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원전 수출'에 딴지거는 美웨스팅하우스, 체코는 한국편이지만…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최근 24조원 이상 규모의 체코 원전 건설 사업을 사실상 수주했지만, 내년 3월 최종 계약 때까지 치워야 할 걸림돌이 하나 있다. 경쟁자 가운데 하나였던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반발이다.
31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6일(현지시각) 체코반독점사무소에 진정(appeal)했다. 한수원이 지난달 17일 체코 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과 관련해서다. ①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의 원천 기술을 활용하는 중이고 ②웨스팅하우스를 통한 미 정부의 동의 없이 제3자가 사용하도록 할 권리가 없다는 게 진정서의 골자다. 앞서 웨스팅하우스는 입찰 초기인 2022년 10월 미국 법원에도 유사한 내용으로 소송을 걸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한수원 원전 건설의 원천기술이 웨스팅하우스에 있는 건 맞는 말이다. 웨스팅하우스는 1957년 상업용 가압수형원자로(PWR)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업이다. 또한 한수원은 체코 사업을 수행하기 전에 미 정부의 동의를 받을 필요성도 있다. 한국과 미국이 포함된 원자력공급국그룹(NSG)은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원전 수출을 통제하도록 하는데, 한국은 미 기업인 웨스팅하우스의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미 정부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게 NSG 내 중론이다. 한수원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할 때도 웨스팅하우스를 통해 미 정부의 동의를 받았다.
웨스팅하우스가 2009년에는 협조를 했지만, 이번에는 도와주지 않는 것이다. 세계적인 친(親) 원전 흐름에 따라 향후 세계 각국에서 원전 건설 일감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체코 사업 수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한수원을 웨스팅하우스가 견제하고 나섰다는 풀이가 업계에서 나온다. 체코 사업 일감을 일부 나눠 받으려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웨스팅하우스의 최대주주는 캐나다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는 단기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웨스팅하우스가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한수원은 2022년 11월 미 에너지부에 직접 체코 원전 사업 관련 서류를 제출하며 신고했다. 하지만 미 에너지부는 “관계법령에 따라 미국인 또는 미국 법인이 신고해야 한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웨스팅하우스는 “웨스팅하우스를 통해 신고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국내 원전업계는 한수원이 미국에 법인을 만들고 이를 통해 신청하거나 미국 법무법인 등을 통해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초점은 우선 미 정부가 신고를 승인할지에 맞춰진다. 정범진 한국원자력학회장(경희대 교수)은 “미 정부가 승인을 안 할 명분이 없다”고 내다봤다. 체코는 이번 사업에 앞서 4기의 원전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는데, 혹여나 핵무기를 만들려고 할 경우 이 원전들을 활용하면 되고 한수원이 체코에 추가로 원전을 짓는다고 해서 핵무기 확산 가능성이 더 커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 관련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지난 28일 국회 무궁화포럼 조찬 강연에서 “조만간 잘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과거 웨스팅하우스의 원천기술을 들여온 건 맞지만, 현재는 그것을 발전시켜 독자 기술(APR1400)로 만들었다"며 "체코의 새 원전에는 APR1400을 더 개량한 APR1000이 적용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발주처인 체코 쪽도 한국 편을 들고 있다. 지난 27일(현지시각) 체코 통신사 체스케 노비니에 따르면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신규 원전 건설 입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다른 체코 정부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의 진정을 두고 “입찰에 실패한 업체들이 통상적으로 취하는 조치”라고 평가 절하했다.
다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순 없다. 미 정부가 자국 기업인 웨스팅하우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다. 어떻게든 한국의 체코 원전 사업 수행에 제동을 걸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웨스팅하우스는 “(본사 소재지인) 미 펜실베이니아주 일자리 1만5000개를 포함해 체코와 미국 에너지 관련 일자리 수만 개를 한국에 뺏길 것”이라며 자국 중심주의를 펴는 미 정부를 자극하고 있다. 펜실베니아주는 오는 11월 있을 미 대선의 경합 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미 정부와 긴밀히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두 국가 정부 간 윈윈(win-win)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9일 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너무 걱정 마시라”고 했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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