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실리콘밸리 부를 설계한 페이팔 마피아
사회성 없었던 일론 머스크…테슬라·스페이스X 설립 성공
틸은 페이스북 첫 투자자로…레브친은 어펌 홀딩스 창업
"워낙 사회성이 없다 보니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냥 로비에 서 있기만 했죠. 정말 창피했어요. 그냥 거기에 서서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겁이 나서 그냥 나와버렸어요."
발언의 주인공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머스크는 1995년 인터넷 브라우저로 인기를 끌었던 넷스케이프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 그 때 머스크는 대학원에 진학할 지, 창업을 할 지 고민하던 중 이도저도 아닌 취업을 시도했다. 머스크는 취업이 대학원 진학과 창업 사이 중도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넷스케이프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머스크는 그 이유가 궁금했고 어떤 이야기든 들어보려고 호기롭게 넷스케이프 본사를 찾아가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현재 세계 최고 부자로 때로 정치적 논쟁에도 거침없이 뛰어드는 머스크지만 지금과 달리 젊은 시절에는 꽤 소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의 머스크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어눌한 선택과 결정이 이어지지만 당시에도 머스크는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당시 머스크는 가까운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의 리스트를 작성했는데 그 리스트는 인터넷, 우주탐사, 지속가능한 에너지였다. 이미 테슬라 모터스와 스페이스X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부의 설계자들(원제: The Founders)’은 이처럼 머스크를 비롯해 오늘날 미국 실리콘밸리를 주무르는 거물들의 젊은날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글쓴이 지미 소니가 언급하는 실리콘밸리 거물들은 머스크, 피터 틸, 맥스 레브친, 리드 호프먼 등이다. 모두 페이팔 마피아라 불리는 이들이다.
미국 경제매체 포천은 2007년 페이팔 출신 거물 13명을 모아 이탈리아 식당에서 단체 사진을 찍은 뒤 페이팔 마피아라는 제목으로 커버 스토리를 썼다. 당시 포천지 표지 사진을 보면 맨 앞 테이블에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틸과 레브친이 앉아있다. 테이블 위에는 술과 도박판에서 사용되는 칩이 놓여있고 레브친은 손에 카드를 들고 갱단의 분위기를 냈다. 저 멀리 맨 뒤에는 유튜브의 공동 창업자 자레드 카림과 옐프를 창업한 제레미 스토펠먼이 시거를 든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소니는 ‘부의 설계자들’에서 페이팔이 설립되고 2002년 이베이에 매각되기까지의 역사를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실리콘밸리를 주름잡는 거물로 성장한 페이팔 출신 인물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오늘날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는 거대한 부의 법칙을 세운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포천지의 커비 사진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머스크는 틸, 레브친과 함께 페이팔을 공동 창업했다. 카림과 함께 유튜브를 공동 창업한 스티브 첸과 채드 헐리도 모두 페이팔 출신이다.
레브친은 1975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태어났다. 레브친이 열한 살 때인 1986년 그가 사는 곳 근처인 체르노빌에서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레브친의 부모는 1991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레브친은 스탠퍼드대에서 우연히 틸의 금융 강의를 듣고 강렬한 인상을 받고 틸과 연을 맺는다. 틸은 1996년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돈을 모아 틸 캐피털이라는 헤지펀드를 출범했다. 틸 캐피털은 1998년 12월 레브친의 회사에 운영자금으로 10만달러를 대출해준다. 레브친이 1998년 설립한 모바일 기기 스타트업은 필드링크였다. 레브친은 최고기술책임자(CTO) 역할을 맡고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다른 이가 맡아주기를 바랐는데 후에 틸이 CEO로 합류한다. 필드링크는 2000년 콘피니로 사명을 바꿨고 콘피니티가 머스크가 설립한 인터넷 은행 엑스닷컴(X.com)과 합병해 페이팔이 탄생한다. 페이팔은 2002년 15억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아 이베이에 인수됐고 페이팔 마피아들은 돈방석에 앉는다. 페이팔 마피아들은 젊은 나이에 거머쥔 부를 바탕으로 안락한 삶을 누리기보다 도전을 이어갔다. 머스크는 페이팔 지분 매각 자금으로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설립했다. 틸은 팔란티어와 파운더스펀드를 설립했고, 페이스북의 최초 투자자가 됐다. 틸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액을 후원하는 등 현재 공화당의 거물 후원자로 정치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레브친은 핀테크 업체 어펌 홀딩스를 창업하고 페이팔 동료였던 스토펠먼이 창업한 옐프에 투자했다.
책은 70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 글쓴이 소니는 6년에 걸쳐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내부 문건 자료를 살펴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머스크가 자신의 첫 스타트업을 매각한 뒤 값비싼 맥라렌 F1을 구매했고 틸을 태워주다 사고로 둘이 같이 죽을뻔 했다는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소니는 서문에서 페이팔 마피아에 대한 엇갈린 시각이 존재한다고 소개한다. 이들을 영웅으로 보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오늘날 빅테크 기업들의 폐해를 대변하는 세력으로 처단해야 할 이교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것이다. 소니는 에필로그에서 페이팔 마피아들의 이야기에서 큰 감흥을 얻는 두 살인 범죄자의 사연을 소개하며 영웅으로 보는 시선을 더 옹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부의 설계자들 | 지미 소니 지음 | 박세연·임상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672쪽 | 3만6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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