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내려놓을 용기
삶의 우선순위에서 버릴 것
버리는 용기가 존경스럽다
후배가 캐나다 밴쿠버에 빵집을 열었다. 그는 한국에서 열심히 광고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결혼 얼마 후 부부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다. 인생이 긴데 외국에서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어 함께 외국으로 떠난 것이다. 일 년간 살다 보니 일상의 여유와 저녁이 있는 그곳의 삶이 만족스러웠다. 그냥 이곳에서 직업을 구하고 평생 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직업을 찾던 중 빵 만드는 베이커에 도전하게 된다. 캐나다에서도 새벽부터 밀가루 반죽과 발효를 통해 빵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아 인력난이 있었기에 전혀 경력이 없는 그도 도전할 수 있었다.
새벽부터 무거운 밀가루 포대를 나르고 쉴 새 없이 반죽을 하는 생활은 낯설고 힘들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온 정성을 쏟았다. 머리를 혹사하며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전략을 짜내던 광고장이가 정직하게 몸과 마음을 써서 빵을 만드는 베이커가 된 것이다. 후배의 아내도 그런 남편을 보고 이런 삶도 좋겠다 싶어 빵 만드는 일에 도전했다. 그녀는 한국에서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캐나다에서 데이터 마케팅으로 석사학위까지 땄지만, 디저트와 케이크를 만드는 파티시에가 되었다.
그들은 토론토에서 시작해 여러 도시에서 빵을 만드는 경력을 쌓고, 캘거리에서 드디어 자신들의 빵집을 열었다. 작은 가게여서 빵 만드는 것부터 손님을 맞이하고 응대하는 것까지 둘이 나눠서 다 했다. 동네빵집 주인이 된 그들은 찾아주는 손님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빵집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서 유명해졌고 손님이 줄을 이었다. 어느 날 부부는 자신들이 매주 100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빵을 만들고 손님을 만나는 것은 즐거웠지만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일하다 번아웃이 오고 말았다.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던 둘은 과감하게 빵집 문을 닫았다. 캘거리에서 마지막 영업 날에는 새벽 6시부터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 정도로 사랑받은 빵집이었다.
가게 문을 닫고 일 년 반 동안 부부는 우리가 오래오래 즐겁게 빵 만드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다시 문을 열 때는 무리가 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뽑자고 했다. 가장 살고 싶은 도시가 어디인가를 생각했을 때 밴쿠버가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조심스레 다시 장소를 물색하고 사람들을 뽑아 드디어 빵집을 시작했다. 새벽부터 빵을 만들기 때문에 영업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정했다. 일주일에 이틀은 반드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힘들고 지친 순간도 있었지만, 빵집을 하는 것은 엄청난 기쁨과 자부심,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빵을 만들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빵집을 다시 열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자신들의 인스타그램에 공표한 것처럼 이 둘은 그렇게 준비가 되었을 때 그들답게 새로운 빵집을 열었다.
이 작은 동네빵집은 누구나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분위기다. 그들이 만드는 커다랗고 건강한 맛의 발효종빵과 크루아상은 부드럽고 편안한 맛이 난다. 무심코 “이거 한국에서 하면 엄청나게 잘될 것 같아! 한국에 분점 낼 생각 없어?”라고 했다가 “누나, 저 한국 안 가요. 여기서 행복하게 잘 살 거예요”라는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한국에 가게를 차리면 장사도 잘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섣부른 조언을 한 속물적인 나라니.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역으로 자신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따르며 사는 이 친구들이 듬직하고 자랑스러웠다. 더하기는 쉬워도 빼기는 어렵다. 인기가 있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잘나갈 때 내려놓기는 더 어렵다. 본질에 집중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버릴 것은 버리고 내려놓을 용기. 그런 용기를 가진 이 친구들이 존경스럽다. 다시 빵집은 알려지기 시작해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지만, 이들은 절대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빵을 만들면서 동네빵집을 운영할 것이다.
정다정 메타 인스타그램 홍보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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