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하한선은 없어도 상한선은 있다
[하신아]
이 원고를 마감해야 하는 날로부터 이미 6일이 지났다. 사실, 청탁 주신 담당자님께 "못 쓰겠다"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글을 쓰고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노동자다. 해가 갈수록 이 못 쓰겠다는 상태가 오는 간격이 짧아지고, 상태의 심각도는 깊어진다. 요즈음 나는 나 자신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느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여러 일을 겪었기에 내가 망가졌다는 느낌은 사는 동안 여러 번 받았지만, 이런 것과는 결이 달랐다. 우울증이나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냥 다 타버렸다는 느낌이 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데뷔한 이후로 계속,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때론 100시간을 일했다. 재작년부터인가 무엇을 자꾸 잊기 시작했다. 손목과 어깨, 허리 와 목에 돌아가며 탈이 났다. 입가의 헤르페스가 번져서 눈까지 침범한 적도 있었다. 20대 중반까지 했던 일이지만 사업이 잘 되면서 그만두었던 일이고, 너무나 좋아하기에 여러 가지를 포기하며 다시 시작한 일이었다. 유령작가 생활을 해보았기에, 이번에 다시 데뷔하면 무엇을 하든 내가 쓴 작품의 저작권 일체를 넘기는 '매절'만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매절' 일을 하고 있었다.
▲ 웹툰 작가에게 최저임금은 ‘공기’라고 생각한다는 하신아 위원장 |
ⓒ 민주노총유튜브 |
아, 여기까지 쓰니까 조금 알 것 같다. 나에게 최저임금이란 무엇인지. 그러니까 산소통 같은 것이다. 고산병에 걸리지 않게 해 주는 공기 같은 것이다. 누구나 뇌에 손상이 오지 않기 위해서는 마셔야 하는. 그런데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를 올랐으니 무슨 훈련된 알파인 등반가도 아닌데 죽을 것 같은 게 당연하다. 생각해보니 동료 여럿이 조용히 죽었는데, 그래서 죽은 것 같다. 판단력을 상실하고 멍청하게 일을 늘려가며 혹은 다른 일로 충당해가면서까지 이 일을 고집하다가 얼어 죽은 것이다. 산소가 없었기 때문인데 산소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 한 것이다.
나는 도급제 노동자다. 그러니까 몇 시간을 일하든 한 회차의 원고료를 받았다. 원고료? 고료라고 부르지도 않게 된 지도 십 년이다. 매절이 아닌 이상 나는 데뷔작 바로 다음부터 10년간 늘 MG를 받았다(데뷔작은 회차당 20만 원을 받았다). MG는 나중에 수익이 안 나면 받은 만큼의 몇 배 이상을 갚아줘야 하는 돈이다. 노동의 대가로 간주돼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지만 어쨌든 원고료는 아니다. 왜 몇 배로 갚아야 하냐면... 설명하기가 너무 힘들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 작품을 만드는 동안 내 작품의 이후 수익을 미리, 물론 원고는 받은 다음이지만 수익이 나기 전에 미리, 준 거니까. 분배하기로 한 비율만큼 돈이 더 벌려야 하는데, 그만큼 벌리지 않으면 "MG를 못 채웠다"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일종의 빚이다. 어떤 MG는 연재 완결 후 3년 정도 되는 계약 기간 동안 청산되지 않으면 갚을 의무가 없는데 계약에 따라 어떤 것은 계약 기간을 자동으로 연장하면서 갚아야 한다. 설명이 길어졌다.
이제 A4 2페이지에 접어들었으니 읽는 분들이 이해가 안 돼도 어쩔 수 없다. 최저임금 이슈로 다시 돌아가자. 사실 MG 시스템은 나도 아직 이해를 못 하겠다. 어쩌다가 이런 기상천외한 시스템이 자리 잡았는지. 어쨌든 그 MG는 나에겐 남들의 월급같이 여겨진다. 최소한 용역의 대가다. 도급제 용역의 대가.
