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전사 "尹 거부권 원망했지만…오히려 전화위복 됐다"

신성식 2024. 8. 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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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전사' 신경림 위원장
"의사 할일 간호사에게 시켜 부당이득 챙겼다. 이제 맘대로 못하게 된다. PA 합법화로 질 향상돼 환자에게 이로울 것"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간호법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간호법 전사'로 불린다. 16년 동안 간호법 제정에 몰입해왔다. 삭발, 1인 시위, 집회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신 위원장은 30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PA 간호사가 안전하게 일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고, 환자 서비스의 질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간호법이 정말 힘겹게 제정됐다. 28일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했다.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지 15개월여 만이다. 이 순간 전국의 간호사들이 환호했다. 이 중 온몸에 전율을 느낀 사람이 있다. 바로 신경림(70) 대한간호협회 간호법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간호법 전사-'

신 위원장은 이렇게 불린다. 이렇게 불리길 원한다. 신 위원장은 "간호법은 내 인생의 전부"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신 위원장은 지난해 2월 기자와 인터뷰할 때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강했다. 눈에서 전투 의지가 넘쳤다. 소원을 풀었으니 이제는 편안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30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사무실을 찾은 신 위원장은 전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듯했다.

2008년 간호협회 회장 시절 간호법 준비를 시작했으니까 16년 만에 법안 마련의 꿈을 이뤘다. 2022년 11월 여의도 집회에서 회원 5만명이 보는 앞에서 삭발했다. 광화문 거리에서 5만명, 10만명 집회를 열었고, 3년가량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수요일마다 회원들과 수요 집회를 열었다. 국회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였고, 전국을 돌며 법 제정의 당위성을 강연했다. 할 수 있는 수단을 다 동원했다.


요가 매트 깔고 사무실 숙식


신 위원장은 최근 몇 년간 집에 안 들어간 적이 많다.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회관에서 숙식하며 간호법에 매달렸다. 사무실에서 밤새우는 건 예사다. 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고 잤다. 주변 식당에서 샐러드·김밥 등을 사다가 끼니를 때웠다. 밤늦게 서울 동작구 집으로 귀가하는데, 14살 많은 언니가 챙겨준다고 한다. 주말? 없다.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말고는 간호법 통과 생각뿐이었다. 새벽에, 주말에 임원에게 전화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전화에서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잠이 오느냐"며 독려한다. 이런 말을 들으니 '간호법=신경림'이라는 말이 결코 틀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은 민주당 강선우 의원, 민주당 이수진 의원,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발의한 4개의 법안을 종합한 것이다. 본문 47조, 부칙 10조로 돼 있다. 보건복지부가 곧 시행령·시행규칙을 제정해 세부 사항을 정하게 돼 있다. 면허와 자격, 업무 범위, 권리와 책무, 수급 및 교육, 장기근속을 위한 간호정책 개선 등을 담고 있다. 지난해 거부권 행사된 법률에 담겼던 '지역사회' 문구는 사라졌다. 그게 '독자 개업' 포석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정부는 28일 간호법 통과 보도자료에서 "법률이 제정돼 간호사 전문성 향상 및 근무환경 개선, 숙련간호사의 양성을 통한 간호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의사는 만나고 우린 왜 안 만나주냐"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간호법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아 30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간호법 통과의 소회를 밝혔다. 신 위원장은 "그동안 간호사들이 의사의 지시로 불법적으로 일해 왔는데, 간호법 제정으로 이제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분명해지고 PA 관리가 체계화되면서 환자 서비스 질이 올라가게 됐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Q : -법안 통과 소감은.

A : "말할 수 없이 기쁘다. 법 통과를 위해 노력했던 많은 시간이 떠올라 울컥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우리 동료 간호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수많은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드디어 열렸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뻤다."
-지난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아쉽지 않았나.
A : "왜 안 그랬겠나.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우리를 불러서 한 번만이라도 얘기를 들어주고 거부했다면 덜 서운했을 거다. 그런데 의사는 잘 들어주지 않느냐.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만났는데, 의사는 잘 만나는데 왜 우리는 안 만나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간호사라는 존재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


"환자 곁을 절대 떠나지 않아"

Q : -간호사도 진료 거부로 나갔으면 빨리 통과하지 않았을까.
A : "당시 반나절이라도 현장을 이탈하자는 내부 의견이 있었지만, 결코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야 한다." 지난해 5월 간호협회는 준법투쟁을 했고, 그것도 얼마 못 가고 유야무야 됐다.

Q : -지금도 윤 대통령이 원망스럽나.
"아니다. 전화위복이 됐다고 본다. 법률이 더 튼튼해졌고, 여야와 정부의 합의로 통과했기 때문에 법률이 더 잘 진도가 나갈 것으로 본다. 이제 누군가를 탓하지 않는다. 법률 통과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Q : -독립 법률을 근거로 독자 개업하려는 게 아닌가.

