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사태 장기화, 학부모는 속이 탑니다

김현숙 2024. 8. 3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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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자꾸 악수 두는 정부... 수능과 군대에 미칠 나비효과도 걱정

[김현숙 기자]

▲ 의료 공백 장기화 속 병원 응급실 의료계 파업 장기화로 응급실 등 의료현장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28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한 환자가 들것에 실려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학부모로서 의대증원 사태를 바라보는 심정입니다.

1만 8천 명의 의대생들이 학교를 안 간 지 오늘(8월 30일)로 193일이 되었습니다. 젊은 대학생들이 학교를 안 가는데도 대한민국은 어떻게 이리 평온한지요? 남의 일이니 모두들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학부모인 저도 의사 악마화에 움츠러들고, '성인인데 부모가 왜 끼어드냐?'는 시각에 몸을 숙이다 보니 어느덧 6개월이 훌쩍 지나고 말았습니다. 강의실이 아니라 자기 방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부모로서 마음이 답답하고 기성세대로서 미안함도 듭니다.

저희 집 방에, 1만 8천 가정마다 있을 1만 8천 명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한숨이 나옵니다. 이제 갓 성인이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독립이 안 된 어정쩡한 성인, 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던 젊은 청년들인데 말입니다.

6월 26일 청문회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만 나누기 5해서 2000명 증원을 결정했다고 하고, 박민수 차관은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400명 증원도 근거가 없다고 했음에도 의대증원 2000명 정책이 뚜벅뚜벅 진행되는 것을 보고 과연 방구석에 쳐박혀 있는 저 젊은이들은 앞으로 무엇을 따르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악수 두는 정부의 어설픈 정책들
▲ 국립중앙의료원, 파업 계획 철회 파업 계획을 철회한 29일 국립중앙의료원의 모습.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의 29일 총파업을 앞두고 파업이 예정됐던 의료기관 62곳 중 59곳의 노사 교섭이 타결됐다.
ⓒ 연합뉴스
의대생들은 학교에 있어야 할 1학기 전체를 흘려보냈고 이제 2학기 등록을 해야 될 시점이 다가왔습니다. 교육부는 내년 2월 28일까지 대학이 알아서 2학기 등록 기간 연장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의대생들을 돌아오라고 내놓은 대책인 것인지 정말 의문이 듭니다. 잘못된 정책인 2000명 증원은 고치지 않고, 엉뚱한 뒷수습만 하니 점점 꼬이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내년 2월까지 등록을 안 해도 된다니, 이제 32개 증원된 대학의 예과 1, 2학년들은 올해 11월에 수능을 응시해서 증원이 되지 않았거나, 증원이 덜 되어서 교육여건이 그나마 좋은 의대로 갈아 탈 수 있는 기회를 선택하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 사항이 되어버렸습니다.

교육부가 2000명 교육이 불가하다고 바른말을 하지 않고, 미봉책만 내놓으니 올 11월에 수능을 보고 내년 2월 중순에 입시 결과를 보고 지금 소속된 학교에 등록을 할지 더 여건이 좋은 학교에 등록을 할지 결정을 하라고 의대생들을 내미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설픈 정책이 자꾸 악수를 두는 것 같습니다. 정말 아이들이 수능을 다시 보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목표는 아니지 않나요? 예과 1, 2학년들이 수능을 다시 보게 되면, 그 혼란과 파장이 어떻게 될까요? 저는 교육부가 2월까지 등록금을 안 내도 된다고 하는 발표를 듣고, 이제 방구석에 있던 젊은이들이 불안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다들 수능을 보러 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교육정책 담당자의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 하나 봅니다.

게다가 교육부에서 24학번이 아니고, 25학번에게 수강우선권을 주겠다고 한 상황이니 증원하지 않은 서울권 의대를 위해 다시 수능을 보는 것이 예과 1, 2학년 의대생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저는 "의학교육이 정말 망가지고 말았구나", "돌이킬 수 없는 한계점을 지났구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이 지금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전공의들이 없는 상태에서 본과 3, 4학년 학생들의 실습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을 것이 자명해보입니다.

