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금기어가 된 제주 여행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년에 한두 번은 제주도로 여행을 갔었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뉴스들은 제주 여행에서 겪은 불쾌했던 경험과 맞물려 증폭 효과를 일으킨다.
한 여행전문 리서치업체의 조사 결과에서는 제주도에 대한 관심도가 2년 전보다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강원 지역 도시에 한참 밀리는 걸로 나오기도 했다.
만약 지인들에게 제주 여행을 간다고 말하면 "대체재도 많은데 굳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년에 한두 번은 제주도로 여행을 갔었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았다. 요즘 쏟아지는 제주발 뉴스들이 영향을 끼친 면도 있지 싶다. 비계로 가득한 삼겹살을 당당히 내놓는 식당, 20만원짜리 갈치구이 바가지,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아이의 용변을 보게 하는 중국인 관광객.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뉴스들은 제주 여행에서 겪은 불쾌했던 경험과 맞물려 증폭 효과를 일으킨다.
한때는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문제가 된 ‘오버투어리즘’의 대명사였고, 지금도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인기 관광지다. 하지만 제주도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예전 같지 않다. 한 여행전문 리서치업체의 조사 결과에서는 제주도에 대한 관심도가 2년 전보다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강원 지역 도시에 한참 밀리는 걸로 나오기도 했다. 만약 지인들에게 제주 여행을 간다고 말하면 “대체재도 많은데 굳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여행지로 남아 있다. 예전에 휴가를 길게 갈 기회가 있어 2주 동안 머물렀다. 길어야 3박4일이었던 제주도에서 관광지와 유명 맛집 가느라 시간에 쫓겼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계획된 일정 없이 못 가봤던 올레길을 걸으며 탁 트인 서귀포 앞바다의 풍경을 보는 건 새로웠다. 빛나는 야경의 대교가 어우러진 부산 바다나 동해의 선명한 푸른색 바다도 좋았지만 거대한 자연 앞의 제주 바다 역시 힐링하기엔 충분했다.
느긋하게 일어나 숙소 주변에서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제주엔 흑돼지와 갈치만 있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파는 저렴한 국밥도 있었으며, 대기시간 기본 1시간짜리 맛집만 있는 게 아니라 멋진 풍경이 보이는 뒷골목에서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 갈빗집도 있었기 때문이다. 줄 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우연히 들어간 옆 식당에서 뜻밖의 횡재를 한 적도 있다. 외국인 부부가 자녀와 함께 4·3평화공원을 주의 깊게 살피던 모습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군사용 알뜨르 비행장과 격납고는 주변의 눈부시게 푸른 풍경과 어우러져 비극의 역사를 돌아보게 했다.
그래서 온라인에서 ‘제주도 갈 바엔 일본이나 동남아 간다’는 익명의 글들을 볼 때마다 그 배경은 이해하지만 공감하지는 못했다. 제주에 가면 굳이 수십만원짜리 비싼 세트를 먹고, 일본에선 좁은 숙소에 값싼 면 요리를 먹으며 제주 여행은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하는 글이 의외로 많아서다. 여행이란 시기와 장소, 가격 같은 눈에 보이는 숫자뿐 아니라 각자 개별적인 의미가 있는 건데 싸잡아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여행지로서의 위상이 추락한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자체와 관광업계가 ‘제주와의 약속’ 캠페인을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렌터카와 택시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과도한 바가지 물가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뼈를 깎는 노력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물가 싸고 볼 것 많은 해외 여행지가 넘쳐나는 마당에 제주 여행이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한편으론 난개발과 몰려드는 외지인들로 몸살을 앓았던 제주의 자연이 약간이나마 휴식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히려 좋은 현상인 걸까. 힐링하러 온 관광객이 너무 많아 망가졌던 오름들이 자연휴식년을 선택하며 쉬는 것처럼. 갈수록 관심이 떨어지는 제주 관광도 이번 기회에 포장만 요란한 대책을 앞세우기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백상진 뉴미디어 팀장 shark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일본 2024년 최저임금 1055엔(9722원)… 51엔 인상
- ‘여객기 흔들흔들’ 日공항 착륙 실패… 태풍 ‘산산’의 위력
- “미성년자 성추행범 누명은 벗고파”… 피겨 이해인, 재심 출석
- “저녁 먹고 퇴근할 정도로 일 시켜라” MZ 기강 잡은 ‘삼바’ 사장
- ‘몰카’ 63번 찍었는데… 전 부산시의원 2심도 집행유예
- ‘계곡살인’ 피해자 유족 이은해 딸 파양… 6년 1개월만
- NCT 태일 ‘성범죄 피소’ 후폭풍…멤버·팬도 빠른 손절
- 이게 된다고?… ‘엄마가 깔아줄게’ 수능 보는 학부모들
- 주거침입 경찰관, DNA 검사 결과…13년 전 강간범 지목
- 주민들은 식량난인데… 김정은 고가의 말 24마리 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