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선생님 앞에서만 손가락 떠는 학생, 뜻밖의 이유
[김성호 기자]
정부와 지자체가 국내 영화제 지원 예산을 크게 줄이며 그 생존 가능성조차 위협받았던 한 해다.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처럼 세계 속에서 높은 위상을 가진 영화제, 또 무주산골영화제와 정동진독립영화제, 반짝다큐페스티발 같이 규모는 작지만 저만의 색깔을 지닌 영화제들이 무사히 개최되며 영화제 달력이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개막을 앞둔 가운데, 국내 최고 권위의 다큐축제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연달아 개최될 예정이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포스터 |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목규리의 <손가락>은 올해로 26회째를 맞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제법 어울리는 작품이다. '지금 여기, 한국영화' 섹션으로 소개된 이 영화는 다른 단편 두 편과 함께 '지금 여기, 한국영화 단편선 1'로 묶여 상영됐다. 영화제는 해당 섹션에 대하여 '한국에서 제작된 여성감독의 작품, 여성 주제의 영화들을 상영하고 동시대의 담론과 스타일을 조명하는 섹션'이라며 '한국영화가 주목하며 작품에 담아내고자 하는 소재와 주제를 만나고, 창작자들이 여성의 현실과 시선을 보여 주기 위해 어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지 마주할 수 있는 장'이라고 소개했다.
2023년 제작된 21분짜리 단편영화는 연기를 업으로 삼은 스승과 업으로 삼으려는 제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연기학원 강사로 일하는 은정(목규리 분)이 제자인 푸름(강채윤 분)과 맺는 미묘한 관계의 양상이 이 단편이 주목하는 바다. 스승과 제자이며,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동료이자, 같은 여성으로 갖는 복합적인 관계성이 실제로 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두 감독과 배우의 현실감 있는 표현을 통해 호소력을 보인다.
은정은 TV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다. 배우라고는 하지만 아직 주연급을 맡을 만큼 대단한 인지도를 갖지는 못한 모양, 주어진 배역에 최선을 다하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연습에 매진한다. 한 장면을 위하여 대사며 표정을 다잡는 은정의 열정이 대단한데, 한편으론 그와 같은 태도가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 손가락 스틸컷 |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은정의 수업은 학생들이 돌아가며 준비한 연기를 하고, 은정이 이를 평가하고 지적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학생마다 부족한 점이 보이면 은정은 깐깐한 태도로 약점을 집어 그를 보완하길 요구한다. 입시를 위한 연기란 것이 세부적인 항목을 나누어 그를 근거로 평가할 수밖에 없으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약점을 바로잡아 점수를 깎이는 일을 막아야 합격률을 높일 수 있으니까. 어디까지나 은정은 입시학원의 강사가 아닌가 말이다.
다가오는 입시를 위해 연기연습에 매진하는 학생들 사이로 유독 한 학생이 도드라진다. 푸름이다. 다른 학생들은 일찌감치 착석한 가운데 늦게 들어온 푸름이다. 이유를 묻는 은정에게 푸름은 '날이 좋아서'라고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한다. 그 뻔뻔함에 말을 잃은 은정. MZ, MZ 한다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는가.
푸름의 차례가 돌아오고 은정은 그녀의 연기를 집중해 지켜본다. 그런데 어딘지 요상한 모양, 연기하는 푸름의 왼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다. 손을 떠는 모양이 어색하여 도무지 연기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은정은 푸름의 손 떨림을 지적하고, 푸름은 한두 번 지적을 받는 것이 아닌 양 대수롭지 않게 대응한다.
▲ 손가락 스틸컷 |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영화는 제 연기와 학원에서의 교습을 오가는 은정의 일상을 비춘다. 더 잘하려는 의지는 때로 부담이 되고, 그 부담이 결과를 망치기도 한다. 은정 또한 제 일상에선 부족한 점 많은 이일 뿐이다. 더 잘 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우리네 보통의 직업인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은정이 우연히 제가 없는 상황에서 손을 떨지 않는 푸름을 보고, 그녀에게 새로운 교수법을 시전하는 상황이 <손가락>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선생이며 학생이던 둘의 관계가 배우 대 배우로, 또 인간과 인간으로 뒤바뀌는 장면이 대체로 평이한 영화 가운데서 인상적인 대목을 이룬다.
영화가 끝난 뒤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목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녀는 "영화를 구상하고 생각한 건 오래 전"이라며 "연기를 예고, 그러니까 17살부터 하며 피드백을 많이 받았는데 결국 필요한 건 날카로운 말이 아니라 응원밖에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 손가락 스틸컷 |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말하자면 <손가락>은 오해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은정이 저와는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또 삶을 대하는 푸름에게 더 효과적으로 다가서기까지의 작품이 이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같은 배우, 또 여성이라고 해서 같을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무엇보다 이해하려는 마음 없이는 쉬이 오해하게 된다는 걸 이 영화가 일깨운다. 정말이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살아가는가 말이다.
두 사람이 함께 연기를 맞춘 뒤 저들의 교감을 표현하는 게 이 영화의 결말이다. 은정이 카메라 앵글 바깥으로 사라지고 영상이 암전되며 자막이 올라온다. 이 장면에 대해 목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은정이라는 캐릭터는 앵글 안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큰 캐릭터"라며 "마지막에 앵글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이다. 제가 가르치는 이를 통하여 스스로가 배우는 이야기, 영화며 연기, 나아가 인생의 본질이 상호작용임을 깨닫게 하는 인식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일찍이 프랑스 작가 루이 아라공이 교육과 관해 멋진 글을 남겼던 것도 같다. '가르친다는 건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지적이 아닌 희망의 제시, 그보다 나은 교육을 나는 정말이지 전혀 알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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