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셋에 18개월 둘째를 키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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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경 기자]
둘째의 육아휴직을 마무리하고 5월에 복직했다. 급여생활자로 복귀한 지 이제 겨우 3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3년은 된 것 같다. 아마도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서 이미 하루치 체력을 소진하는 탓이리라.
일주일 중에 월요일은 눈물의 요일이다. 어린이집에 가까워지면 주저앉고, 앉아올리면 내 목덜미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기 일쑤다.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며 우는 아이를 떠밀다시피 어린이집으로 들여보내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것처럼 묵직한 것이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출근하는 이유는 단 하나, 매달 통장에 찍히는 두 글자 '급여'이다. 금액으로 치면 매우 소소해서 존재감이 크지 않지만 그래도 월급 덕분에 외식도 하고 아이들 옷도 사입힐 수 있다. 무엇보다 대출이 가능하다. 대출금이야말로 직장인들의 출근을 이끄는 원동력이 아닐까?
한 달 생활비가 빠듯한 가운데 필라테스 1:1 수업을 등록했다. 새로 생긴 운동 센터에서 홍보하는 '오픈 특가'에 마음을 흔들렸다. 필라테스 등록하면 피트니스 센터는 '무료로 이용' 할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버렸다.
▲ 체력은 육아의 기본. |
ⓒ 픽사베이 |
몸이 늙어간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하는 나이가 마흔이 아닐까.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고 회복 능력이 둔화되며 양 어깨 위에 곰 두 마리는 좀처럼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마흔 넘어 출산을 하고 나니 몸은 내 것이 맞을지언정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자꾸 눕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흔셋에 18개월 둘째를 키우는 건 서른여섯에 첫째를 낳아 기르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몸이 쉽게 피로해지니 별것 아닌 일에도 아이에게 짜증을 냈다. 기초대사가 원활하지 않아서인지 먹는 양에 비해 살이 찌고 잘 빠지지 않았다. 사진 속 내 모습이 미워서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더니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영상이 없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얼굴은 분명 웃고 있을 텐데.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운동, 걷기나 달리기를 하면 되지, 요즘 홈트레이닝이 대세인데 집에서 하면 되지. 필라테스 등록했다고 하니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그런데 그건 '학원 말고 집에서 공부하면 되지' 만큼 이상적인 소리로 들린다.
집은 공부든 운동이든 꾸준히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유혹 거리가 넘쳐난다. 오늘 하루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때 안 된다고 등떠밀어 줄 사람이 없다. 돈을 들여 학원에 가고 운동 센터에 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에라 모르겠다' 드러눕고 싶은 날에도 본전 생각이 나서 벌떡, '회원님 오늘 운동하는 날인 거 아시죠?' 선생님 문자에 후다닥 집을 나서게 된다. 돈으로 의지를 살 수 있다.
▲ 운동하는 엄마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
ⓒ 픽사베이 |
네 식구가 사는 집에서 가족들과 살 부비며 모든 순간을 공유하는 건 안온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지만 가끔은 6평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던 때가 미치도록 그립다. 운동은 오롯이 나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명분이 되어준다. 놀러가는 게 아니라 운동 간다는데 어느 남편이 안 된다고 하겠는가.
코어 힘에 집중하며 다리를 들어올리고 몸통으로 버티는 동안에는 딴 생각할 틈이 없다. 오로지 지금 하고 있는 동작의 자세가 바른지, 힘 쓰는 근육에 자극이 오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거울 속 땀에 젖은 나는 엄마가, 아내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일 뿐이다.
삶의 중심이 내가 되어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이치이지만 이를 지키며 사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일에 치여서, 친구들에게 휩쓸리다 보면... 등의 여러 이유들이 있겠으나 결혼한 사람 중에는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느라 '나'를 뒷전에 두는 경우가 많다.
운동 가방을 들고 있는 내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 아주머니께서 물으셨다.
"직장 다니고 어린 애들 키우며 운동 할 시간이 있어?"
"체력이 있어야 일도 하고 애들도 보죠."
애 엄마가 애들은 어쩌고 이 시간에 운동이냐고 묻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을 했다. 부지런하다는 칭찬의 말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예민하게 반응한 걸까? 귀가한 아내를, 엄마를 반갑게 가족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번엔 남편이 운동 나갈 채비를 한다. 나의 '혼자있음' 만큼 그의 시간도 존중해야 공평하다.
"엄마, 1킬로그램이라도 빠졌어?"
첫째 아이가 묻는다.
"엄마 살 빼려고 운동 하는 거 아니야. 건강해지려고 하는 거지."
대답하며 슬쩍 거울을 한번 쳐다본다. 솔직히 눈에 띄게 살이 빠진 건 아니다. 4개월동안 4킬로그램이 빠졌다. 3개월에 10킬로그램을 감량했네, 아이 낳고 17킬로그램을 감량했네 하는 릴스나 숏폼이 넘쳐나는 것에 비하면 나의 변화는 느리고 미비하다.
그래도 내 속도에 맞추어 꾸준히 진행 중이고 무엇보다 기분 좋은 건 체지방만 줄어든 게 아니라 근육량도 늘었다는 점이다. 다이어트에서 운동보다 효율적인 건 식습관 관리인데 아이들 밥 차려주다 보면 간 본다고 한 입, 남은 반찬 치운다고 한 입. '한 입'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지대하다.
지금은 일주일에 사나흘, 1시간 남짓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적어도 3-4년은 더 둘째를 키워야 하고 그때쯤이면 마흔보다는 쉰에 가까운 나이가 되겠지만 어떠랴. 운동을 지속하면서 또 무얼 하면 좋을까? 생각만으로도 몸이 들썩들썩한다. 영어공부, 첼로...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해지했던 적금도 다시 시작했다. 단, 이번엔 1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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