A : "절대 그렇지 않다. 의사에게만 진단권·처방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 제정이 독자적인 의료를 시도해 결국 대한민국 의료를 무너뜨린다고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간호사가 독자적인 의료 행위를 하는 데가 없다."
간호법의 핵심은 진료지원 간호사(PA)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점이다. 지난해 '거부권 법률안'에는 없었다. 국회 통과 법 덕분에 PA가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PA는 미국·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합법화돼 있다고 한다. 여야가 PA 업무 범위를 두고 이견을 보이다 PA들이 많이 참여하는 보건의료노조가 파업을 예고하자 단시간에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2월 전공의 이탈 이후 PA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PA가 할 수 있는 88개 의료행위를 제시했다. 응급 상황에서 심폐소생술과 응급 약 투여 등 주로 전공의가 하던 의료행위다.


PA 10만명 넘을 것으로 추정

Q : -PA가 어느 정도인가.
A : "우리 협회가 6월 19~7월 8일 조사했더니 전국 151개 병원에서 1만3502명이 일하고 있다(전체 활동 간호사는 27만명). 그런데 조사에 제대로 답하지 않거나 전공의가 원래 없던 의료기관에 PA 역할을 하던 간호사가 훨씬 많다. 수련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전 의료기관의 문제라고 본다. 수련병원 PA는 빙산의 일각일 뿐, 다 포함하면 5만명, 10만명도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의사가 할 일을 간호사에게 불법적으로 시키는 일이 훨씬 많다. 의사 퇴근 후 본인의 아이디를 주고 간호사에게 약 처방을 시키거나 검사·처치를 불법적으로 맡긴다. 상처 부위 드레싱(소독), 비위관 삽입 같은 것도 간호사가 다 한다. "

Q : -간호법이 이런 걸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나.
A :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의사가 할 일을 간호사에게 시키고, 간호사가 할 일을 간호조무사에게 시키고, 의사들이 그 차액을 부당 이득으로 챙겼다. 국민은 같은 돈을 내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못 받아 온 거다. 간호법 제정으로 간호사 업무가 명확해지면 의사가 할 일을 간호사에게 마음대로 시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숙련 간호사가 늘 것이다. 지금은 PA를 병원에서 알아서 교육한다. 전공의 이탈 이후 병원들이 제대로 교육하지 않고 일반 간호사를 PA로 투입한다. 이제는 표준교육과정을 만들어 교육하고 질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체계적으로 진료지원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환자 서비스 질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일본은 20년 전 이미 도입


간호협회는 이미 수술실 진료지원 간호사(PA)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센터에서 교육하고 있다. 교육 이수증을 주는데, 앞으로 정부가 자격증을 만든다고 한다. 일본은 20년 전 이미 시행했고, 간호협회가 19개 분야 진료지원 간호사를 배출한다. 일본도 의사 부족 때문에 시작됐다. 해당 분야 임상 경력 5년 이상이 대상이고, 6개월 교육한다.

-어느 분야 PA가 도입될 것 같은가(간호법 하위법령에서 정하게 돼 있음).

A : "수술실·중환자실뿐 아니라 응급실 PA도 포함할 것으로 예상한다. 윤 대통령도 29일 상급종합병원의 진료지원 간호사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전공의에 과도하게 의존해왔던 상급종합병원 구조를 전환해서 전문의, 진료지원 간호사가 의료 서비스의 중심이 되도록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간호법제정특별위원장이 지난해 2월 중앙일보와 인터뷰할 때의 모습. 당시 대한간호협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2022년 11월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며 삭발했었다. 전민규 기자

Q : -간호사 숫자가 많이 부족한가.
A : "의료법에 간호사 1명당 환자 12명을 규정하고 있지만 전혀 안 지켜진다. 실제로는 1대 18명도 양호한 편이다. 1대 20이 넘고, 야간에는 1대 50명이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4배가 넘는다. 이번에 하위법령에 인력 기준을 담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미국은 1대 5이다."

Q : -무슨 재미로 사나.
A : "일하는 재미로 산다. 전사는 일에 몰입해야 한다. 시행령·시행규칙이 갖춰져서 완벽하게 끝날 때까지 모든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몰입하다 보면 결정적 순간에 '이렇게 가는 게 좋겠다'는 느낌이 온다."
신 위원장은 이화여대 간호학과 출신이다. 대한간호협회 회장을 네 번 지냈다. 19대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냈다. 회원 장악력이 뛰어나다. 신 위원장은 "역사적인 순간에 같이 하는 게 영광이지 않으냐"며 임원들을 독려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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