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콩고서 시작된 ‘엠폭스’… 아프리카 떠나 전세계 위협
아프리카 중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을 중심으로 각국에 확산되고 있는 엠폭스(MPOX·옛 명칭 원숭이두창)는 사람 사이에서는 물론 동물과의 접촉을 통해서도 전파되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주로 침방울이나 체액을 통해 전파되지만 오염된 물질을 통해서도 감염된다. 감염자에게는 발열·두통·근육통·구토 등의 증상과 함께 수포성 발진이 나타난다. 올해 가장 강하게 퍼지는 엠폭스 유형은 지난해 9월 등장한 하위 계통인 ‘1b형(clade 1b)’이다. 이 유형은 이미 아프리카 중부뿐 아니라 태국과 스웨덴 등 아시아·유럽에서도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엠폭스 변이의 확산세를 우려한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긴급 회의를 열고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인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했다.
엠폭스는 1958년 덴마크의 한 실험실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돼 ‘원숭이두창’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쥐 같은 설치류에서도 발생한다. 인체 감염 사례가 처음으로 보고된 곳은 1970년 민주콩고였다. 이후 1990년대 후반 ‘콩고 내전’ 등 여러 혼란을 겪은 민주콩고에서 엠폭스는 퇴치되기는커녕 주변국으로 퍼졌다. 다만 당시 엠폭스는 아프리카 동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 풍토병으로 간주됐다.
2022년 엠폭스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확산세를 나타냈다. 미국 등 다른 대륙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하자 WHO는 그해 7월 엠폭스에 대한 PHEIC를 발효했고, 10개월 만인 지난해 5월에야 해제했다.
하지만 올해 엠폭스의 확산세는 더 강력해졌다. WHO는 지난 22일 엠폭스 동향 보고서에서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 중부 일대와 전 세계에서 엠폭스가 확산되고 있지만 위험 수준은 중간 단계로 평가된다”면서도 “민주콩고 동부의 위험 수준은 높고 확산세도 매우 강하다”고 진단했다.
민주콩고 동부는 120개가 넘는 무장세력들의 자원 쟁탈전이 수십년간 이어지면서 콩고 내전 이후에도 총성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아프리카에서 알제리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민주콩고 영토에는 고부가가치 지하자원이 다량 매장돼 있다. 민주콩고의 다이아몬드 채굴량은 세계 4위이며 합금에 쓰이는 코발트 생산량은 세계 총량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최근 민주콩고 동부에선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연계 세력인 민주군사동맹(ADF), 투치족 중심으로 결성된 M23 반군이 뒤섞여 민주콩고 정규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이를 피해 고향을 떠난 주민들은 북키부주 주도인 고마 등지에 마련된 난민촌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난민들을 기다린 것은 엠폭스였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고마 난민촌은 그나마 구호품이 보급되는 곳이지만 워낙 밀집된 인구 탓에 엠폭스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수건 등 생활용품을 나눠 쓰는 과정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한다”며 “하지만 북키부주를 장악한 M23 반군은 엠폭스 감염 사례를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마 난민촌에서 생활하는 장 문귀코(29)는 이코노미스트에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이유가 엠폭스로 죽기 위해서는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국제기구 전문가들은 아동과 청소년이 엠폭스에 더 취약하게 노출돼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위생 상태가 열악한 집단 시설에서 깨끗한 물과 음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난민 어린이들에게 엠폭스는 치명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국제 아동 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26일 “올해 민주콩고에서 엠폭스 감염자 중 70%는 만 15세 미만”이라며 “현지에서 지난 20일까지 파악된 엠폭스 감염 어린이 사망자는 321명, 1세 미만 영아 치사율은 8.6%에 달했다”고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의 국제 보건·영양 책임자인 레바티 팔키 박사는 “엠폭스 감염·사망 위험이 어린이, 특히 난민촌에서 심각하다”며 “엠폭스는 피부 간 접촉, 공기 중 전파, 오염된 옷·침구류·조리기구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 감염 어린이 가운데 일부는 호흡기 질환, 패혈증, 2차 세균 감염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민주콩고 주변국 어린이들도 엠폭스에 노출됐다. 유엔 산하 어린이 구호기관인 유니세프는 “어린이 감염자가 브룬디·르완다·우간다·케냐 등지에서 지난 22일에만 200명 넘게 집계됐다”며 “특히 브룬디에서 20세 미만의 감염률이 60%, 5세 미만의 경우 21%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엠폭스의 치명률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백신 보급이 시급하지만 WHO의 늑장 대응으로 지연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엠폭스 백신 ‘진네오스’를 생산하는 덴마크 제약사 바바리안노르딕의 최고경영자(CEO) 폴 채플린은 뉴욕타임스(NYT)에 “당장 판매할 수 있는 백신 35만개를 보유 중이고 내년 말까지 1000만개를 더 생산할 수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NYT는 “바바리안노르딕이 지난해 5월 진네오스 백신과 관련해 ‘미국에서 최소 한 차례 접종한 120만명 이상의 엠폭스 예방률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를 포함한 각종 자료를 WHO에 제출했다”며 “WHO는 그 내용을 뒤늦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백신 승인 지연 탓에 아프리카 공급이 불필요하게 늦어졌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억 외제차 뇌물’ 의료원 입찰 비리 적발…경찰, 2명 구속
- ‘아동학대 혐의’ 손웅정 감독, 코치 2명 약식기소
- 연희동 싱크홀 인근서 또 도로 침하 발견...성산로 차로 통제
- “그 교실, 그 학생”…딥페이크 피해 교사, 직접 잡았다
- 한동훈·이재명, 내달 1일 ‘생중계 없는’ 회담 확정… 의제는 이견 팽팽
- 새 역사 교과서 공개… 보수 학계 시각 반영
- [단독] 여중생 딥페 사진 나왔는데도…증거불충분 무혐의
- 유례없는 ‘세대별 차등 인상’ 카드… 연금 고갈 막을까
- 한달새 주가 60% 폭락… 효성 3남의 험난한 ‘홀로서기’
- 대표가 전무로 강등…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점입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