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언더커버’ 위장수사, 딥페이크‧마약범죄 해결책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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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앱 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범죄자와 마약 밀수꾼들의 놀이터가 됐다. 암호화된 비밀 채팅을 바탕으로 보안을 내세우며 각국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을 거부한 탓이다. 2013년 출시 후 한국 검찰과 경찰도 성착취물 유포, 마약 밀매 등 수사 과정에서 텔레그램에 국제공조를 통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성사된 적은 없다. 4년 전 ‘N번방 사건’ 수사 때도 경찰이 성범죄자의 가입자정보를 확인하려 텔레그램에 여러 번 협조를 요청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강력범죄가 버젓이 벌어지는데 텔레그램이라는 ‘방어벽’을 활용해 수사망을 피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검경 등 수사기관은 텔레그램이라는 공고한 ‘판’을 깨기 위해서라도 수사기관의 위장수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밀수사관인 ‘언더커버’를 활용해 범죄자들이 마음 놓고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대검찰청 관계자)”는 것이다. 현재 위장수사는 2021년 아동‧청소년성보호법(아청법)의 개정으로 아동성착취물 등 미성년자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만 허용돼있다.
한국판 ‘언더커버’…숨기거나, 위장하거나
검찰과 경찰은 마약 범죄와 성인 대상 성범죄에 대해서 언더커버를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위장수사는 ▶수사관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신분 비공개 수사’ ▶문서, 전자기록 등을 활용해 다른 신분으로 위장하는 ‘신분 위장수사’로 나뉜다. 가짜 신분증 등을 활용해 신분을 속이는 위장수사가 비공개 수사보다 적극적이다.
현재 신분 비공개 수사의 경우 마약‧도박 등 수사 과정에 일부 활용되지만 한계가 명확하다고 현장 관계자는 말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마약 전문 수사관은 “매수자인 척 마약 공급책에게 접근해도 신분증을 요구받는 순간 더 이상의 수사를 이어갈 수 없다”며 “마약 딜러를 잡아야 유통망을 차단할 수 있는데, 텔레그램에서 기존 수사방식만 활용해서는 불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성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텔레그램 관련 성범죄는 누군가의 제보나 협조 없이는 수사를 개시하기도, 진행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러니 전문가들 사이에선 “텔레그램이라는 벽을 뚫기 위해 언더커버 제도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할 때”라는 말이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텔레그램은 사용자의 정보도 주지 않고, 수사기관에 협조하지도 않는다.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면 수사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한국판 언더커버 제도 도입을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고 말했다.
N번방 성범죄를 폭로했던 ‘추적단 불꽃’ 출신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9일 중앙일보에 “언더커버 수사가 확대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고, 이를 위한 인력 확충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N번방 사건 국면에서도 언더커버 수사가 허용되지 않아 피해자와 기자 등 언론인이 직접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했다. 박 전 위원장은 “당시 범죄자들이 겁을 먹었다. ‘너 경찰 아니냐’면서 상대의 신분을 의심하고 두려워했다”며 “언더커버가 도입되면 범죄자들이 지금처럼 마음 놓고 범죄를 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아동청소년법 개정 이후 미성년자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위장수사를 도입한 경찰의 입장은 어떨까.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28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2021년 9월부터 지난 6월까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성착취 목적 대화 등에 대한 위장수사 476건을 실시해 1326명(구속 83명)을 검거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위장수사는 텔레그램 도입 이후 수사기관이 쓸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기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제3자 견제는 필수…“과잉수사 방지해야”
다만 언더커버를 통한 광범위한 수사권 확대, 인권침해 우려를 막기 위한 제3자 견제는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 앱이 항상 감시와 수사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 소통 공간이 없어지는 의미를 넘어 인권 침해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는 “수사 과잉을 막기 위한 법원 등 제3자 견제는 필수”라고 짚었다. 배 교수는 “미국에선 연방수사국(FBI)에 위장수사를 허용하는 대신 FBI 국장이 국회에 관련 사항을 보고하게 한다. 한국도 위장수사를 도입한다면 어떤 범죄에 한해 도입할지, 또 수사권을 남용하지 못하게 어떤 견제 장치를 둘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수민 기자 yang.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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