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잡은 지 1년 만에 태극마크…메달 노리는 64세 '왕언니'
‘총과 활의 민족’ 대한민국의 양궁·사격 패럴림픽 선수단이 지난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한 제17회 패럴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나선다. 두 종목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각각 5개, 3개씩 따내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 8일 최고령 양궁 패럴림픽 국가대표인 김옥금(64)씨와 ‘예비 아빠’ 사격 국가대표 조정두(37)씨를 만났다.
“양궁이 새로운 삶을 줬다”…‘왕언니’의 도전
35년 전 김옥금씨는 길을 걷다가 자주 넘어지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느꼈다. 병원에 가보니 근육위축증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근육이 점차 약해지고 힘을 쓰지 못하는 병이다. 김씨의 마음도 크게 위축됐다. 김씨는 “밖에 나가면 모든 사람이 내 걸음걸이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서 부끄러웠다”며 “장애진단 후 집에 틀어박혀 은둔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김씨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 김씨에게 지인들은 ‘우울증 걸리기 전에 운동하자’고 말했다. 많은 운동 중에서도 화살이 통쾌하게 표적에 꽂히는 양궁의 매력에 빠져 2013년 처음 활을 잡았다. 53세,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점차 빠져들었다. 끝이 없는 연습으로 활을 잡은 지 1년 만에 태극 마크를 달았다. 2014년 인천 아시안 패러게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년 뒤인 2016년 찾은 브라질은 김씨의 마음에 남아있는 나라다.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을 안겨준 장소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2016 리우 패럴림픽 혼성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8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리우(패럴림픽) 때는 아직도 순간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이번 파리 패럴림픽은 김씨에게 사실상 마지막 국제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후배들의 기량이 빠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씨는 앞으로도 활시위를 계속 당긴다고 했다. “국가대표가 되지 못해도 양궁은 내 삶”이란 이유에서다. 김씨는 오는 31일 개인전, 다음달 1일 혼성 단체전에 나선다.
“‘띠용이’에게 선물 하고파”…예비 아빠의 도전
패럴림픽 사격 국가대표 조정두씨는 국가유공자다. 지난 2007년 군 복무 중 뇌척수막염을 진단받았는데 치료를 빨리 받지 못해서 후유증으로 척수 장애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8년이란 시간을 방에서 끼니도 거른 채 1인칭 슈팅 게임(FPS·First-Person Shooter)만 했다. 게임 모임장을 맡고 있던 조씨는 팀원들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조씨는 “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 휠체어를 타고 있으니 사람들이 당황해했다”며 “처음엔 시선이 느껴져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시간이 흐르니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조씨는 처음엔 총이 아닌 탁구채를 잡을 뻔했다. ‘탁구를 한번 해 봐라’는 권유에 무작정 체육관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옆에 있던 사격장이 눈에 더 들어왔다. 8년의 게임 경력 때문이었을까,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들어간 사격장을 시작으로 조씨는 장애인 사격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사격을 시작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9년, 처음 출전한 세계장애인사격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공기권총 10m 본선 582점 등 세계 신기록을 3개나 보유한 정상급 선수가 됐다.
조씨는 패럴림픽을 앞두고 가족과의 시간도 포기하면서 훈련에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조씨는 “출산을 앞둔 아내를 보러 가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 크다”라며 “그래도 띠용이에게 메달을 걸어주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며 웃었다. 조씨는 오는 9월 아빠가 된다. 띠용이란 아이의 태명은 2024년이 용의 해란 점에서 따왔다.
조씨는 “아직도 많은 장애인이 집에서 은둔하고 있다”며 “내가 그랬듯이 용기를 내서 ‘밖으로 나오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씨는 30일 10m 공기권총, 다음달 4일 혼성 50m 권총 경기에서 메달을 겨냥한다.
이천=박종서 기자 park.jongsu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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