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연금개혁,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한국은 2055년이면 한 푼도 안 남고 고갈된다. 일본은 2120년까지도 돈이 모자라지 않는다. 한국 국민연금과 일본 후생연금의 재정 전망을 비교한 결과다. 어느 쪽이 안정적이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연금 재정의 안정성에선 일본의 압도적 우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두 나라의 격차는 무려 65년이나 된다.
마침내 우리 정부도 연금개혁의 시동을 걸고 나섰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대안을 내기로 한 점은 다행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국정 브리핑에서 연금개혁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 ▶세대 간 공정성(형평성) ▶노후 소득 보장이다. 다 좋은 말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어려운 숙제다. 조만간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가 발표할 세부 내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보험료 인상 폭과 시점 등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지난해 10월처럼 알맹이는 쏙 빠진 ‘맹탕 개혁안’을 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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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게 내고 많이 받는 ‘마법’은 없어
일본 연금 보험료는 한국의 두 배
‘맹탕’ 아닌 구체적 정부안 내놔야
」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연금개혁도 예외가 아니다. 큰 방향은 맞더라도 세부 내용이 잘못되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당연한 상식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점이 있다. 젊을 때 적게 내고 노후에 많이 받아가는 ‘마법’은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노후에 연금을 많이 받고 싶으면 젊을 때 보험료를 많이 내야 한다. 반대로 젊을 때 적게 내고 싶으면 노후에도 적게 받는 걸 감수해야 한다. 누군가 적게 내고 많이 받아간다면 다른 누군가는 많이 내고 적게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미래 세대에 막대한 부담을 떠넘기는 건 기성세대의 이기심과 무책임일 뿐이다.
국민연금법에 ‘국가의 지급 보장’을 명문화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윤 대통령도 국정 브리핑에서 직접 언급했다.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그걸로 연금 재정의 불안이 해소되는 건 전혀 아니다. 연금 재정의 완전 고갈 이후에도 국가가 연금을 주려면 그 돈은 어디서 나올까. 국가가 세금을 대폭 올리거나 막대한 빚을 내는 방법밖에 없다. 증세든, 빚이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 돌아간다. 이대로 가면 미래 세대는 월급의 절반 이상을 세금이나 사회 보험료로 내야 한다. 아직 어리거나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기성세대의 무책임에 고통을 받아야 하나. 겉보기만 그럴듯한 말이 아닌 실질적인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그럼 일본은 어떻게 했을까. 일본 후생노동성(한국의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이 최근 홈페이지에 공개한 자료를 살펴보자. ‘2024년 연금 재정 검증 결과’ 보고서다. 현재 일본 직장인들은 소득의 18.3%를 연금 보험료로 낸다. 한국(9%)의 두 배 수준이다. 이렇게 일본 직장인들이 젊을 때 많이 낸 만큼 노후에는 한국보다 더 많이 받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올해 일본 후생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5%(외벌이 가구 기준)다. 한국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2028년 기준 40%)보다 훨씬 낮다. 소득대체율이 낮다는 건 그만큼 노후에 돌려받는 돈이 적다는 뜻이다. 소득대체율 40%는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여야 합의로 결정한 사항이다. 원래는 50%였는데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일본 직장인들은 젊을 때 한국보다 훨씬 많이 내고 노후에 훨씬 적게 받는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고령화의 충격을 겪었지만 100년 뒤에도 연금 고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00년 안심연금’을 제도화한 비결이 여기에 있다.
이것만 보면 일본에선 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이 취약해 보인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초연금(일본 용어는 국민연금)이 부족한 점을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올해 기준으로 일본에서 기초연금을 포함한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61.2%다. 이렇게 보면 일본이 한국보다 적게 받는 게 아니다. 다만 일본의 기초연금은 가입자가 매달 보험료(1만7000엔)를 낸다는 점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지원하는 한국과 차이가 있다.
우리도 연금개혁의 테이블에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함께 올릴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의 고갈을 막으면서도 공적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만 따질 게 아니다. 기초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을 계산해 봐야 한다. 노인 인구 증가와 함께 기초연금 지급을 위한 재정 부담이 커지는 문제도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 필요하다면 일본처럼 기초연금에도 일정한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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