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단 50그릇…미역국 하나로 문전성시 이루는 이곳 [쿠킹]

김성현 2024. 8.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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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식사를 위해서 몇 달을 기다려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800통이 넘는 전화를 걸고, 10개월이 넘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누구보다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인 푸드 콘텐트 에디터 김성현의 〈Find 다이닝〉을 시작합니다. 혀끝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다이닝을 찾는(Find), 그가 추천하는 괜찮은(Fine) 식당을 소개할게요. 읽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생생하고 맛있게 쓰여진 맛집을 만나보세요.

김성현의 Find 다이닝 ㉒ 오일제

“갓 지은 가마솥 밥에 고소한 들깨 미역국 한 그릇의 행복”

갓 지은 가마솥 밥에 고소한 들깨 미역국의 행복을 전하는 오일제. 사진 김성현


STORY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 다양한 가게들이 늘어선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골목. 작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면 구수한 밥 내음과 더불어 청아한 새소리가 손님을 반긴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차분함과 고요함 그리고 햇살 같은 포근함이다. 마치 정신없이 바쁜 도심에서 벗어나 잠시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드는 이곳은 미역국 하나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밥집 ‘오일제’다.

미역국 단일메뉴를 판매하는 오일제의 들깨미역국. 사진 오일제

지난해 3월 문을 연 ‘오일제’는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그리고 ‘나만 알고 싶은’ 미역국 맛집으로 통한다. 좌석은 단 12석, 하루에 판매하는 미역국은 50그릇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일제’는 매일 오전 10시와 11시30분, 오후 12시30분과 1시30분 네 차례에 걸쳐 직접 가마솥으로 밥을 지어 손님에게 내어놓는다. 한정된 좌석에 한해 예약을 받는데, 미처 예약하지 못한 고객들이 가게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오픈런이 일상이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대량 판매 시스템을 구축하고, 직원을 더 많이 채용할 수 있겠지만, 신동훈(40) 셰프는 1인 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년간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며 주말과 공휴일이 없는 삶을 살았던 그는 조금이라도 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홀로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토요일과 일요일을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기존 외식업 시장에서 탈출구 같은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마음도 크죠”

가게의 문을 연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현재 그의 도전과 모험은 무척이나 성공적이다. 이 같은 ‘오일제’의 순항 비결은 음식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신 셰프의 신념이다. 미역국으로 유명한 부산 기장에 가서 2주간 하루 5끼 미역국만 먹고, 완벽한 미역 손질을 위해 6개월간 연구를 거듭한 그간의 노력과 정성이 이를 먹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미역국이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인 만큼, 식당을 찾는 손님은 20대부터 90대까지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다양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가족 단위 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딸이 어머니를 모시고 오고, 어머니가 다시금 이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오거나 자신의 친구들과 모임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새롭고 트렌디한 것을 추구하기보다 미역국 하나, 본질에 집중하면 반드시 가게를 찾아올 것이라는 신 셰프의 예상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놀라운 점은 한국 고객만큼이나 일본인 손님도 많다는 점이다. 가게를 열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한 일본인 고객이 온 이후 일본인 커뮤니티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난 것을 계기로, ‘오일제’는 유명 잡지 마담 피가로 재팬(madame FIGARO japon)에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서울을 대표하는 맛집 20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됐고, 이후 일본인 손님이 더욱 늘어났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미역국을 즐기는 대만과 중국, 유럽과 북미권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신동훈 셰프의 오일제는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 나며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아온다. 사진 김성현

현재 ‘오일제’에서는 매주 금요일 단 한 팀만을 위한 생일상 차림상도 선보이고 있다. 미역국을 기본으로 잡채와 갈비찜, 샐러드 등 생일을 맞이한 이를 축하하기 위한 귀한 한 상이 내어진다. 예약 성공을 위해서라면 50: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하지만, 구성원 전원이 ‘오일제’ 생일상으로 생일을 축하하는 가족까지 있을 정도로 만족도는 높다고.

