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혈액 펌프 아니다… 심장, 뇌와 양방향 작동

맹경환 2024. 8. 3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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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신비한 심장의 역사
빈센트 M. 피게레도 지음, 최경은 옮김
진성북스, 364쪽, 2만2000원
고대 이집트 문서 ‘아니의 사자의 서’에 등장하는 그림.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후 지하세계의 신들이 망자의 심장과 진실을 상징하는 타조 깃털의 무게를 비교해 생전의 행적을 평가한다고 믿었다. 영국박물관 홈페이지


그동안 현대의학에서 심장은 단순히 뇌의 신호를 받아 순환계를 통해 몸 전체에 혈액을 전달하는 펌프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다. 그 때문에 언제든 기계로 교체 가능하고 윤리적인 거리낌 없이 이식이 이뤄졌다. 하지만 30여년 동안 심장을 연구하고 치료한 심장전문의가 고대 인류부터 ‘영혼, 지성과 감정이 담겨 있는 저장소’로 믿어왔던 심장의 권위 회복에 나서며 반기를 든다. 저자는 미국 컬럼비아의대 출신으로 심장질환 및 영상진단, 심혈관질환의 효과적인 치료법과 관련된 25개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200편 이상의 의과학 논문을 발표한 심장 분야의 권위자다. 그는 “원래는 심장질환이 없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심장마비 겪는 환자 등 감정과 심장의 생리학적 측면이 오묘하게 연결돼 있는 사례를 종종 경험한다”면서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책은 먼저 인류의 조상들이 ‘경이로운 신체 기관’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훑는다. 기원전 2500년경의 고대 이집트인들은 심장이 선행과 악행을 포함해 사람이 평생 행한 모든 일의 증인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인간은 죽은 후 지하 사후세계인 ‘두아트’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망자의 심장은 진실을 상징하는 타조 깃털과 무게가 비교된다. 망자의 심장이 깃털보다 가볍거나 무게가 같으면 생전 선한 삶을 산 것으로 여겨져 천국인 갈대 들판으로 인도된다. 반대로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암미트’ 여신이 심장을 먹어치우고 망자의 영혼은 사라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심장을 생명과 존재의 원천으로 생각했다. 미라를 만들기 위해 방부 처리를 한 뒤 다시 몸 안에 넣어두는 유일한 기관은 심장이었다. 고대 중국인과 인도인들에게도 심장은 ‘생명의 근원’이자 ‘영혼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리스에는 영혼이 뇌에 존재한다고 판단한 초기 사상가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장을 ‘인간의 의식과 지성의 원천’으로 생각했다. 그의 ‘동물 부분론’에 따르면 심장은 “영혼을 생명의 기관들에 이어주는, 모든 움직임의 원천에 해당하는” 핵심적인 기관이었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장을 존재의 중심으로 여기고 뇌보다 격상함에 따라 심장은 거의 2000년 동안 핵심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전은 영국 왕실의 의사였던 윌리엄 하비가 1628년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 연구’를 출판하면서 이뤄진다. 그는 심장과 동맥에는 “영혼이 아니라 오직 혈액만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심장이 동맥을 통해 혈액을 전신으로 내보내는 펌프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개와 인간(처형된 범죄자)의 해부를 통해 입증했다. 저자는 “이제 심장은 기계식 펌프에 불과할 뿐이었고, 사람들은 심장이 영혼이 깃든 곳이라거나 신이 인간과 교감하는 장소로 여기지 않았다”고 말한다.

과거의 영광을 뇌에 물려줬지만 심장은 문화적으로는 은유를 통해 사랑과 용기,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면서 여전히 생명을 유지해 왔다. 사랑을 뜻하는 ‘하트’ 이모티콘이나 ‘너는 내 마음을 감동시켰어(You have touched my heart)’ ‘심경의 변화(change of heart)’ 등의 영어 표현에서도 여전히 드러난다.

하지만 최근 심장이 감정을 수용할 수 있고, 실제로 ‘심장-뇌 연결’이 양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면서 심장의 복권(復權)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서히 사람들은 심장이 단지 펌프에 불과하지 않고 감정의 활력에 영향을 미치며 뇌와 함께 우리의 정신적, 영적,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최근 연구들은 뇌가 심장에 명령을 내리는 것만큼이나 심장도 뇌에 지시한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면서 “심장-뇌 연결의 새로운 연구는 심장에 대한 고대인들의 믿음, 그리고 현대의 문화적 관점과 더욱 일치하는 과학적 전환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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