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남진 "80에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 봤소? 100살까지 할라요"
자칭 '원로 1번 가수' 노래하려 금연·금주
69년 월남전 파병…결혼 후 '둥지'로 재기
격동의 60주년 '파란만장 인생'
"나이 80에 '오빠' 소리 들으면 기분 좋습디다. 이 나이에 춤추고 노래하는 놈 봤소? 신나게 다리를 떨고 싶은데 솔직한 말로, 주책이라 할까 봐 자중하는 거요." 가수 남진(79·본명 김남진)은 데뷔 60주년을 맞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1946년 목포 최고 부잣집 셋째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1965년 ‘서울 프레이보이’로 데뷔해 ‘오빠 부대’를 거느린 최초의 가수가 됐지만,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겼다. 살아있는 대중문화 역사이자 격동의 현대사인 그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남진은 ‘가슴 아프게’ ‘미워도 다시 한 번’ ‘둥지’ 등 수십여 히트곡으로 사랑받았다. 반세기 넘는 세월 속에서 풍파를 겪으면서도 마이크를 놓은 적 없다. 그는 "가수로 노래하며 만족을 느껴본 적 없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 20대였던 팬들이 지금 60~70대가 됐다. 노래가 같으면 되겠냐. 세월만큼 깊어진 감성을 채우기 위해 요즘도 연습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1번 원로가수’라고 했다. 남진은 "내 위로 활동하는 가수 선배가 아무도 없어서 부담스럽다. 후배들이 지켜보는데 살던 대로 살 수가 있겠나. 은퇴 시기보다 어떻게 활동하느냐가 중요하다. 노래 잘하는 좋은 모습으로 떠나고 싶다"고 했다. 젊은 팬들이 알아봐 줄 때 가장 기쁘다고. 그는 "얼마 전에 11살 어린이가 '오빠'라며 사인을 해달라더라. 손자뻘인데.(웃음)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
세기의 라이벌로 꼽히는 가수 나훈아가 최근 공연에서 은퇴를 시사한 것에 관해 물으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왜 은퇴한대요? 아직 노래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 나훈아에 대해 "타고난 가수"라며 "아직도 현역으로 노래 잘하는데 은퇴한다니 아쉽다"고 했다.
남진은 매일 밤 ‘감성’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노래를 잘하고 싶어서 술 마시지 않고 32년 전 담배도 끊었다. 그는 "90살이든 100살이든 노래가 되는 날까지 할 거다. 운동선수랑 똑같다. 건강해야 노래를 잘한다. 언젠가 성탄절 공연 디너쇼를 보름 앞두고 감기가 와서 목소리가 안 나왔다. 그때 담배를 끊었다. 전라도 선산에 가서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묘소 앞에서 조상님들께 맹세했다. 그날 피운 한 갑을 마지막으로 안 피운다. 거기서 맹세 안 했으면 진작에 피웠겠지.(웃음)"
남진은 1967년 ‘가슴 아프게’를 시작으로 7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69년에는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전에 파병가기도 했다. 그는 "인생은 파도다. 잘 나갈 때가 있었지만 힘들 때도 있었다. 월남에 간 지 일주일 만에 총알이 우측 발아래 떨어졌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격동의 시절, 그를 있게 해준 일등 공신은 어머니다. 남진은 "어머니가 파김치를 해서 김포공항에서 해병대 대위 장교한테 '아들 갖다주라'고 전해줬다더라. 파김치 힘으로 버텼다"고 했다. 그러면서 "1991년도에는 누군가로부터 습격을 당해 배에 장칼이 박히는 일도 있었다. 칼이 아슬아슬하게 경동맥을 비껴갔다. 조금만 더 가까웠어도 내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시대를 누빈 그의 발자취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오빠, 남진’이 제작돼 다음 달 4일 극장에 걸린다. 주옥같은 히트곡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곡을 꼽아달라고 하자 남진은 곧장 "팬들과 한 백 년 살고 싶어~"라며 ‘님과 함께’를 개사해 불렀다. 인생에서 잊지 못할 곡은 ‘둥지’다. 미국에서 결혼 후 귀국한 그를 복귀하게 해준 곡이다. "당시 카바레에서 건반을 치던, 이름도 모르는 작곡가가 나를 주려고 갖고 온 곡"이라고 남진은 회상했다. 그는 “40대가 다 됐을 때인데,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 슬럼프를 겪었다. 그때 나를 건져준 곡이 ‘둥지’였고, 그 곡이 없었다면 재기하지 못했을 거다. 당시 경험을 통해 인생에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고 했다.
남진은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 불리며 팝가수로 활동했지만,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등 인상적인 트로트 곡도 많이 남겼다. 최근에 임영웅, 장민호 등이 스타로 떠오르며 트로트 시장이 커졌다. 그는 "우리 때는 KBS, MBC, TBC 쇼가 전부였는데 좋은 시대가 열렸다. 이제 극장도 많고, '억' 소리 날만큼 규모도 커졌다. 후배 가수들한테 당부하고 싶은 건, 인성이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 노래 잘하는 건 당연하지만,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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