으나 우울증과 약 부작용에 시달리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2022년 11월에 열린 1차 시험을 치르는 도중에는 응시를 포기하고 시험장을 나와야 할 정도였다. 그녀가 다녔던 대학의 미술교육과 정연현 교수가 기억하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학생이자 아버지 오재근씨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자신의 주관대로 대차게 성장해 온 딸의 모습이 잘못된 교육 제도와 교권을 위협하는 상황 앞에 모래성처럼 모두 스러져간 듯 보인다.
 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선생>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5.
서이초 사건은 물론 오채림 선생님의 비극적인 선택까지. 이지연 교수는 교사들이 느끼는 교실 안에서의 무력감이 대단히 큰 것 같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교사가 학생들을 대하거나 지도하는 부분들에 있어서 학부모와 부딪히게 될 때 아동학대와 관련된 부분은 제재가 강하지만 교사의 교권이나 가르칠 권리, 또는 주변의 다른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에 대해서는 별도로 논의되는 부분이 없다 보니 교육 자체가 점점 망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학부모로부터 듣는 말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기에 아이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함구하게 되는 현실 또한 교사 스스로가 위축되고 무력해지는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직업 속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위로를 받는 것은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며 위로받는 것이 선생인데 현재로서는 그 메커니즘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교육자로서 자신의 교육관을 아이들에게 오롯이 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제 선생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교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선생님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도 교권을 보호하는 제도들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만 한다.

06.
2024년 7월 현재 유족은 오채림 선생님의 죽음이 공무상 재해인지를 판정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정신적 질환을 공무상 재해의 원인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며, 기간제 교사의 학교 밖 사망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다.

정연현 교수는 구조적인 요인으로 학교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교사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또 어떻게 교사다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 죽음이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단순히 이제 교육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교사이거나 역량 미달, 어리석은 선택 등의 개인적인 문제로만 결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지적이다. 이 다큐멘터리 속의 모든 비극은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떠안아야 하는 전체의 문제가 되어야만 한다.

아래 문구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오채림 선생님이 언젠가 아버지 오재근 씨에게 남긴 메신저 문자 내용이다. 우리가 지키지 못한 구성원의 애타는 부르짖음처럼 보이는 것이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벌써 1년도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바라보아야 할 곳을 외면하지 않고 정확히 들여다보고 있을까? 흩어져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가 되길 바라게 된다.

"내가 망가진 것 같아요. 그리고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는데 그것도 자신이 없어지고 너무 비참하고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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