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된장녀야?" 韓 뒤집어놨던 스벅, 25년 만에 놀라운 반전

2024. 8. 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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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세태취재

“된장녀 드나들던 별다방? 기프티콘 들고 공부하러 가는 곳”

국내 원두커피 문화 정착…지금은 MZ들 공부방
물가 부담에 저가형 커피 늘고 고급 이미지 줄어

스타벅스가 한국 진출 25주년을 맞이했다. 스타벅스는 업계 매출 1위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다. / 사진:송선교 인턴기자

지난 7월 19일 오후, 스타벅스 상암DMC점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스타벅스가 한국 입점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기 때문이다. 인기 메뉴 3종이 무려 25년 전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3000원. “오늘이 할인 행사 마지막 날이다. 언제 또 이 가격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먹겠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구매하기 위해 매장에 들렀다는 진모(51) 씨가 말했다. 진씨는 25년 전 스타벅스를 처음 접한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커피 한 잔에 3000원이라는 말에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고 했다. 100원대 자판기 커피에 익숙했던 그에게 3000원짜리 아메리카노는 사치품이었다. 하지만 이제 진씨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스벅 마니아’가 됐다.

스타벅스코리아의 역사는 1999년 여름 신촌에서 시작한다. 당시 이화여대 앞 1호점이 시초였다. 이후 사반세기 동안 한국의 대표 커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스타벅스코리아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운경(47) 남부권역 매장관리팀장은 스타벅스와 25년 세월을 함께한 지킴이다. 정 팀장은 스타벅스의 한국 상륙 현장이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영어로 된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과 직원이 ‘그란데’ 사이즈를 ‘그랜드’로, ‘카라멜 마키아또’를 ‘카메라 마키아또’라고 불렀다.” 정 팀장이 1호점인 이대점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거대 글로벌 커피 브랜드의 맛을 경험한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고 한다. 정 팀장은 “생소한 메뉴와 시스템에 호기심을 느껴 방문하는 손님, 해외에서 이미 스타벅스를 경험해보고 반가워하며 방문하는 손님 등으로 매장이 가득 찼다”고 회상했다. 당시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었던 정모(45) 씨도 “커피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한번씩 앞에서 기웃거리고 가곤 했다. 유명 맛집을 찾아가듯 동기들과 약속을 잡고 학교 앞 스타벅스에 들렀다”고 말했다.


25년 전에는 고급 원두 커피의 상징


입점 초기 대중의 관심은 스타벅스가 몰고 온 고급 커피 문화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고픈 마음이 아닌, 바다 건너온 신문물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1호점 개점 이후 스타벅스는 ‘고급 커피’라는 입소문과 함께 한번쯤은 꼭 가봐야 하는 문화공간이 됐다. 하지만 가격도 ‘고급’인 것이 문제였다. 30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은 자판기 커피 20잔에 맞먹는 가격이었다. 정씨는 “당시 학생식당 점심 한 끼가 2000원대였다”며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럼에도 고급 커피를 접하고자 하는 이들은 많았다”고 했다. 실제로 1호점 개점 당시 최저시급이 1525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스타벅스 커피의 가격은 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 때문에 스타벅스는 한때 허영·사치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정씨는 “‘스타벅스 가면 된장녀’라는 말이 인터넷상에 떠돌았을 정도”라며 웃었다. ‘된장녀’는 과소비를 일삼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다.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가격뿐만이 아니었다. ‘커피’의 개념이 곧 ‘인스턴트 커피’였던 시대에 ‘원두커피’는 생소했다. 정씨는 “달달하지 않은 커피는 익숙하지 않았다. 아메리카노를 처음 먹어본 친구가 ‘이런 걸 돈 주고 먹냐’고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고 했다. 스타벅스는 이처럼 커피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바꿔놓았다. 지금은 ‘커피’를 말하면 보통 ‘원두커피’를 떠올린다. 스타벅스가 만들어낸 커피문화를 주제로 [스타벅스화]를 펴낸 유승호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는 “믹스커피뿐이었던 한국의 커피 시장에, 원두를 갈아 에스프레소로 먹는 문화를 정착시킨 것이 바로 스타벅스”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인스턴트 커피에 익숙하던 예전에는 스타벅스에서 카라멜 마키아또를 자주 먹었는데, 이제는 아메리카노나 라떼를 먹는다. 언젠가부터 달달한 커피는 입맛에 맞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커피를 판매하기보다 ‘공간을 판다’”


