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의대 정원 2천명 증원’, 목표인가 수단인가 [이기선 칼럼]

데스크 2024. 8. 3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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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국민 생명 관련 민생현안에 관심은 다행
의료체계의 ‘조용한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어
2000명 증원은 개혁 1000명 증원은 개혁 아니다?
의료대란 최소화…가장 시급하고도 절박한 민생
지난 3월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의료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의대 증원에 반대해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나면서 불거진 의료공백 사태가 6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곧 다가올 추석 연휴까지 감안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태의 원인인 전공의 파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모양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박단 전공의대표를 비공개로 만난 데 이어, 정부 측에 2026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도 ‘의료대란 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175석의 절대다수 의석을 무기 삼아 특검, 탄핵, 청문회 등 정치투쟁에만 몰두하던 민주당이 이제라도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민생현안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통령실이나 정부 입장은 여전히 완고하다. 애초 계획대로 앞으로 5년간 매년 최대 2000명씩 최대 1만명을 증원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아무런 근거 없이 타협을 통해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 더군다나 의료계가 결정할 사안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한 대표의 제안을 받은 한덕수 국무총리도 “검토해봤는데 정부로서는 ‘그건 좀 어렵다’는 결정을 했다”라고 밝혔다.

지난 2월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기로 했을 때, 의사들은 당연히 반발했지만, 정치권에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의료분야의 전문가인 안철수 의원은 의료 붕괴를 우려하며 점진적으로 증원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었다. 총선을 앞두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국민의힘 수뇌부와 수도권 후보자들을 중심으로 정부가 증원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를 일축했다. 의료계의 반발이 확산하면서 의료가족들이 정부‧여당에 등지는 결과를 가져왔고, 피로감에 지친 환자 가족들과 국민으로부터도 비판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하는 하나의 요인이 됐을 것이다.

의대 증원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5년간 매년 2000명씩’을 증원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정부는 2000명 증원은 과학적 근거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과학적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의대 교육의 특수성을 감안한 교육 인프라, 심지어는 교수조차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시에 무려 65%를 증원한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의사결정이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안 의원이 우려했던 대로 의료체계의 ‘조용한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다. 전공의 이탈 후 경영난이 심화하면서 대형병원의 존립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됐다. 국립대 병원 16곳의 빚은 올 상반기에만 1조 3924억원으로 지난해 차입금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피로에 지친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다. 올 상반기에 사직한 지방국립대 의대 교수는 작년 전체 사직 교수의 80%인 223명에 이른다. 응급실이 마비 상태에 이르러 중증 환자들이 병원을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도하의 각 언론에서는 의료 붕괴를 우려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별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도대체 어떤 정보와 자료를 근거로 그처럼 낙관적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지금 정부의 주장을 보면 ‘2000명 증원’이 의료 개혁의 수단이 아니라 마치 목표인 듯하다. 2000명을 증원하면 개혁이 되고 1000명을 증원하면 개혁이 안 되는가? 지난 18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을 증원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평가받을 만한데, 꼭 2000명을 고집해서 의료체계를 흔들고 당장 국민에게 피해를 줘야 하는지 답답해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은 의료대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도 절박한 민생이다.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걸린 이 문제는 정쟁의 대상도 아니고 기 싸움을 벌일 일도 아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우려하며 의대 증원을 ‘10년 목표로 분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서로 일방적인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여·야·정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하루속히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여·야·정의 합의안이 도출된다면 의료계도 마땅히 이를 수용해야 한다.

글/ 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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