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과거에 얽매이는 민주당 [신율의 정치 읽기]
여론조사상으로만 보면 민주당이 저조한 지지율의 늪에서 헤어 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8월 23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8월 20일부터 2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직전 조사 대비 4%포인트 상승했다. 국민의힘 지지율과의 격차는 1%포인트로 좁혀졌다.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 덕분인지는 몰라도,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세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민주당이 지금의 추세에 만족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다. 민주당의 텃밭이라 불리는 호남 지역 지지율이 여전히 60%가 되지 않는다. 호남에서의 민주당 지지율은 50% 남짓이다. 민주당의 지역 기반이 흔들린다는 의미다. 이는 진보층에서의 민주당 지지율도 견고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비명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박광온, 강병원, 박용진, 신동근, 송갑석, 양기대, 윤영찬, 김철민 전 의원 등 15명의 비명계 전직 의원으로 구성된 ‘초일회’가 활동을 시작한다. 이런 움직임은 이재명 대표 ‘1극 체제’에 대한 도전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이런 움직임에 김부겸 전 총리나 김동연 경기도지사, 그리고 민주당 밖의 인사, 예를 들어 새로운미래의 이낙연 전 대표 등도 호응하는 모양새다.
비명들이 정치 활동을 재개하는 이유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꼽을 수 있다.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 중 2개의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10월과 11월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비명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10월과 11월에 있을 1심 선고에서 하나라도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판결이 내려지면, 민주당은 일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비명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정치 재개와 정치적 영향력 확대의 기회라고 판단할 테다. 비명 정치인들이 이런 판단을 하는 이유가 있다. 현재 민주당이 ‘1인 중심 정당’이기 때문이다. ‘1인 중심 정당’에서는 중심이 되는 인물이 흔들리면 당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 이재명 대표 1심 판결에 민주당의 운명이 달려 있는 셈이다.
당연히 민주당 지도부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 “이재명 대표 무죄 판결을 확신한다.” “피선거권 박탈형이 나올 경우에는 국민적 분노가 일 것이다.” 주장하더니, 이제는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들고나오는 것을 보면 그렇다.
“최근 정권 흐름의 핵심은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는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다”라고 말하는 최고위원이 있는가 하면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무너지지 않고 군을 동원해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국민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하는 최고위원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77조 5항에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 현재 민주당 의석수는 172석이다. 여기에 당연히 계엄 선포에 반대할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의석까지 합하면 192석에 달한다. 야당이 원하면 계엄령을 언제든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의석을 이미 확보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계엄령 운운하니, 듣는 이가 당혹스럽다.
계엄령 관련 말이 나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추측할 수 있다.
우선 현재 진행형인 돈봉투 수수 의혹과 관련된 야당 의원에 대한 수사를 ‘계엄령’ 주장과 연결 짓는 전략을 민주당이 구사할지 모른다는 추론이다. 야당 의원에 대한 수사를 ‘계엄 음모론’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뿐 아니다. 10월에 이재명 대표가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유죄 판결을 받기라도 하면, 계엄 준비를 위해 야당 대표를 법적으로 묶어두려고 한다고 주장할 환경도 조성할 수 있다.
이외에 민주당의 계엄령 주장이 포함하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바로 민주당의 ‘과거 지향성’이다.
민주당의 과거 지향적 정치 전략은 도처에서 보여진다. 계엄령 주장이나, 현 정부 인사를 차지철과 비교하는 것, 그리고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사안 유포를 통한 반일 정서 자극 등이다.
민주당은 과거 독재 정권에 대항했던 시절에 대해 일종의 ‘향수’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독재 정권에 저항한 민주화 세력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이런 민주화 세력으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끈 ‘과거의 민주당’과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끈 보수 정치 세력을 들 수 있다. 반독재 투쟁 당시에는 정치적 전선(戰線)과 사회적 전선이 거의 일치했다. 높은 교육열의 결과물로 수준 높은 민도를 가졌던 우리 국민은 정치 사회적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이런 이유에서 사회적 갈등에서 파생되는 전선과 정치적 전선이 대략 일치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적과 동지의 구분도 뚜렷했다. 일치단결해 타도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도 공유했다.
지금은 아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에는 ‘분명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인위적’으로 적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동시에 ‘적에 대한 인식’을 다수 국민이 공유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들의 생각을 국민에게 ‘계몽’하려 드는 것이다. ‘계엄령’도 그렇고 ‘차지철’과의 비유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친일 문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후쿠시마 문제를 다시 들고나오지만, 국민 호응 정도가 미약해 ‘반일 물결’을 일으키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다른 소재를 찾을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민주당의 ‘친일 공세’를 가능하게 만드는 단초를 현 정권이 제공했다는 점이다. 일으키지 않아도 될 역사 논쟁에 불을 지핀다든지, 공직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역사 논쟁을 일으키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환경을 제공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친일 공세를 편다면 민주당에 역풍이 불 수도 있건만, 현 정권 스스로의 행동 때문에 민주당의 ‘친일 공세’가 나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과거 지향성이 적과 동지의 구분을 뚜렷이 하고, 이를 통해 정치 행위 동력을 확보하려 하는 것이라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란 적과 동지의 구분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다. 상대를 파트너로 생각해야만 성립이 가능하다. 때문에 상대에 대한 공세도 때로는 필요하겠지만, 어느 정도의 선은 지켜야 한다.
모든 것이 과하면 탈이 나듯, 상대가 잘못했다고 지나친 공세를 펴면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또 과거를 회상한다는 인상이 민주당에 좋을 것도 없다. 미래 지향적 이미지를 줘야, 미래에 대한 가치 투표에서 민주당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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