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한 명 등교 소식에 단톡방이 난리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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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기자]
나는 마을의 작은 도서관에서 활동가로 3년째 일하고 있다. 작은 도서관은 말 그대로 규모는 작지만 하는 일은 많은 곳이다. 그 중 오늘은 우리 도서관에서 참여하고 있는 '교육 후견인제' 사업에서 일어난 사례 한 가지를 공유할까 한다(서울시교육청 에서 도입한 이 제도는, 복지 사각지대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도 지원받게 돕는 제도다).
26일 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작은 변화이지만 아마 모두가 같이 기뻐해 주실 듯해 동의를 얻어 공개하게 되었다.
아침을 깨운 카톡... "누가 민철이 좀 깨워주실 분 없나요"
며칠 전 아침, 교육 후견인제 단톡방에 교육복지센터 소속 보라쌤(가명)이 급한 듯 메시지를 띄웠다. '누구, 민철이(가명) 집에 가셔서 민철이 좀 깨워주실 수 있는 분 있나요?'란 내용이었다. 이곳 톡방에는 센터 담당자와 지역공동체 멘토 선생님들이 함께 하고 있다.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몇 시까지 가면 되나요?'라고 답장했다. 답을 받고 차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었다. 지금부터 26분이 걸린다고 한다. 출근 시간이라 분명 시간이 더 걸릴 거라는 각오를 하며 출발했다.
교육지원청 산하인 교육복지센터는 지역의 유-초-중-고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을 관리 지원하는 곳으로, 학생 한 명당 월 10만원 정도의 후원금이 나오는데 이는 아이들의 식사, 물품, 의료비로 쓰인다. 센터는 또 지역공동체 즉 키움센터, 아동지역센터, 작은 도서관 등에 협조를 요청해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민철이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 도서관과 인연을 맺게 된 초등학생이다. 교육복지센터가 학교와 연계하여 지역 내 유·초·중·고 학생들 중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선정했다.
▲ 민철이(가명)는 센터에서 연결해 우리 작은 도서관에서 만난 멘토링 학생 중 한 명이다.(자료사진) |
ⓒ abigail4477 on Unsplash |
아이는 무분별한 인터넷 정보에 노출되었고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그런 민철이는 센터에서 특히 관심과 애정을 쏟는 아이 중 하나이다. 이곳저곳 돌봄 기관들에 보내봤지만, 매번 뛰쳐나오고 어디에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작년에 우리 도서관 금요 축구 놀이터 시간에도 민철이를 몇 번 데리고 왔지만, 아이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밥이라도 챙겨 먹이자는 마음에 우리가 직접 도시락을 싸서 준 적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마치 낚시꾼이 던진 미끼를 알아챈 물고기마냥,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기 일쑤였다.
안타까웠지만, 민철이는 주로 어른들, 성인들을 거의 다 불신하고 다른 누구에게도 마음을 쉽게 내주는 법이 없었다. 가정 형편상 아버지가 혼자 키우는 한부모 가정인데, 아버지가 늘 일이 바쁘다 보니 혼자 방치된 시간이 많아 보였다.
아직은 초등학생일 뿐인 아이
하지만 아이가 거부한다고 해서 관심을 끊어버릴 수는 없다. 식사, 등교 거부, 게임중독, 방치 등 어린아이인 민철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는 초등학생, 아직은 가능성이 충분할 뿐더러 보호 받는 게 마땅한 나이였다.
학교 담임선생님도 애를 태우기는 마찬가지였다. 등교만 제때 해도 점심은 급식으로 해결할 수 있고, 최소한 학교 머무는 동안에라도 아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교 일수가 졸업과도 연관된 문제이므로 학교에서는 아이의 등교 문제에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 민철이가 오늘 2학기 첫 등교 날을 맞았다. 보라쌤은 타지역으로 워크숍을 가 있는 와중에도 민철의 첫 등교를 위해 모닝콜을 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다. 분명 어제 밤을 새워 게임을 했을 것이고 아침잠에 빠져 있는 관계로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는 민철(가명)에게 보라쌤은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자료사진) |
ⓒ myabsley on Unsplash |
보라쌤은 몇 개월 동안 지극정성으로 민철에게 다가가려고 애를 썼다. 민철은 그러나 여전히 투박한 말투로 보라쌤의 말을 삼켜버리고, 전화 받기를 거부했단다. 집 안의 문을 걸어 잠그고 아예 열어주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민철이가 투박한 사기 그릇 같다면, 보라쌤은 마치 거친 뚝배기 같다고나 해야할까. 그러니 사기 그릇이 뚝배기를 어찌 당해낼 수 있으랴. 그간 보라쌤의 끈질긴 구애가, 알게 모르게 민철의 마음을 조금씩 달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결국 36분 정도 걸려서 민철이 집 근처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문자 벨이 경쾌하게 울렸다. 보라쌤이었다.
'민철이, 학교에 도착했다고 담임선생님한테서 문자 받았어요.'
교육복지센터와 도서관 맨토 선생님들이 함께하는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와~너무 기뻐요", "민철의 2학기 무사 등교를 응원합니다" 등등 여기저기서 환호를 보냈다.
▲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등교를 한 민철, 이번 일로 자신감과 자기효능감이 한 뼘 자랐길 바란다. |
ⓒ aaronburden on Unsplash |
민철이 직접 가방을 챙겨 학교엘 다 가다니. 아침부터 급히 차를 몰고 간 일이 헛수고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직접 민철을 깨워 학교를 보낸 것보다 열 배 백 배는 더 기뻤다. 자칫 성급히 개입해 아이 혼자 할 수 있는 기회를 뺏을 뻔한 건 아니었나 아찔하기까지 했다.
아이의 작은 '홀로서기 몸짓'이 차후 커다란 파도로 이는 그날까지 우리는 간절히 염원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건 몰라줘도 괜찮다. 단지, 이 넓은 세상에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민철이가 마음으로 느끼길 바랄 뿐이다.
마음을 이해해 주고 보듬어 주는 일, 진심을 내보이는 일에 아이들은 결국 배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보답 받는다.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이 땅의 모든 아이는 보호 받고 사랑 받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이 자리를 빌어 작은 도서관에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 마을 공동체를 위해 함께 해 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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