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수사 허용해야"…딥페이크 사태에도 문 잠근 텔레그램

이찬규 2024. 8.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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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가 초‧중‧고교뿐만 아니라 대학가, 군(軍)부대까지 번져 경찰이 특별 집중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과거부터 디지털 성범죄물 제작·유통 통로가 됐던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들은 폐쇄적인 특성 때문에 수사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이른바 ‘언더커버 수사(undercover·위장수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현행법은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만 위장수사를 허용하고 있다.

서울여성회 활동가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학생 등이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가진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여성 시민·대학생 긴급 기자회견에서 '자유의 쓰레기통'에 가면을 던져 버리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스1


국내에서 위장수사 제도가 시행된 건 2021년 9월부터다. 이른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이 개정되면서다. 경찰은 n번방 사건을 수사할 때 텔레그램의 협조를 받지 못해 직접 n번방에 잠입해 일당을 검거했다.

경찰 내부에선 위장수사 제도가 딥페이크물 등 허위 성범죄물 수사에 대체로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29일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신분 비공개 및 신분위장 수사로 검거한 피의자는 2021년부터 2024년 6월까지 1326명으로, 이 중 83명이 구속됐다. 검거 인원 중 약 96%(1272명)가 성착취물 제작‧배포‧소지 혐의였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서만 적용돼 도입 초기부터 성인 대상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하는 데엔 한계가 있단 지적이 나왔다. 경찰은 지난 5월 ‘서울대 n번방’ 사건 등을 계기로 국회에 위장수사 확대 방안 등을 보고했다.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에도 선제적‧적극적인 위장 수사가 가능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6월 13일 법무부와 경찰청, 국민의힘은 당정협의를 통해 위장 수사 대상 범위 확대를 위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 등을 검토하기도 했다. 경찰이 지난 2022년과 2023년 사이버 성폭력 사건을 집중 단속한 결과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이 성인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2022년 61.9%(420명), 2023년 57%(391명)이다.

여성 군인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합성물 제작·유포 텔레그램 대화방. 해당 대화방에선 여군을 '군수품'이라고 지칭하며 대상자의 군복 사진과 신상정보 등을 요구하고, 실제 군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개인 대화방으로 인증을 받기도 했다. 사진 'X' 캡처


최근 텔레그램에서 이뤄지는 성착취물 범죄는 ‘지능방(지인 능욕방)’, ‘겹(겹치는)지인방’, ‘여군방’ 등 나이와 성별, 직업을 가리지 않는다. 중앙일보가 살펴본 딥페이크 범죄 관련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도 군인‧직장인 등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이 제작‧유포되고 있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자를 성인‧미성년자로 일일이 구분해서 위장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현장 경찰관들의 목소리다. 한 일선 경찰서의 수사관은 “텔레그램 상 영상이나 사진만으론 피해자가 성인인지 미성년자인지 파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딥페이크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폭파(폐쇄)’‧비공개된 텔레그램 대화방도 다수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일단 텔레그램 대화방에 접속이 가능한 링크부터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대화방이 폭파하는 순간 수사는 종결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성착취물 대가로 받은 암호 화폐를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에 덜미가 잡힌 n번방 주범 조주빈 때와는 다른 상황이란 지적도 나온다. 사이버 성범죄 수사를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최근 텔레그램에서 이뤄지는 성착취물 범죄는 금전 거래 없이 단순히 피해자를 모욕‧명예훼손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국가수사본부 사이버범죄수사과 김문영 경감이 28일 서울시내에서 수사참고자료로 활용하는 딥페이크 탐지 소프트웨어를 설명하고 있다. 해당 소프트웨어는 한국인 및 아시아인 5400여 명의 얼굴과 이를 이용한 520만 점의 합성물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파수 및 정합성 분석 기법을 활용, 약 80%의 탐지율을 나타낸다고 한다. 뉴스1


전문가들은 ‘과잉 수사’ 등의 우려를 보완한 법 개정을 통해 위장수사의 범위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현행 아동·청소년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위장수사 역시 법원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신분 비공개 수사는 상급 경찰관서의 사전 승인만 받으면 되지만, 신분 위장수사는 법원이 허가를 내야 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기존 판례 등을 검토해 위법 수사가 우려되는 부분을 입법 보완하면 된다”며 “디지털 성범죄물은 특성상 위장수사로 잡는 법밖에 없는 현실이다”고 주장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을 위해 위장수사 범위를 넓혀야 한다”며 “국회 등 승인을 받아 위장수사를 하기 때문에 과잉 수사는 원칙적으로 차단된다”고 말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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