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소유의 역설

2024. 8. 30.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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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다다익선 개념을 좋아한다.

그러나 소유한 만큼 유익한 동시에 비용도 지불해야 함을 간과한다.

그러나 여인의 사랑은 성장하여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자신이 소유된 것을 앞세우며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했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했다"(아6:3)고 고백한다.

실제로 바울은 그리스도 외에 다른 무엇에 의해서도 소유되지 않기 위해 이 세상의 권력과 인기와 결혼과 보상도 멀리했고, 자신의 재능과 은사도 없어질 때까지 퍼 주며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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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수 전주대 교수·선교신학대학원장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다다익선 개념을 좋아한다. 그러나 소유한 만큼 유익한 동시에 비용도 지불해야 함을 간과한다. 소유되는 것이 소유하는 것의 비용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얻기 위하여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께 사로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 사로잡힌 바 되는 것은 예수님을 얻는다는 개념과 대립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리스도 얻기와 그에게 사로잡힌 바 된 것, 즉 소유함과 소유됨은 동전의 양면이다.

예수님께 매이는 것을 추구하는 바울의 기호는 특이하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는 그의 고백도 같은 맥락이다(롬14:8). 이런 고백을 우리는 구약 안에서도 발견한다. 아가서에 등장하는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향해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했고 나는 그에게 속했다”(아2:16)고 고백한다. 서로에게 사로잡힌 관계, 서로에게 소유되는 관계가 바로 사랑이다. 그러나 여인의 사랑은 성장하여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자신이 소유된 것을 앞세우며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했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했다”(아6:3)고 고백한다.

나아가 그녀의 사랑은 자신의 소유에 완전히 무관심한 것처럼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했다”(아7:10)는 고백으로 귀결된다. 진정한 사랑, 그리스도 얻기의 유일한 비결은 나의 전부를 주님께 드리는 것, 즉 주님께 사로잡혀 완전히 소유됨에 있다. 소유에 대한 기독교의 역설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하면 그 소유물에 사로잡힌 바 되고 그 소유물에 사로잡힐 때에 그것을 제대로 소유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소유할 것인지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소유하는 그것에 의해 사로잡힐 것이라는 고려 속에서 선택해야 한다. 술의 경우를 보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자신이 술을 먹다가 술이 술을 먹고 급기야 술이 자신을 먹는다고 한다. 이처럼 술을 소유하면 술에게 사로잡힐 것이고, 돈을 소유하면 돈에게 사로잡힐 것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로잡혀 있어도 괜찮을 무언가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바울이 보기에는 주님만이 소유해도 괜찮은 그런 분이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 되기를 추구했다.

실제로 바울은 그리스도 외에 다른 무엇에 의해서도 소유되지 않기 위해 이 세상의 권력과 인기와 결혼과 보상도 멀리했고, 자신의 재능과 은사도 없어질 때까지 퍼 주며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다. 심지어 자신이 마땅히 누려도 되는 먹고 마시며 행복하게 살 권리도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다 쓰지 않았다고 진술한다(고전9:18). 전도자는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전2:24)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기쁨마저 바울은 포기했다. 바울의 소유물 관리는 참으로 집요하고 철저하다.

세상은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주면서 우리를 가지려고 한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당하신 시험들을 보라. 마귀는 예수님이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자신의 소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인 양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했다(마4:8-9). 마귀가 예수님만 소유할 수 있다면 ‘천하’라는 최대의 판돈 걸기에도 주저함이 없다. 마귀의 과감한 유혹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유혹에 걸려든 사람이 많다.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을 해로움과 배설물로 여기며 유혹을 거부했고 그리스도 얻기를 택했다. 세상을 선택하고 사랑하고 세상을 취하려는 자들은 세상에 사로잡힌 세상의 노예로 전락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에게 사로잡힌 사람이 되면 음부의 권세도 건드리지 못하는 왕 노릇을 어디서든 한다.

한병수 전주대 교수·선교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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