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샷하기 전에 향불을 피운다고?[정현권의 감성골프]

2024. 8. 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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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홀 티샷을 대기하는 동안 한 동반자가 사라져 궁금했는데 곧 돌아왔다.

앞 팀이 세컨드 샷을 하는 사이에 티잉 구역(Teeing area)에서 보이지 않게 순식간에 담배를 피우고 온 것 같았다. 동반자들 시선과 후각을 전혀 자극하지 않았다.

골프 진행에도 차질이 없었다. 평소 그의 성격과 매너를 짚어보면 아마 담배 꽁초도 따로 모아서 잘 처리했을 것이다.

얼마전 담배 꽁초와 부러진 티들이 널부러진 티잉 구역에 올라 캐디와 함께 모두 제거하고 경기를 진행했다. 앞 팀 소행인지 아직도 연기가 허공에 배어 더운 날씨에 숨이 팍팍 막혔다.

티잉 구역은 히말라야를 오르기 전 전의를 다지는 베이스 캠프와 같은 곳이다. 페어웨이를 바라보고 전략을 구상하며 텐션을 끌어올린다.

첫 홀 티잉 구역에선 그 날 가장 긴장되고 중간 홀 티잉 구역은 패자에겐 나쁜 흐름을 차단하고 승자로선 기세를 이어가는 정류장이다. 골퍼에겐 엄숙하고 정결한 전진 기지이다.

티잉 구역과 그린(Green)이 골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관리되는 이유이다. 이런 성지가 담배꽁초 같은 쓰레기로 훼손되면 매너 이전에 골프에 대한 모독이다.

골프장들은 금연을 권장하지만 이용객들에게 강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동반자와 캐디, 그리고 다른 팀에 영향을 주면 곤란하다.

앞서 말한 지인의 경우 동반자들에게 냄새를 피우지 않고 경기 진행에도 문제 없는 빠른 몸놀림 때문에 아무런 시비 거리도 안된다. 담배 연기와 꽁초를 남기고 사라진 앞 팀과 대조된다.

티샷 하는 플레이어 바로 뒤에서 한 동반자가 담배를 입에 물고 연습스윙을 하는 장면을 본 적도 있다. 동반자 진행중 움직임, 흡연, 흡연+연습스윙을 합해 골프 매너를 삼중 위반하는 행위이다. 시가를 입에 문 벤 호건, 잭 니클라우스의 멋진 모습도 옛말이다.

간혹 순서를 맞아 피다 만 담배를 잔디 위에 올려놓고 티샷을 하는 골퍼가 있다. 향불을 피운다고 말하는데 녹색 자연을 온통 냄새로 진동시킨다.

필자는 동반자 흡연에 별로 인색한 편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한계에 봉착한다. 푹푹 찌는 날씨에 담배 연기까지 가세하면 어질어질하다.

당연히 진행에도 영향을 준다. 티를 꽂으려는 순간 눈에 꽂히는 담배 꽁초가 시선을 어지럽힌다. 이게 무슨 매너인가 싶어 몰입을 방해한다.

클럽을 휘두르고 나서 담배를 물고 걸어가거나 이동하는 카트에서 흡연하면 정말 괴롭다. 공기 좋고 아름다운 청정구역에서 흡연은 발렌타인 30년으로 폭탄주를 마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골프코스에서 금연을 강제하지는 않지만 국내에선 따로 흡연구역을 두기도 한다. 미국은 골프장을 포함해 실외 공공장소 대부분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해 놓는다.

한국프로골프(KPGA) 규정에 따르면 흡연을 막지는 않는다. 다만 많은 갤러리와 시청자가 지켜보는 방송에 흡연 장면이 노출되면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미디어 대응 가이드가 있다.

이에 따라 금연구역에서 흡연 장면이 방송에 노출되면 투어 레벨에 따라 각각 30만원, 20만원, 10만원을 벌금으로 문다. 벌금 100만원을 부과한다는 징계 양형 규정도 있다.

세계 여자 골프 랭킹 11위 찰리 헐(28)이 올해 US여자오픈에서 담배를 물고 갤러리에게 사인하는 장면이 화제였다. 담배를 물고 연습하러 가는데 느닷없는 사인 요청에 생각없이 해줬는데 소문으로 번졌다고 해명했다.

헐은 “어릴 때 담배 피는 아버지가 싫었는데 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담배를 피운다”며 “곧 끊을 건데 언제냐가 문제”라고 토로했다. 파리올림픽에선 골프장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파3 골프장에선 간혹 앞 팀이 남기고 간 티 잔해가 꽁초와 뒤섞여 쓰레기 하치장을 방불케 한다. 그대로 꽂혀 있거나 머리 부문이 잘려 나간 티, 시체처럼 나뒹구는 티로 인해 금방 끝낸 전쟁터 같다.

빨강 노랑 파랑 주황 하양 검정 티가 여기 저기 꼿꼿이 서서 나 좀 뽑아가라며 눈을 부릅뜨고 있다. 클럽을 휘두르고 나서 날아가는 공만 쳐다보지 말고 티를 수거하는 작은 수고로움이 아쉽다.

이런 티잉 구역 곳곳에 웅덩이처럼 패인 디벗 자국들이 더해지면 정작 내 티를 꽂을 자리조차 찾기 힘들다. 연습스윙으로 동반자가 또다른 디벗 자국까지 내면 맘이 편치 않다.

샷을 하고 디벗 자국을 내는 건 어쩔 수 없다. 매너에 어긋나지 아니고 오히려 프로 선수는 찍어치기(다운 블로)로 디벗 자국을 낸다.

하지만 연습스윙 도중 습관적으로 디벗을 내면 곤란하다. 정작 본 스윙에서는 디벗을 내지 않거나 오히려 토핑(Topping)을 하면 이 사람이 잔디를 파헤칠 목적으로 왔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훼손된 잔디 때문에 인조 매트나 멍석 위에 티 꽂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흡연도 굳이 말릴 생각은 없지만 동반자를 배려하면 좋겠다.

“금연만큼 쉬운 것도 없다. 난 수백 번도 넘게 금연해 봤으니까.” (마크 트웨인)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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