스타벅스의 한국 1호점인 이대점의 25년 전 모습과 스타벅스 이대R점이 된 현재 모습. 스타벅스 이대R점은 지난 7월 말 25주년을 맞이해 리뉴얼 공사를 시작했다. / 사진:스타벅스코리아
25년이 지난 지금은 스타벅스와 가격대가 비슷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도 많다. 스타벅스보다 높은 가격으로 커피를 판매하는 개인 카페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스타벅스를 매주 한 번씩은 찾는다”는 대학생 이모(24) 씨는 “요즘 개인 카페는 아메리카노를 한 잔에 6000원씩 팔기도 한다. 1만원을 훌쩍 넘는 밥값에 비교해도 스타벅스 커피가 비싸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톨사이즈 기준 4500원이다. 유 교수는 “초기 높은 가격 때문에 생긴 스타벅스의 부정적 이미지에는 효율과 절약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상이 반영됐다”며 “하지만 신촌·광화문·강남 등 중상층 계급이 있는 동네를 기반으로 정착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상층 계급의 문화가 낙수 효과로 인해 대중화되며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달리 말하면 ‘고급 이미지의 쇠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씨에게 스타벅스에 자주 가는 이유를 묻자 “만만해서”라고 답했다. 스타벅스가 어느 순간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은 카페가 됐다는 의미다. 그는 “예쁘고 맛있는 개인 카페가 많아지면서 스타벅스에 예전 같은 ‘고급 커피전문점’의 이미지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맛·서비스·분위기 등이 보통 이상일 것이라는 신뢰 때문에 스타벅스를 방문한다”고 했다.

고급 이미지의 쇠락은 ‘스타벅스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族)’이라는 단어에서도 나타난다. 요즘 MZ세대에게 스타벅스에서 4000원대 커피 한 잔은 몇 시간짜리 스터디 공간을 빌린 것과 같은 의미다. 카공족의 성지가 된 이유는 스타벅스 매장이 넓고, 충전기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가 많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마포구청역점에서 만난 대원외고 학생 유모(17) 군은 “다니는 학원이 대치동·합정동 등 여러 곳에 있는데, 학원 가기 전에 늘 주변 스타벅스에서 숙제를 하고 간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25) 씨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스타벅스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그는 “스타벅스에서 학과 학회원들과 스터디를 하기도 한다”며 “직원 눈치 보지 않고 시간 제한 없이 머물 수 있다”는 점을 스타벅스 카공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에 대해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스타벅스는 커피를 판매하기보다 문화를 공유하고 ‘공간을 판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고객이 나만의 공간으로 느끼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스타벅스의 중요한 가치”라며 “학생이 많은 지역에는 독서실 책상을 두는 등 차별화된 인테리어를 매장마다 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물가 시대 되니 애매한 가격대


서울에서 가장 최근에 개점한 스타벅스 지점인 마포구청역점의 한 테이블에서 젊은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 사진:송선교 인턴기자
고급 이미지 쇠락은 스타벅스에 숙제를 안겼다. 당장 스타벅스의 절반 가격대인 메가커피·빽다방 등이 치고 올라온 것이다. 박리다매로 수익을 내는 이들 브랜드는 시초부터 ‘저렴함’을 내세웠다. “4000원대 스타벅스 커피를 구매할 바에는 2000원대 메가커피를 간다.” 성북구 안암동 대학가에서 만난 대학원생 김모(25) 씨의 말이다. “맛에 민감하지 않아서 스타벅스와 메가커피 맛 차이를 잘 못 느끼겠다. 스타벅스는 공부할 때 간다”고 했다. MZ가 바라보는 스타벅스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다소 애매한 가격’이 스타벅스의 콤플렉스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허태윤 한신대 IT 영상콘텐트학과 교수는 “물가가 많이 오른 상황 속에서 저가형 커피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스타벅스는 더 이상 특별한 브랜드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메가커피는 전국에 3000개의 지점을 냈다. 국내 1호점을 지난 2015년에 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빠른 성장세다. 스타벅스는 그 절반인 1900여 점이다.

