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초가을 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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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한 알이 비탈에서 데구루루 구르다 멈췄다.
비슷한 이미지를 검색해 보니 칠엽수 열매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널찍한 일곱 개의 잎사귀가 공중에 너울거린다.
처서 지나고 한풀 기세는 꺾였지만 아직 팔월의 볕은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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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한 알이 비탈에서 데구루루 구르다 멈췄다. 호두처럼 보였다. 외피를 벗겨보니 열매가 들어 있었다. 밤톨보다 더 동그랗고 색도 고동색으로 짙었다. 비슷한 이미지를 검색해 보니 칠엽수 열매였다. 여태 마로니에 나무 열매인 줄 알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널찍한 일곱 개의 잎사귀가 공중에 너울거린다. 처서 지나고 한풀 기세는 꺾였지만 아직 팔월의 볕은 따갑다. 햇빛에 비친 나뭇잎 잎맥까지 투명하게 비쳐 보인다. 손차양을 하고 구름을 본다. 자연은 순환이라는 굴레 안에서 성실히 제 몫을 해낸다. 거기에 위안이나 심미적 감상을 보태는 것은 인간이 덧입히는 서사일 테다.
며칠 전에 제비 떼를 보았다. 제비집에 사는 제비만 봤지 그렇게 많은 제비를 본 건 처음이었다. 전깃줄 위에 앉은 제비들은 저들끼리 쓰삐, 쯔베베 울어댔다. 이 작은 제비들이 인도네시아나 호주까지 멀리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새삼 놀랍다. 제비들 중 상당수는 비행하다가 지쳐 태평양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보라. 저 작은 몸으로 산맥과 바다를 넘는 제비는 자연의 섭리가 얼마나 무정하고도 높은 것인지 증명한다. 둘러보니 귓전이 쟁쟁하도록 울던 매미 소리도 한결 잦아들었다. 풀벌레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논길로 나간다.
바람이 지나가면 논에 푸른 이랑이 팬 듯 물결이 인다. 가까이 가보니 볍씨도 제법 굵어졌다. 땅에 떨어진 복숭아를 파먹느라 벌레도 분주히 모여들었다. 논길을 걸으며 큰언니가 보내준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불과 몇 분 전에 태어난 신생아 사진이다. 2.7㎏의 남아. 피부가 자색고구마처럼 붉다. 전날 조카의 출산이 임박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드디어 세상에 없던 단 하나의 생명이 탄생한 것이다. 손끝으로 벼를 스치며 걸어본다. 오늘은 이 모든 생멸의 순간이 눈부시다. 삶은 소멸의 숭고함과 탄생의 기적을 동시에 보여준다. 핑글, 눈물이 도는 가을 초입이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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