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발견] 제주 돌담과 돌챙이 그리고 돌 자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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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때 되도록 창가에 앉는다.
다 이으면 만리장성 길이의 10배나 된다는 제주의 돌담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돌에서 태어나 돌 틈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제주 사람들의 삶은 돌과 함께해온 터였다.
그중 양병옥(1919~1996)은 제주 최고의 돌챙이로 이름났는데 지금도 그가 돌을 쌓아 만든 한림 천주교 성당 종탑이 위풍당당 자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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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때 되도록 창가에 앉는다. 종종 비행기는 애월 상공을 돌아 공항으로 들어오는데 그때 발아래 보이는 밭 풍경이 대단히 멋지다. 정교하게 디자인된 비정형 조각보 작품이 따로 없다. 같은 초록이라도 그 농도와 채도가 각기 다르고 중간중간 빈 밭의 환기도 마음에 드는 데다 어느 겨울 슬그머니 흰 눈이 쌓이면 그것 또한 그대로 그림이다.
사실 제주의 밭 풍경을 완성하는 존재는 따로 있다. 바로 돌담이다. 다 이으면 만리장성 길이의 10배나 된다는 제주의 돌담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제주에는 돌담이 왜 이렇게 많을까. 싱겁게 들리겠으나 답은 돌이 많기 때문이다. 돌과 바람, 여자가 많다 하여 삼다도라 불린 이 섬에선 온통 돌투성이인 땅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나온 돌의 처분을 위해 담을 쌓기 시작했고 집을 지었으며 해녀들의 불턱을 만들었다.
밭에 생긴 돌담은 자연스럽게 내 땅과 이웃의 땅을 구분했고 바람에 작물과 씨앗이 날아가지 않도록 막아주었으며 혹여 동물들이 밭에 들어와 애써 키운 소산물을 망치지 못하게도 했다. ‘돌에서 태어나 돌 틈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제주 사람들의 삶은 돌과 함께해온 터였다. 자연스레 오래전 제주의 마을에는 저마다의 돌챙이가 있었다. 돌챙이는 돌담 쌓는 석공을 부르는 제주 말. 돌이 많다고 아무렇게나 쌓으면 돌담이 되는 게 아니다. 제주 돌담은 대부분 현무암인데 다른 지역과 달리 꽤나 입체적인 모양이 대부분이라 돌 놓는 방향이나 순서에 따라 모양새와 견고함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얼핏 구멍 숭숭 뚫려 허술해 보여도 큰바람이나 태풍에 무너지지 않는 것이 제대로 된 돌챙이의 능력이다.
이름난 돌챙이를 많이 배출하기로는 한림읍 동명리 문수동이 제일이다. 30가구 남짓 문수동에는 100여년 전 동네 사람들이 함께 돌을 깨고 다듬어 축조한 돌 구조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고, 4·3 때 마을을 지키기 위해 두른 성담도 일부 구간 존재한다. 문수동에는 힘세고 솜씨 좋은 일곱 명의 돌챙이가 있었다. 그중 양병옥(1919~1996)은 제주 최고의 돌챙이로 이름났는데 지금도 그가 돌을 쌓아 만든 한림 천주교 성당 종탑이 위풍당당 자리를 지킨다.
10여년 전 일곱 돌챙이 중 한 명인 조창옥 옹을 뵈었다. 당시 구순이 넘었으나 지팡이를 휘휘 저으며 돌담 현장을 호령하던 기억이 선하다. 몇 해 전 작고하셨는데 그의 아들이 제주 최초 돌담학교인 돌빛나예술학교의 조환진 대표다. 매년 10월 문수동에서는 돌챙이 축제를 연다. 동네 축제로 여길 일이 아니다. 아일랜드와 일본,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등 돌담 문화가 선명한 여러 국가의 전문가, 예술가들도 함께 참여하는 국제적 행사다. 축제를 통해 문수동 돌챙이를 조명하고 돌과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돌 자파리(장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올해 문수동 돌챙이 축제는 10월 12일부터 양일간 열릴 예정이다.
고선영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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