미역국 한 그릇으로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신동훈 셰프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단 한 번의 광고나 홍보도 하지 않고, 입소문만으로 오픈 6개월 만에 손님을 끌어모았던 신 셰프는 ‘오일제’를 한층 더 단단하게 안정화할 계획이다. 이후 제주도에 젤라토 가게를 여는 것이 목표라고.

“지난 1월에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젤라토는 배워왔어요. 아마 ‘오일제’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제주도에서 젤라토를 만들고 있었을 것 같아요. 미역국 다음으로는 젤라토를 꼭 선보이고 싶습니다.”

EAT

단일 메뉴로 미역국만 선보이는 ‘오일제’는 젓갈과 김치 그리고 밥과 간장 외에 별다른 반찬이 없어 백반집의 한 상에 비해 단출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각 메뉴를 자세하게 하나씩 뜯어보면 그 무엇 하나 셰프의 공력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

미역국에 들어간 재료만 보아도 그러하다. 신동훈 셰프는 10년 전부터 자신이 직접 먹어왔던 전라도 거금도의 초사리 미역만을 사용해 미역국을 만든다. 3~4월에 자라는 어린 미역으로 그해 시장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초사리 미역은 무척이나 부드러우면서도 진하고 깊은 감칠맛을 자랑하는 만큼 귀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이 미역은 신 셰프가 직접 배합해 만든 숙성 간장에 찍어 먹을 때 그 감칠맛이 배가된다. 간장에 찍는 순간 해조류가 가진 특유의 기분 좋은 풍미와 감칠맛이 입과 코를 가득 채우고 달큰 짭짜름한 소스가 입맛을 돋운다.

경기도의 한 한우농장에서 공수해 온 사골 육수 역시 일품이다. 느끼한 맛 없이 깊이 있는 담백함은 국을 먹는 마지막 순간까지 잔잔하게 혀끝에 맴돌며 여운을 남긴다. 여기에 오일제 미역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들깻가루도 고소함과 구수함을 한껏 끌어올린다. 전라도 강진의 청정 지역에서 재배된 들깨의 껍질 벗기고 살짝 볶아 만든 들깻가루는 미역국의 식감을 올려주는 것은 물론 사골 위에 맛의 레이어를 한층 더 하며 복합적인 풍미를 끌어낸다.

신동훈 셰프는 매일 네번 가마솥에 밥을 짓는다. 사진 김성현

매일 시간에 맞춰 가마솥으로 짓고 있는 밥 또한 ‘오일제’의 시작이자 끝과 같다. 갓 도정한 고시히카리 쌀만 사용하는 만큼, 깨끗하면서도 투명한 동시에 탱글탱글하게 터질 듯이 윤기를 머금은 밥은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씹을수록 쌀 특유의 단맛이 올라오는데, 짭짤한 젓갈이나 함께 나오는 갓김치와 먹으면 그야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다.

여기에 셰프의 조언대로 밥이 반쯤 남았을 때 미역국에 말아 먹으면 한층 더 진한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들깨 외에 셰프가 넣은 ‘비밀 재료’ 덕분. 밥을 말았을 때의 염도와 농도까지 계산해 음식을 내어놓는 신 셰프의 디테일과 치밀함은 음식 곳곳에서 맛으로 느낄 수 있다.

볶은 메밀을 올려 고소함까지 느낄 수 있는 젓갈도 천일염 산지로 유명한 전라도 곰소 지역의 것을 고집한다. 풍부한 감칠맛과 기분 좋은 염도는 미역국과 찰떡궁합이다. 마치 물김치처럼 깔끔한 맛이 인상적인 배추김치와 씹는 식감과 특유의 풍미가 매력적인 갓김치 역시 갓 지은 밥과 먹어도, 미역국과 먹어도 뛰어난 밸런스를 보여준다. 이처럼 ‘오일제’는 작은 반찬 하나조차 허투루 내어놓지 않고 진정성을 꾹꾹 눌러 담아 손님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김성현 푸드 콘텐트 에디터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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