이 상황에서 본과 3, 4학년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군대를 갈 겁니다. 군의관은 복무기간이 38개월이니, 일단 사병으로 18개월을 가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군의관 부족사태가 군대에 갈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또 어떤 불행한 일을 불러올지 이 사태의 나비효과가 정말 염려됩니다.

본과 4학년들이 국시거부를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공부를 안 한 상태에서 어떻게 의사 면허증을 받겠습니까? 이번 사태로 의대생들이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겨서, 심지어 전공의도 소송에 걸려 있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떤 젊은이가 본인의 인생을 망치자고 교육도 안 받고 선뜻 면허를 받겠습니까? 그런데도 이것을 마치 특혜인 양 내세우는 보건복지부의 행태에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습니다.

빨리 이 사태 해결돼 일상으로 돌아가길
▲ 국회 앞 목소리 전국의대생학부모연맹 관계자들이 16일 오전 국회 앞에서 의학 교육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 의학교육소위원회는 보건복지위원회와 '의과대학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를 열고 2025학년도 1509명 의대 정원 증원이 결정된 과정을 살펴본다.
ⓒ 연합뉴스
잘못된 정책들 때문에 학부모와 의대생들은 갑자기 투사가 된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이 무리한 정책이 피부에 와닿지 않으니 무관심해져가는 듯합니다.

대통령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합해서 정책을 추진해야 되는데 의대 증원 2000명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도 않았고, 민주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정책 수행으로 미래세대들에게 보여줄 미래 청사진은 도대체 무엇인 걸까요?

미국은 반도체와 과학산업에 약 366조 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만들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여러가지 세부 법안들을 만들고 외국기업들을 유치하고자 의원들이 힘쓰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온 나라가 의대 증원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지방에 세우겠다는 의대가 도대체 몇 개인지 모르겠습니다. 날마다 국회의원들이 세우고자 하는 지역 의대 수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청사진은 과연 무엇이고, 그 안에 의대증원 2000명의 그림은 어디에 속해 있는 것일까요?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지금 집에 쳐박혀 있는 저희집 아이 미래 뿐아니라 대한민국, 이 나라 걱정까지 하게 되는 것은 저의 오지랖인 걸까요?

저는 의대생 학부모이지만,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의사협회, 각 시도 의사회, 교수님, 선배 의사들이 올바른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어 놓지 않고 제 살기 바빠서 의료 정책과 그 외 여러 문제점들에 무관심했던 것 같아 정말 원망 스럽습니다.

의대생 8대 요구안 중 첫 번째는 "정부는 과학적 연구에 기반하지 않고 정치적 이해 타산만을 위해 추진한 필수의료패키지와 의대 증원 정책을 전면 백지화하라"입니다만, 그외 둘째부터 여덟 번째까지의 요구안들은 정부와 학교, 선배 의사들에게 제대로 된 체계를 만들어 달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라는 것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정부와 그리고 선배의사들을 대표하는 의협이 그동안 의대생, 인턴, 전공의들을 외면해온 것이구나 라는 걸 이번 사태로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수련이라는 미명하에 노동 75프로, 수련 25프로로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 취급을 해왔고, 전공의를 그런 프레임으로 대한 건 정부도 선배의사도 교수님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사협회는 이러한 프레임에 젊은이들이 갇혀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래세대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존경받는 선배의사가 아니라 젊은이들 등골 빼먹는 일반 기득권 집단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미래세대와 같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주시기를 의협에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전국의대학부모연합(전의학연)이라는 단체는 학부모들이 이번 사태에 소통과 교류를 하고자 올해 2월에 만들어진 커뮤니티 공간으로 현재 약 3700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전의학연이라는 커뮤니티도 평범한 일상이었다면 만들어 질 필요도 목적도 없는 곳입니다. 저는 빨리 이 사태가 해결이 되어서 전의학연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게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우리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현숙씨는 의대생 학부모이며 전국의대학부모연합의 공동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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