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원 들더라도 지워야"…벼랑 끝 '딥페이크' 피해자 몰리는 곳
20대 여성 A씨는 지난 1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피해자지원센터)에 딥페이크물 삭제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도 삭제됐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A씨는 “이대로 두면 딥페이크물이 더 퍼질 것만 같았다”며 “사설 업체에 150만원 주고 삭제를 맡겼더니 한 달 뒤쯤 업체로부터 삭제가 완료됐다고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최근 텔레그램에서 ‘지능(지인능욕)방’, ‘겹지(겹치는 지인능욕)방’ 등 딥페이크 불법 촬영물이 퍼지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딥페이크물 삭제 지원이 이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피해자지원센터가 지난해 불법 촬영물 24만5416건을 삭제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2019년 9만338건에서 약 2.7배 증가한 수치다. 이 중 딥페이크 피해 신고는 2019년 134건에서 올해(지난 25일 기준) 781건으로 5.8배 증가했다. 그러나 이같은 삭제건수 증가보다 불법 촬영물이 퍼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정부에선 강제로 삭제할 권한도 없는데다 인력이 부족해 불법 촬영물 확산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삭제에 강제성이 없다 보니 모니터링과 메일 등으로 딥페이크 삭제 요청을 하는 게 할 수밖에 없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불법 사이트 차단을 요청해도 도메인을 옮겨 새로 (불법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20년 ‘n번방’ 사건 당시 67명이었던 피해자지원센터 인력이 2021년 이후엔 39명으로 감소하면서 대응력에도 한계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인력난은 수사기관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경우 전국 검찰청으로부터 오는 불법 영상물 차단 요청을 대검찰청 사이버기술범죄수사과 소속 수사관 1명이 담당한다. 검찰이 최근 3년간 방심위에 차단 요청한 인터넷 주소(URL)는 2022년 48건→지난해 136건→올해 1~7월 70건 등이다. 피해자지원센터가 1차, 경찰이 2차로 삭제를 한 뒤 남은 사건이 검찰 몫이라곤 해도 “직원 1명이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구조는 문제”(수도권 부장검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적 한계 역시 뚜렷하다. 현재 불법 영상물 적발은 ▶원본 영상 해시값(고유값) 대조 ▶피해자 얼굴 등 영상 특징을 수치화한 데이터베이스(DB)로 대조 ▶불법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검색하는 방식 등으로 이뤄진다. 해당 업무 경험이 있는 수사관은 “해시값은 영상 사이즈만 변경해도 바뀌고, 영상 DB화도 모든 게시물을 잡아내진 못한다”며 “담당자가 영상 내용을 외우고 며칠씩 야근하는 게 예삿일”이라고 말했다. 대검은 “불법 사이트들의 주기적인 도메인 변경과 IP 추적 회피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 시스템 고도화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삭제 지원이 역부족이라고 느낀 일부 피해자들은 사설 ‘디지털 장의사’를 찾아가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온라인에 올라온 각종 개인정보 삭제를 돕는다. 피해자지원센터처럼 메일을 보내서 딥페이크물 등의 삭제를 요청하는 식이다. 텔레그램에서 유포되는 딥페이크물은 삭제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피해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겠단 심정으로 사설 업체에 수백만원을 지불하고 있다. 한 업체는 “억울한 피해자가 수백만원을 써가면서도 딥페이크물을 삭제하지 못한다면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것”이라며 딥페이크물 삭제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텔레그램서 지능방을 운영한 20대 남성 A씨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A씨는 지난 22일 긴급체포돼 구속됐고, 범행의 피해자는 246명으로 조사됐다. 약 4년간 성인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2만개가 넘는 불법 성 영상물을 유포한 30대 남성 B씨도 같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이찬규·김정민·양수민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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