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전술에서 유래한 축구 선수의 셔츠 번호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김식 2024. 8. 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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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스포츠 선수들의 셔츠에는 번호가 표시되어 있다. 이를 지칭하는 이름도 꽤 다양해, 셔츠 번호, 저지(jersey) 번호, 스쿼드(squad) 번호, 유니폼 번호 등으로 불린다. 번호가 붙게 된 계기는 유사한 셔츠를 입은 선수들을 쉽게 구분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식별하기 위해 설계된 번호는 정서적인 애착을 거쳐 자부심과 명예의 원천이 되었고 때로는 미신과 연관되었다. 일부 스포츠에서는 번호로 선수의 포지션을 나타냈다. 축구가 대표적인 예다.

아울러 스포츠 산업의 발전과 함께 어떤 선수에게는 번호가 자체 브랜드로 발전했다. 포르투갈의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는 그의 이름 이니셜과 셔츠 번호를 따서 CR7을 만들었다.

호날두는 CR7이라는 이름으로 의류, 향수, 신발, 안경, 호텔 등 광범위한 제품을 아우르는 강력한 개인 브랜드를 구축했다. 사진은 CR7이 론칭한 향수(왼쪽)와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 있는 호텔 체인점의 모습. 사진=호날두 인스타그램
 
잉글랜드 축구의 공식 경기에서 셔츠 번호의 첫 등장은 1933년 FA컵 결승전 에버튼과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의 대결에서 나왔다. 관중, 심판, 미디어 담당자가 선수들을 잘 식별할 수 있도록 에버튼은 1~11번, 맨시티는 12~22번을 셔츠에 새겼다. 당시 에버튼에는 딕시 딘(Dixie Dean, 딘은 1927~28시즌 1부 리그에서 60골을 넣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이라는 전설적인 공격수가 있었는데, 9번이 그에게 배정됐다. 이후 잉글랜드에서 9번은 골잡이인 센터 포워드를 상징하게 된다.

1933 FA컵 결승전에서 에버튼은 맨시티를 3-0으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사진은 9번을 단 에버튼의 캡틴 딕시 딘이 요크 공작부인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는 모습. 공작부인 옆에 서 있는 요크 공작(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은 1936년 조지 6세가 된다. 사진=에버튼 홈페이지

1980년대와 90년대의 3-5-2와 4-4-2, 2000년대에 인기를 얻은 4-2-3-1대신 100여 년 전 축구에서는 2-3-5가 대세였다. 축구의 전술 역사상 최초의 포메이션이었던 2-3-5는 선수들 위치의 모양을 따서 피라미드라고 불렸다. 선수들의 포지션을 나타내는 셔츠 번호도 2-3-5 전술에서 영향을 받았다. 골키퍼는 1번을 달고,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순으로 낮은 번호에서 높은 번호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또한 교체 선수는 더 큰 번호를 달았다.


피라미드 포메이션에서 각 포지션의 선수들이 부여받은 셔츠 번호. 후에 2, 3번은 옆으로 더 넓게 수비하는 윙백이 되고, 5, 6번은 중앙수비수가 된다. 4번은 수비형 미드필더, 8번은 중앙 미드필더, 그리고 10번은 공격형 미드필더/플레이 메이커로 자리매김한다. 또한 9번은 스트라이커, 7번과 11번은 각각 오른쪽, 왼쪽 윙어가 된다. 참고로 1965년 잉글랜드에서 선수 교체가 도입되었을 때, 첫 번째 교체 선수는 일반적으로 12번을 달았다. 두 번째 교체 선수가 불길한 숫자 13번이 싫을 경우에는 14번을 다는 것도 허용됐다고 한다. 사진=위키피디아
 
1993년 잉글랜드축구협회(The FA)는 선발 라인업에 1~11번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정된 스쿼드 넘버로 전환했다. 이러한 스쿼드 번호는 포지션에 따라 부여될 때도 있고, 선수 이름의 알파벳 순서나 선수가 선호하는 번호로 정해질 때도 있다.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은 선수들이 1~99번 사이의 번호를 착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보통 숫자가 큰 번호를 단 선수는 신인이거나 팀 내 입지가 확실치 않은 경우다. 또한 스쿼드 번호가 높은 숫자에서 낮은 숫자로 변경될 경우는 해당 선수가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는 데뷔 시즌인 1998~99시즌 28번을 달았다가, 2년 후 17번으로 바뀌었다. 2004~05시즌 에밀 헤스키가 리버풀을 떠난 후 제라드는 헤스키의 번호인 8번을 꽤 차게 된다.

2009~10시즌 해리 케인이 토트넘에 합류할 때 그의 스쿼드 넘버는 37이었으나, 5년 후 저메인 데포의 18번을 물려받았다. 이듬해 엠마누엘 아데바요르가 클럽을 떠나자 케인은 에이스의 번호인 10번을 달게 된다. 현재 케인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과 뮌헨에서 스트라이커의 번호인 9번을 달고 있다. 한편 손흥민은 레버쿠젠 시절에 이어 토트넘에서도 7번을 계속 달고 있는데, 이는 클럽이 그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흥민의 주포지션인 왼쪽 윙어의 전통적인 넘버는 11이다. 하지만 손흥민은 중앙으로 지속적으로 침투하는 인버티드 윙어이기 때문에 7번도 잘 어울린다. 사진=케인 인스타그램

신인 때 부여받았던 스쿼드 번호를 끝까지 고집하는 선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첼시에서만 19시즌을 소화한 센터백 존 테리다. 테리는 26번으로 첼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센터백의 넘버인 5~6번을 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첼시에서 언제나 26번을 착용했다. 그런 테리도 국가대표팀에서는 6번을 달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특정 번호를 선호하는 선수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마리오 발로텔리는 인터 밀란에서 신인 시절 스쿼드 번호 36~50번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는 45번을 선택했는데, 4+5=9이고, 9는 전통적인 스트라이커의 번호였기 때문이다. 그는 45번을 달고 초반 4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는 행운을 누렸다. 그 후 발로텔리는 맨시티, 리버풀, AC밀란에서도 45번을 달고 뛰었다.

맨시티 공격의 핵심인 필 포든의 스쿼드 넘버는 다소 뜬금없는 숫자인 47번이다.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포든의 할아버지 로니는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그를 기리기 위해 포든은 #47 셔츠를 입는 것이다. 2021년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클럽을 떠날 때, 포든은 아구에로의 10번 셔츠를 제안받았다. 하지만 포든은 “10번 셔츠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지만, 저는 저만의 유산인 47번을 유지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10번 셔츠는 결국 아스톤 빌라에서 이적해 온 잭 그릴리쉬에게 돌아갔다. 사진=포든 인스타그램

특정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번호를 달고 경기하는 경우도 있다. 2008년 리버풀이 유럽 문화의 수도가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에버튼의 제임스 비티와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는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의 승인을 받고 특별한 번호를 달았다. 2006년 3월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비티와 제라드는 2008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번호이자 한자리 숫자인 8이 아닌 두 자리 숫자 08번을 착용했다.

과거와 달리 선수들의 스쿼드 번호는 더 이상 포지션에 따라 정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플레이메이커로서 10번이 안성맞춤이었던 지네딘 지단은 유벤투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각각 21번과 5번을 착용했다. 그럼에도 특히 7~11번은 뛰어난 선수만이 달 수 있는 특별한 번호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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