나는 쓴다 글을, 그린다 콘티를. 그러면 다음 달에 약속된 MG가 입고한 회차만큼 정산되어 나온다. 콘티는 잘하면 한 회에 3~4시간이면 뽑을 수도 있다. 안 되면 일주일도 넘게 걸린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이면 해냈다. 3년 차, 4년 차까지는 그랬다. 점점 느려진다. 뭐 그렇겠지, 몸도 마음도 점점 망가지니까. 망가지는 것도 망가지는 거지만, 창작 노동의 특성상 눈은 점점 높아지니 작업량을 소화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 내 콘티의 질은 계속 높아졌는데... 모든 직업에서 숙련자는 돈을 더 받는다. 하지만 이 일에는 임금의 하한선은 없어도 상한선은 있다. 제작비의 한계랄까. 콘티 작가에게 아직 회차당 50만 원을 주는 회사는 보지 못했다. 매절도 45만 원 부르더라. 현재 나는 회차당 MG 20만 원을 받는다. 한 달을 정상적으로 마감하면 80만 원을 벌 수 있다. 그러면 회차당 작업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내가 2022년부터 구글 캘린더에 일한 시간을 기록해 온 평균으로 보면 한 회차당 작업시간은 32시간 정도 걸린다. 2013년 데뷔해서 2022년이니 9년 차 경력자의 실력으로 평균 32시간이다. 내가 제시받았던 최고가는 매절 조건에 회차당 40만 원이었고 실제로 받았던 최고가는 매절 조건에 회차당 30만 원이었다. 보통 20만 원 전후를 오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낫겠다는 생각이 왜 그렇게 많이 드나 했더니 그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이 글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나는 이번 연재를 완결하면 웹툰을 더는 안 하고 싶다. 그래서 비슷한 스토리 일을 할 수 있는 온갖 길을 다 모색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정말 식당 주방 일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사실 청소 노동을 하려고 했는데 이건 정말 힘들어서 포기했다. 주방은 그래도 해 봤던 일이라서... 아니 이게 아니고, 어쨌든 웹툰을 더는 안 하고 싶다. 그런데 배운 게 도적질이라고 당장 돈이 없으면 들어오는 일은 웹툰이기 때문에 일을 받게 된다. 안 한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한 달 전인가 또 받을 뻔했다. 그 굴레 속에 또 들어가는 셈인데도. 산소가 부족해서 판단력이 저하됐나 보다. 정말 이제 그만하고 싶다. 정말 이제 그만하고 싶다. 정말 이제 그만하고 싶다. 모르겠다. 최저임금이 뭐고 노동자가 뭔지. 난 노조 위원장인데 모르겠다. 지쳤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내 작업시간을 최저임금에 준하여 환산해서 적정 단가를 받았다면 내 몸과 마음이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까? 모르겠다. 나는 열정에 넘쳤다. 나는 이 일이 너무나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줄 알았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원래 그런 일인 줄 알았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의 대상이 된다거나 실업급여를 받는다거나 하는 것을. 중세시대 불가촉천민이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처럼. 그땐 벌써 서른세 살이었고 난 사회 경험도 많았는데 여기, 웹툰계에 들어오고선 왜 바보가 되었을까. 왜?
이 바닥의 모두가 나처럼 바보였던 걸까. 다들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던데. 모르겠다. 우리는 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가. 자기 작품을 해서? 자기 작품을 하면 못 받아야 하나? 백 보 양보해서 그럼 웹소설 원작의 코미컬라이징(comicalizing, 웹소설, 드라마, 영화 등을 웹툰화 하는 것)을 하는 작가들은 전부 적정한 대가를 받고 있는 건가? 타인의 어시스턴트를 하는 작가들은 모두 최저임금 이상은 받고 있는 건가? 글이 끝맺어지지 않는다. 나에게 최저임금이란 무엇인가. 정말 공기인가? 한 번도 마셔보질 못했는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비정규노동>에도 실립니다.글쓴이는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8호 9, 10월호 '특집[최저임금제도]'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