물론 스타벅스는 국내 커피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저가형 커피의 상승세가 가팔라 안심할 수는 없다. 최근 스타벅스의 그란데·벤티 사이즈의 음료 가격 인상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안암동에서 만난 김씨는 “앞으론 메가커피로 갈 것 같다”며 “같은 사이즈 아메리카노 기준 가격이 무려 3배”라고 토로했다. 중국에서도 한화 약 1800원 수준의 저가형 커피 브랜드 루이싱 커피가 스타벅스의 매출액을 뛰어넘은 바 있다. 허 교수는 “스타벅스는 현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소비자가 다른 브랜드를 알고도 스타벅스를 찾아갈 이유를 더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리저브 매장으로 고급 이미지 되살려


스타벅스는 지난 2014년부터 일반 매장과 차별화된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을 개점했다. 리저브점에서는 전문 바리스타가 만드는 리저브 전용 음료를 구매할 수 있다. / 사진:스타벅스코리아
스타벅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25년 전 ‘최고급 이미지’ 유지 전략과 현재 MZ 사이에 퍼진 ‘친근한 이미지’를 동시에 가져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스타벅스는 2014년부터 기존 매장과 차별화된 고급형 특수 매장인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을 개점했다. 리저브 매장의 특징은 고급 이미지다. 8월 7일 한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을 찾았다. 스타벅스 합정폴리스R점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55) 씨는 리저브 매장만의 특징인 바리스타 바로 앞 바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는 “인근 100m 이내에 스타벅스 일반 매장이 3곳이나 있다”면서도 “일부러 이곳(리저브)을 찾았다”고 했다. 이어 “평소 스타벅스는 리저브점만 온다”며 “리저브 에스프레소가 내가 아는 커피 중 가장 맛있는 편이기도 하고, 스타벅스의 고급 이미지가 더 강해진 기분이라 좋다”고 했다.

또 다른 리저브 매장인 스타벅스 별다방점을 방문했다. 이 매장은 스타벅스코리아 본사가 입주한 건물 1층에 있다. 바 테이블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바 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모(32) 씨는 “어머니가 맛있는 커피를 좋아해서 이곳으로 왔다. 비싸긴 하지만 여타 카페들보다 리저브의 커피와 음식이 훨씬 맛있다”고 말했다. 리저브 전용 아메리카노는 톨사이즈 기준 6000원이다. 일부 메뉴는 1만원이 넘는다.

이에 더해 스타벅스는 손쉬운 ‘선물용 브랜드’ 이미지도 구축했다. 카카오톡으로 보낼 수 있는 부담 없는 선물로 자리잡은 것이다. 대학생 김모(25) 씨에게 ‘스타벅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묻자 “설문조사를 하거나 생일이 되면 받는 기프티콘”이라며 “기프티콘이 없으면 저가형 커피를 마시면 되기 때문에 굳이 스타벅스를 먹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허 교수는 “스타벅스를 선물로서 주고 받는 일이 많다는 것 자체가 대중이 스타벅스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선물 받는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제값을 지불하는 것이 손해라고 느끼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매장에서 대화를 나눠본 손님들 가운데 기프티콘 없이 제값을 주고 결제한 사람은 절반도 채 안 됐다. 대원외고 학생 유군은 “생일이면 스타벅스 기프티콘이 쌓이기 때문에 늘 무료로 먹는 기분이 든다”며 “기프티콘을 다 쓰면 스타벅스를 덜 찾게 되고, 찾게 되더라도 돈이 아까운 기분”이라고 말했다.

- 글·사진 송선교 월간중앙 인턴기자 ddoong04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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