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평기금까지 끌어쓴 정부…‘적자성 채무’ 726조
국가채무 규모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채무의 질’이 악화하고 있다.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는 ‘적자성 채무’가 빠르게 늘어나면서다.
국가채무는 금융성 채무와 적자성 채무로 나뉜다. 금융성 채무가 늘어날 때는 외화 매입 등으로 자산도 증가하기 때문에 상환을 위한 재정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적자성 채무는 대응하는 자산이 없어 국민 세금으로 상환해야 하는 채무다.
29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적자성 채무는 2019년 413조2000억원에서 2023년 726조4000억원으로 313조2000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금융성 채무가 90조3000억원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3.5배 큰 증가 폭이다.
적자성 채무가 계속 늘어난 것은 정부가 지난해 56조4000억원에 이르는 역대급 세수 구멍을 메우는 과정에서 진행한 ‘내부거래’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건전재정 기조’를 강조하는 정부가 지난해 국가채무 전체 규모를 늘리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반회계’와 ‘기금’ 간 거래를 통해 돈을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성 채무가 돼야 할 돈이 적자성 채무로 변했다.
구체적으로는 공공 목적 자금을 모아둔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이 외환시장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 빌려준 돈을 미리 받고(14조4000억원), 빌려줄 돈도 줄여서(5조5000억원 감축) 이를 일반회계로 예탁(9조6000억원)했다.
내부거래를 통해 재원을 끌어다 쓴 탓에 내년에는 국고채 발행 외에는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국고채 발행을 역대 최대 수준인 201조3000억원으로 계획했다. 올해 본예산 대비 42조8000원(27%) 급증한 규모다. 일반회계의 세입 부족분을 보전하기 위한 ‘적자국채’가 86조7000억원으로 대부분을 순증분(83조7000억원)에서 충당할 전망이다.
정부 기금이 민간 자금에 가까운 우체국보험 적립금에서까지 돈을 빌렸다는 점도 지적받고 있다.
지난해 ‘정보통신진흥기금(정진기금)’이 수입 부족을 겪자 우체국보험 적립금 2500억원을 차입했는데, 국회예산정책처는 “정진기금의 차입 가능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며 “우체국보험 적립금의 조성 목적·운용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수 보전 대책으로 국고채를 발행하면 재정 지표가 나빠지니까 기금을 당겨 쓴 것”이라며 “재정 지표가 건전한 것처럼 만들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건전하지 않게 되고, 이는 국민이 재정 상태를 알기 어렵게 한 것이기 때문에 분식(粉飾)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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