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두려움이 속삭일 때

박재찬 2024. 8. 3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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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찬 종교부장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두려움은 스포츠 선수들도 피할 수 없다. 0.01㎜ 차이 정도로 승부가 결정나는 양궁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동시에 두려움의 압박을 이겨내야 하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세계 양궁 사상 최초로 금메달 5개를 따내면서 전 종목을 석권한 한국 양궁의 쾌거 역시 두려움으로부터의 승리로 봐도 무방하다. 20년째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런 양궁의 특성을 잘 간파하고 있는 것 같다.

2021년 일본 도쿄 대회를 앞두고 정 회장은 ‘두려움 속으로’(폴 아시안테·제임스 저그 지음)라는 제목의 책을 선수들에게 선물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다양한 노력들에 대한 경험이 담겼는데, 책 속엔 이런 내용이 있다. 사자의 사냥 이야기다. 아프리카의 사자들은 영양 떼를 발견해 사냥할 때 무리에서 가장 늙고 병약한 사자가 키 큰 수풀을 향해 나아간다. 나머지 사자들은 반대편 덤불 속에 흩어져 잠복하고 있다가 최고령의 사자가 포효를 하면서 사냥이 시작된다.

이때 영양 떼는 사자의 포효에 놀라 본능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다가 숨어 있던 사자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책은 두려움이 밀려올 때 정면으로 마주하고 오히려 포효 속으로 달려나갈 때 안전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본능에 맞서 두려움을 외면하지 말라는 얘기로 읽히기도 한다.

며칠 전 보건복지부가 최근 9년치(2015~2023)의 자살 사망자 심리부검 분석 결과, 자살 사망자들이나 그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유가족들의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감정 또한 두려움이었다. 인간관계로, 또 학업과 취업, 결혼 등에 대한 스트레스는 우울의 늪으로 빠뜨리면서 삶의 반경을 조이고 삶을 무력하게 만든다. 두려움과 동반하는 불면증과 우울증, 공황장애 증상은 약물에 의존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들에게 ‘두려움을 외면하지 말라’는 조언은 되레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 다리가 부러져 넘어진 사람에게 무작정 일어나 뛰어보라는 궤변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2024 파리패럴림픽에 참가한 미국 수영 대표인 알렉산드라 트루윗(24)의 사연은 용기를 줄 수 있을까. 예일대 수영 선수였던 트루윗은 지난해 5월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상어에게 왼쪽 다리를 뜯겼다. 세 차례 수술 끝에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물 소리만 들어도 사고 장면이 떠오르면서 두려움에 휩싸인 그녀가 붙잡은 건 다른 이들의 ‘재기(다시 일어서는) 스토리’였다.

그리고 사고 발생 100일 만에 첫 경기에 출전한데 이어 대표팀 선발전에서 우승했다. 그는 다른 이들의 치유 과정을 돕고자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Stronger Than You Think)’이란 재단도 설립했다.

‘두려움이 속삭일 때’를 쓴 피터 윌슨 목사는 사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가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우리가 덜 두려워하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을 더 믿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크리스천에게 익숙한 ‘믿음의 이야기’는 믿음이 약한, 혹은 일반인들에게도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신약 성경에서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저 멀리 서 있는 예수를 향해 물 위를 걷다가 출렁이는 파도를 보고 그만 물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풍랑을 의식했을 때 두려움도 함께 엄습했던 것이다. 그때 예수가 베드로를 향해 건넨 말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였다. 예수가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풍랑을 만나 두려움에 휩싸인 제자들은 자고 있던 예수를 깨웠다. 풍랑을 잠잠케 한 예수가 제자들을 책망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두려움이 가득한 세상이다. 수영선수 트루윗이 탐독한 넘어진 이들의 재기 스토리도 좋고, 믿음으로의 도전을 요청하는 성경 속 이야기도 강권한다.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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