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교육수준 3위와 사회적 자본 107위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 연구소(Legatum Institute)는 매년 국가별 ‘번영 지수(Prosperity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평가대상 167개국 중 우리나라는 올해 종합순위 29위로 10년 전에 비해 3단계 하락했다. 우리의 교육수준은 10년 전부터 세계 3위에 올라있다. 보건의료 역시 세계 3위로 10년 전보다 2단계가 올랐다. 그러나 제도에 대한 신뢰, 사회적 규범,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연결망 등을 아우르는 ‘사회적 자본’에서 우리나라는 107위로 10년 전보다 12단계가 추락했다. 동아시아-태평양 18개국 중에서도 15위다. 대부분 국가에서 교육수준과 사회적 자본의 순위는 대체로 비례하는 모습을 보이나 우리는 매우 예외적으로 이 둘의 괴리가 크다. 이는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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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교육수준, 낮은 공동체 신뢰
대한민국 번영의 지속가능성 위협
공교육 바로 세울 방안 모색하고
국민 스스로 성찰 운동 전개해야
」
지난 70년 한국의 개인과 기업은 크게 발전, 번영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공동체 자산은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개인이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공동체의 자산 역시 중요하다. 그것 없이는 그 안에 사는 개인의 번영과 행복은 결국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는 번영의 지속가능성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적 자본의 세부 분야를 들여다보면 정치인, 검찰, 사법부 등 정부기관에 대한 신뢰가 최후진국 수준의 성적표를 보인다. 해방 후 대한민국은 과거 세계사에 없던 초고속 경제성장, 민주화를 이루고 선진국으로 부상한 기적과 같은 발전을 성취했지만, 그러한 극단의 성공은 극단의 실패와 함께 왔다. 세계 최고수준의 저출산, 내부갈등, 시위, 고소·고발·무고 건수, 물질주의, 고아 수출 국가가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갈등의 소지가 클 수밖에 없는 근대사의 유산을 물려받긴 했다. 조선 시대의 심한 계급차별, 일제시대, 해방정국과 분단, 한국전쟁을 거치며 동족 간과 이웃 간의 밀고, 분열, 이념적 갈등, 공권력에 의한 학살, 처형 등이 자행되며 시민들이 생존의 불안 속에 살며 키워 온 상호 간 불신, 증오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제성장률의 세계기록만큼이나 빨랐던 도시인구집중은 전통적 마을 공동체 질서를 빠르게 해체하였으나 도시 아파트 숲에서 새로운 공동체질서는 형성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그러한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그동안 무슨 노력을 해왔나? 오히려 갈등을 이용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갈등의 한쪽에 뿌리내려 반대편과의 싸움을 격화시키며 서로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안주해 오지 않았나? 민주화는 억눌리고, 상처 났던 국민들을 치유하고 공존과 공진으로 나아가길 기대하게 했지만 오히려 분열적인 권력투쟁, 몰염치한 정치문화를 낳으며 지역, 진영 간 갈등을 부추기고 정치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더욱 악화시켜왔다. 검찰과 경찰, 방송언론을 정권의 전리품쯤으로 여기며 이를 이용해 반대편을 매몰시키려 하는 정치에서 국민들이 정부와 사법 시스템, 국회에 신뢰를 쌓아가기는 어려운 것이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하나? 우선 공교육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절실하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수준과 사회적 자본의 큰 괴리, 그 악화는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설학원은 남들과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다. 교사 임용방식과 처우 개선으로 좋은 스승들이 늘어나게 하고, 입시제도를 개선하며 공교육을 정상화해나가야 한다. 또한 갈등의 치유, 사회적 신뢰는 사회지도층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실패는 결국 한국 엘리트들의 실패이다. 정치 행정 엘리트, 산업·금융 엘리트, 언론 엘리트, 지식 엘리트들이 담합과 연줄, 끼리끼리 문화를 지양하고 공정한 경쟁과 개방성, 합리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국가지도부에서부터 공공기관들이 장기적 시계를 가지고 장기적 결과를 중시하는 정책을 입안, 실행할 수 있도록 지금의 국가권력구조, 정치제도, 정부운영방식, 인사보상·평가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민들 스스로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국민이 심한 분열, 증오, 갈등에 갇혀있으면서 분열의 정치, 증오의 정치가 바뀌기를 요구하기는 어렵다. 세계를 둘러보면 인권, 자유, 평등, 정의에 대한 시민들의 치열한 토론과 계몽주의 운동을 거치지 않고 합리와 포용의 민주주의 정치를 제대로 정착해온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라도 우리 국민은 이에 대한 깊은 토론과 모색을 해나가야 한다. 신뢰와 포용은 공감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정치, 언론, 문화, 학계 등 각 분야에서 오늘날 한국의 문제를 성찰하고 개선하기 위한 토론모임들이 활발히 진행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한국인의 높은 교육수준이 사회적 자본을 끌어올리게 될 때, 그 교육은 진정한 가치를 가지며 한국은 지속 가능한 번영을 누리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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