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서 온 편지가 마지막…74년째 오빠 기다리는 동생의 눈물
“옵빠(오빠)는 어떠한 군무(軍務)에 특별히 일하고 있으니 아무 염려 마라”
1950년 5월 9일 경북 포항에서 당시 22살이었던 이현규(1928년생)가 전남 곡성에 있는 집으로 보낸 편지 내용이다. 이현규는 이 편지를 끝으로 연락이 끊겨 74년째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편지를 보낸 지 47일 뒤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다. 편지는 이현규의 조카 이원택(64·전북 전주 거주)씨가 그의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 편지엔 “가을에 한 번 집에 갈 것이다”로 시작해서 “군의 참 바쁜 일이 있어 편지할 시간도 그리 없다”로 맺는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이현규는 1950년 4월 당시 인천에 있던 해군본부로 시험을 치러 갔다. 동네에서 응시한 5명 중 유일하게 합격해서 군 훈련을 받았다는 게 세 살 터울 동생 이명임(94·대전 거주) 할머니의 기억이다. 이원택씨는 “전쟁 직전에 군에 갔던 큰아버지(이현규)가 군사 우편 소인이 찍힌 편지를 남겨 군인이셨을 거란 생각에 수소문해봤지만, 병적 기록을 찾진 못했다”며 “편지는 돌아오지 못한 큰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흔적”이라고 말했다. 이현규처럼 한국전쟁 당시 생사·행방 불명인 사람은 1955년 내무부 집계로 30만여명이다.
1944년 일제에 의해 징용됐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의 명예를 찾아 달라는 태평양전쟁 유족도 있다. 이정자(79·경기 안성 거주) 할머니는 “내 아버지 이윤만은 1944년 강제 징용됐다”며 “어릴 땐 ‘문 잠그면 우리 아버지 못 돌아온다’며 대문을 열고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이정자 할머니의 부친 기록은 ‘일(日) 해군 군속 신상 조사표’에 남아있다. 중앙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국가기록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당시 징용 대상자였던 이윤만의 경우 동명이인으로 미야마(三山) 윤만, 야마다(山田) 윤만이 있었다. 두 기록 모두 1944년 8월27일 징용, 1945년 8월15일 해원(解員·동원 해제)이라고 쓰여있는 등 이정자 할머니의 부친이 둘 중 누구인지는 불명확한 상태다. 이윤만처럼 태평양전쟁 행방불명·사망자는 54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이정자 할머니는 “아버지 얼굴 한 번 못 보고, 아버지가 누구였는지도 잘 모른 채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보내야 해서 원통하고 한스럽다”며 울먹였다.
매해 8월 30일은 유엔(국제연합·UN)이 전쟁, 납치, 억류 등으로 초래된 강제실종 희생자를 기리고,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자는 의미로 정한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이다. 정부는 지난 2022년 12월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 지난해 2월 유엔 강제실종 방지 협약에 가입했다. 협약은 국가기관 또는 국가 아래 행동하는 개인 등에 의해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고 생사 또는 소재지를 숨겨 법의 보호 밖에 두는 것을 강제실종으로 정의한다.
이현규와 이윤만과 같은 사례를 강제실종 희생자로 분류할 수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돼 계류 중인 강제실종범죄 처벌·피해자 구제법 제정안은 북한에 의한 납북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강제실종 방지 협약 대응 국내법 제정안은 현재 1건”이라며 “법안에 국제협약이 충실히 반영돼있는지 검토 중이다”라고 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협약이 국내에 발효되면서 이행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로 제정안이 발의된 건 의미가 있다”라면서도 “강제실종의 개념 정의와 범위, 강제실종 범죄를 저지른 공권력 주체 등 논의가 보다 면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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