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기관의 위증과 짬짜미 [강주안의 시시각각]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152조 위증죄다. 이 범죄가 벌어지는 현장이 지난 20일 생중계됐다. 용의자는 수사기관 간부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마약수사 외압 의혹 청문회가 무대였다.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지난해 9월 인천공항세관 등을 대상으로 마약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돌발상황을 두고 당시 서장이던 김찬수(현 대통령실 행정관) 총경과 형사2과장 백해룡(현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 경정이 정반대의 증언을 했다. 경찰은 마약조직 운반책들이 필로폰 24㎏을 온몸에 붙이고 인천공항을 무사 통과한 사실을 포착했다. 운반책이 “세관 직원이 도와줬다”고 진술하자 세관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이 보도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백 경정은 청문회에서 “서장이 ‘용산에서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브리핑을 연기시켰다”고 증언했다. 대통령실 외압이 있었다는 취지다. 그러나 김 총경은 “용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둘 중 한 명은 명백한 위증이다.
외압 두고 서장·과장 상반된 증언
둘 중 한 명은 위증죄 처벌 받아야
증언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은 엇갈린다. 한 전직 지방경찰청장은 “백 경정의 언행을 신뢰하기 어렵다”며 “정치적 목적으로 과장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 해결이 가능한 사안을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의심스럽다는 견해다.
반면에 검사 출신인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장이 용산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걸 지어낼 과장이 있겠느냐”고 했다. 백 경정은 용산 발언이 아니더라도 조병노 경무관 압력 폭로로 얼마든지 이슈화가 가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던 조 경무관은 당시 백 경정에게 연락한 사실이 드러나 좌천됐다.
용산 외압 논란이 일자 야당에선 ‘제2의 채 상병 사건’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러나 대통령실 고위층이 관련된 근거는 아직 없다. 다만 서울경찰청 경무관까지 동원한 관세청 행태를 고려하면 대통령실 실무진 등에게 선을 댔을 가능성은 의심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경찰 발표 간섭한 관세청도 심각
용산 개입을 둘러싼 진실게임 못지않게 심각한 대목은 관세청의 경찰 발표 간섭 정황이다. 경찰이 세관을 압수수색한 날짜가 지난해 9월 22일이었고, 세관 간부들이 수사 경찰을 찾아간 시점은 10월 6일이다. 세관 직원의 결백 여부를 판단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비리 의혹을 받는 세관이 수사 주체인 경찰을 윗선까지 동원해 압박한 모양새다. 일반 시민은 수사 대상이 되면 노심초사하며 처분만 기다린다. 감히 수사기관을 먼저 찾아가 보도자료 내용에 관여하는 간 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주의 주려고 (경찰서에) 오신 거라는 이야기지요?”라는 신정훈 행안위원장 질문에 “그렇습니다. 기관 협조 차원에서…”라고 답하는 고광효 관세청장의 모습은 당혹스럽다. 수사기관끼리는 이런 식으로 짬짜미를 해왔다는 말인가. 검찰이 영장을 청구할 때 귀가 닳도록 듣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수사기관 직원의 혐의엔 해당이 안 되는 모양이다. 수사기관과 피의기관이 보도자료까지 논의하는 광경이 외부인 눈엔 의아하다.
서로 다른 증언으로 혼란을 야기한 청문회가 지나고 나니 위증 혐의가 남았다. 백 경정이 김 총경을 궁지로 몰기 위해 무고성 폭로를 한 것인지, 김 총경이 국회에서 위증한 것인지 가려내야 한다. 공직자에 대한 무고와 위증은 해악이 심대하다. 양중진 전 수원지검 차장검사는 저서 『검사의 삼국지』에서 ‘무고와 위증’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반역자로 무고를 당한 마초가 장로를 등지고 유비의 신하가 되자 결국 장로는 패망을 맞게 됐다는 삼국지 속 일화를 전하며 “나라를 망치게 한 무고”라고 했다.
김 총경과 백 경정 중 한 명은 위증범이니 50% 확률이다. 수사기관들이 과연 진범을 찾아낼까. 수사 간부의 위증이 완전범죄로 묻히는 건 아닌지 결말이 궁금하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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