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의사 수급추계 기구 출범…상급병원 구조·필수의료 수가 개편한다
정부가 의사 등 의료인력의 수급 추계·조정을 위한 기구를 올해 안에 출범한다. 의료계가 여기에 참가해 대안을 제시한다는 전제하에 2026년도 의대 정원 규모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상급종합병원의 중증 환자 비율은 70%까지 끌어올리고, 응급 등 필수의료 분야엔 ‘공공정책수가’로 보상을 강화한다. 이러한 의료개혁 작업에 향후 5년간 국가재정 10조원, 건강보험 10조원을 각각 투입한다.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가 6개월 이상 장기화하는 가운데,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30일 회의를 열고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4월 의개특위 출범 후 중점적으로 논의해온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과 중증·필수의료 수가 개선, 전공의 수련체계 혁신,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의 세부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우선 의개특위는 의사·간호사 등을 아우르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조정 논의기구를 연내 꾸리기로 했다. 이 기구는 수급추계 전문위원회, 직종별 자문위원회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 위원의 추천 절차는 다음 달에 시작할 계획이다. 내년 중엔 추계 작업을 지원할 기관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를 설치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구축되면 3~5년 주기로 직역별 수급 추계에 들어간다. 의사·간호사 추계부터 먼저 하고, 한의사·치과의사·약사로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추계 결과는 인력 수급 정책에 활용하게 된다.
특히 의개특위는 의료계가 참여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규모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의사단체들은 "정부가 부정확한 수급 추계를 내놨다"는 이유로 내년도를 비롯한 의대 증원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기구에 들어오면 2026학년도부터는 조정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내비친 셈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미 정부가 대학 입학 시행계획을 발표했고 단기간 내에 (의료) 여건이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의료계가 추계 조정시스템 활용에 동의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 (2026년도 정원) 논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2026년도 의대 증원 문제는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된 상황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실에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을 보류하자"고 제안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불가피한 대안’이라며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개혁을 멈출 수 없다"면서 의대 증원을 그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의개특위는 집단 사직으로 의료공백을 촉발한 전공의 관련 수련 체계도 손보기로 했다. 전공의가 병원 진료 업무에 치여 정작 수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내년부터 지도전문의가 전공의를 밀착 지도할 수 있도록 1인당 최대 연 8000만원까지 수당을 지급한다. 필수의료 과목엔 1인당 50만원인 임상 교육 비용 지원을 확대한다. 올해 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신경외과에 내년 응급의학과를 추가하는 식이다.
또한 내년에 11억원을 들여 다기관 협력 수련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상급종합병원과 진료협력병원이 손을 잡고 다양한 환자에 대한 수련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공의 수련 시간을 단축하는 시범사업도 내년 중 시동을 건다. 정부는 전공의 수련 개선을 위해 올해 35억원인 수련 지원 예산(수련 수당 제외)을 내년에 3130억원까지 대폭 늘릴 계획이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의료 공급·이용 체계에도 메스를 댄다. 상급종합병원은 비중증 환자 대신 원래 기능인 중증·응급·희귀질환자 진료 중심으로 개편한다. 중증 환자 비율은 현재 50% 수준에서 3년 내 70%까지 올리거나, 현 비율 대비 50% 이상 높이기로 했다.
중증 환자 진료에 집중하기 위해 서울 대형병원(허가병상 1500병상 이상)은 일반병상의 15%, 그 외 서울 병원 및 수도권 병원은 10%, 비수도권 병원은 5%를 각각 감축한다는 목표다. 또한 전공의 비중은 40%에서 20%로 단계적 감축하고, 전문의와 진료지원(PA)간호사 중심으로 업무 구조를 바꾼다. 이런 내용의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은 다음 달부터 3년간 진행할 계획이다.
‘빅5’ 병원 등 서울 쏠림 현상으로 흔들리는 지역 의료엔 힘을 싣는다. 거점병원 역량을 키워 지역 내에서 중증·응급 최종 치료가 가능하게 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국립대병원 수술실·중환자실 등 시설 장비 첨단화에 내년 1836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국립대병원 투자를 가로막던 인건비·정원 규제를 없애고, 교수 정원도 2027년 10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수도권으로의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도 시범사업 형태로 도입한다. 지역 의료기관에 장기 근무하는 걸 선택한 3년 차 미만 전문의가 지자체와 직접 계약하는 방식이다. 내년 4개 지역·8개 진료과 전문의 96명에게 월 400만원의 지역근무수당을 지원한다. 해외 연수 기회 등도 제공한다.
저수가 등으로 기피 현상이 심한 필수의료 과목에 대한 보상 체계도 전면 개편한다. 생명과 직결된 이들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집중적으로 올린다는 목표다. 올 하반기엔 상급종합병원에서 주로 이뤄지는 중증 수술 800여개와 수술에 필수적인 마취에 매기는 수가를 인상한다. 이어 내년 상반기까지 총 1000여개 중증 수술과 마취 행위에 대해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 수가를 올린다. 여기엔 연간 약 5000억원 이상을 투입한다.
현 수가 체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난이도·위험도 ▶의료진 숙련도 ▶응급진료 대기 ▶지역 등 4대 항목은 공공정책수가를 신설·확대하면서 적극 보상할 계획이다. 올 하반기 응급에 필요한 ‘24시간 진료’ 수가를 새로 만드는 게 대표적이다. 분만과 심장, 중증 응급 등에서 환자 치료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한 상시 대기 근무 특성을 고려했다.
그 밖엔 환자·의료진을 위한 의료사고 안전망을 강화한다. 의학적·법적 지식이 부족한 환자를 도울 수 있는 가칭 ‘환자 대변인’을 신설한다. 내년 시범 운영 후 전면 시행한다는 목표다.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과목 전공의·전문의를 위한 의료사고 배상 책임보험·공제 보험료도 국가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내년 기준 50억원 규모다.
정부는 의료개혁 추진을 위해 향후 5년간 국가 재정 1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내년 2조원 규모로 본격적인 스타트를 끊는다. 올해 280억원이던 의료인력 지원이 내년 8000억원으로 늘어나는 게 대표적이다.
건강보험 재정도 마찬가지로 5년간 10조원 이상 투자할 예정이다. 중증·필수·지역 의료 수가를 정상화한다는 목표다. 반면 보상이 과하거나 남용되는 진료 항목의 수가는 줄이고, 이를 통해 절감한 돈을 추가 투자에 넣기로 했다.
다만 의료계는 의개특위가 진행하는 모든 의료개혁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의개특위 발표는 수없이 논의했지만 결국 실현되지 않은 정부의 또 하나의 공수표에 불과하다"면서 "실현 가능성은 낮고 다가올 의료붕괴를 가속화할 뿐인 정책들로 가득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의협은 정부가 마련한 의사 수급 추계·조정 시스템을 활용한 2026년도 의대 정원 규모 논의에도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채동영 의협 홍보이사는 "의협이 참여하든 안 하든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면서 "정말 참여를 원한다면 (의료계가)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규홍 장관은 "의료계가 원하면 의개특위 논의 진행해 나가면서 별도 양자 협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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